나의 것, 너의 것 그리고 우리의 여덟번째

by 박환희

효리는 별안간 어떤 생각이 들었다. 실현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닿을 수 없더라도 손을 뻗을 동아줄이 필요했다.

'살인', '생명을 없애는 것', '죽이는 것', '복수', '정당방위'

"어치피 희망이 없어. 도대체가 내가 왜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저들이 먼데 난 저들이 노예가 되어버렸지?" 그때 불현듯 탕아의 이미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효리의 마음은 두려움과 어떤 광기와 감정 없는 소시오패스 사이의 새로운 인간군상의 정점에 있는 남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불안하고 침울한 효리의 마음에 더 큰 두려움을 밀어 넣어줬고 그 탕아의 역겨운 우월감의 표정은 효리에게 살인이 정당하다고,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줬다. 효리의 평소 행동은 항상 굼떠 있었다. 걸음걸이 에도 의지가 서려있던 적이 없었다. 부모를 잃고 몸속 비축해 두었던 눈물이 다 배출되고 몸에 수분기와 염분기가 다 날아간 상태의 장례식에서의 기진맥진한 모습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 젔다. 하지만 효리는 살인의 정당성을 찾고 구체적인 방법을 구상하고 계획하기 시작하자 온몸과 마음에 갑자기 출처를 알 수 없는 생기가 돌았고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손을 잡아준 것 마냥 힘찬 기상이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았다. 종이에 잉크들이 삼분의 일 정도 남아있는 볼펜들 중 하나를 골라 종이에 크게

'살인'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막상 종이에 살인을 적자 떠오르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칼을 들고 그들을 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다. 효리의 목표는 감방에서 수인의 삶으로 삶을 마치는 것이었다. 이 세상은 정말 지옥이었다. 어차피 자유가 없다면, 소망과 희망이 사라진 곳이라면 교도소가 그녀에게 부족하지만 유토피아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차치하고 밖에서 떠들어 대고 있는 자신의 이모와

그녀의 남편에 피가 흐르지 않게 죽일방법을 구상해야 했다. 그녀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책에서 봐왔던 방법이 떠올랐다. 너무 진부한 클리셰인지라 고민했지만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었다. 음식에 독극물을 타는 것. 너무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다음날 효리는 집에 아무도 없는 틈에 집 근처 마트에서 농양을 샀다.

집 앞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화장실에 나시만 입고 수염은 깎지 않았는지 지저분한 이모부가 무슨 약을 먹은 것처럼 초점 없이 효리를 쳐다봤다.

"뭐냐 그건" 이모부가 물었다. 잠깐동안 정적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주방에서는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그 찰나의 정적을 요란하게 만들었다.

"속옷이에요" 효리는 잔머리를 굴려 대답했다. 조카의 몸을 팔아 돈을 충당하는 인간이 또 이런 부분에서는 조선시대 선비처럼 낯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효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영국 신사 같은 그는 헛기침을 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효리는 십년감수했다는 생각으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농약을 꺼냈다. 농약에는 온갖 벌레 그림들이 상품에 부착돼 있었다. 효리는 그 벌레들의 얼굴에 이모부와 이모 그리고 그중 가장 큰 벌레 얼굴에는 탕아의 얼굴을 상상 속으로 그려봤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탕아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미국에 가서 총에 맞아 죽었으면 하는 기도를 그녀는 종종 했었다. 어느덧 20대가 되어 누군가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젊음을 만끽하고 또 누군가는 아이가 생겨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을 키우는 즐거움에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때 자신은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별 간 안 자괴감이 들었다. 그와 함께 자신은 흔히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문학작품에서나 나오는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자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변론을 몇 분 동안 바닥에 누워 자신에 마음에 제출

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정당방위라는 게 존재하니까. 누구도 나에게 이런 비참함을 강요할 권리는 없어. 그들은 분명 부모님이 물려준 돈을 훔쳐갔고 나의 존재, 나의 젊음과 나의 몸, 나의 가슴, 나의 생식기, 나의 목소리, 나의 혀, 나의 귀, 나의 모든 걸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이용하고 나의 몸에 매질을 했어.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하는 법 앞에서 나를 노예로 취급했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노예가 허락되던 옛날 조차도 이런 식으로 하면 분명 처벌을 받게 되어있어. 그리고 이건 범죄야. 나는 당연지사 마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이윽고 그녀의 계획은 신속 정확하게 이뤄졌다. 저녁마다 남편의 반찬투정으로 인해 효리의 이모는 매번 새로운 국을 끓였다. 그건 그녀의 몇십 년 동안 이어온 패턴이었다. 그런 습관들을 요사이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효리는 다음날 아침식사를 위해 끓여놓은 국에 농약을 넣었다. 분명히 독성이 강한 살충제였고 한 방울만 마셔도 즉사할 수 있는 약이었다.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효리 앞에는 거품을 물고 중년의 남자와 여자가 쓰러져 있다. 효리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지만 그녀의 바지는 오줌으로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문뜩 자신도 저들처럼 거품 물고 누워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그토록 그리웠다. 하지만 자신의 생애가 너무 억울했다. 소망이 사라진 삶에서도 그녀가 어떻게든 살아남은 이유는 바로 지옥 같은 고통에도 다 나름의 이유와 뜻이 있겠지 하는 기대였다. 자신이 고통당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자신이 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하늘에서 내비치는 햇살이 몸과 마음에 닿아 따뜻한 그런 미래가 있을 것만 같았기에 그녀는 죽지 않았다. 자살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 앞에 그녀가 죽인 다소 먼 혈육과 팔푼이 남편이 누워있다. 효리는 자신의 종국이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을 자신의 이모부 옷에 묻어있는 보풀을 보며 생각했다. 별안간 바닥에 거품을 물고 있는 남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길가의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보다 애매한 가난들 예를 들어 길가에 내쳐질 신세는 아닐지라도 마음대로 외식 한번 못하고, 학교에서는 기초수급자로 우유를 받고, 항상 돈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자식들을 빨가벗고 밖에 다닐 수는 없기에 주변에서 버리기 아까운 옷을 입히는 그런 정도의 가난 그래서 자신들의 신체 사이즈보다 큰 옷을 입고 있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운 마음 같은 감정이 효리의 마음에서 느껴졌다. 그 남자 옆에 자신의 엄마의 언니가 누워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모가 효리 자신에게 했던 괴상하고, 못나고, 조야한 짓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효리가 배고플 때 준 요쿠루트, 바나나, 집에 들어와 배가 고파 주방에 들어가 냄비를 열었는데 그 안에 있던 고기가 든 김치찜 등 백만 중에 하나인 선행들이 효리에게 그 무엇보다 비중 있게 밀려왔다. 효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에 있는 이모와 그의 남편에게 고개를 숙여 흐느끼며 울었다.

"그러니까 왜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 왜 나 이모 조카잖아. 가족이잖아. 난 다른 거 바란 거 없었단 말이야. 사람답게 살게 해 줬어야지. 어떻게 조카 몸을 팔게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 인간들아"

그녀는 그렇게 몇십 분을 대성통곡하다가 현실을 깨달았다. 이 현장은 살해 현장이었다.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도저히 통화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효리는 억울했다. 지옥 같은 혈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감방에 수인이 되더라도 올타구나 하며 춤을 추고 들어갈 줄만 알았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도저히 그럴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반항심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살인의 명분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효리는 머뭇거림과 죄책감 그리고 방금 전까지 통곡하던 자리에서 마치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중에 컷 소리가 난 후 벌떡 일어나는 배우처럼 얼굴색을 순식간에 바꾸더니 시체들을 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틀으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파면서 그녀는 노래에만 집중했다. 노래가사는 로맨스, 당찬 여성, 우정, 인생을 노래하는 노래들이었고 자신의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회피하고자 노래와 자신을 합일시키며 애써 잡생각과 앞으로 펼쳐질 두려운 생각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리나 집 대문은 막지 않았다. 그 이유는 땅을 파고 있는 효리도 알 수 없었다. 또한 어차피 들어올 사람도 없었다. 죽은 그들과 효리에게 관계다운 인간관계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효리는 생각했다. 땅을 시체 두구가 들어감 정도로 팠다. 주변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다. 다소 코믹하지만 효리는 자신이 죽인 시체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처음에 이모의 시체를 옮기고 그다음 이모부의 시체를 옮겨 최대한 정연하게 만들었다. 그다음 시체를 지긋이 바라본 후 옆에 쌓여있는 흙을 다시 덮고 인사를 했다. 그때 별안간 대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효리는 화들짝 놀라 대문 쪽을 쳐다봤다. 너무 갑작스러워 어떤 형체를 봤는지 보지 못했는지 헷갈렸다. 효리는 들고 있던 샆을 옆에 던져놓고 다급히 대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효리는 바람이 불어서 문에서 소리가 났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시체가 묻어있는 자리로 돌아와 주변을 정리했다. 거사를 치른 후

욕실로 가서 몇 시간을 씻고 또 씻었다. 물부족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샤워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이 냄새나는 상황을 씻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살갓이 벌겋게 올라와 있었다. 씻고 나온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리고 이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 얼음컵에 소주를 붓고 음식을 데운후에 마치 개처럼 야무지고, 게걸스럽게 음식과 술을 먹었다. 누가 보면 분명 한이 있어 보이는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들과 베란다에 쟁여놓은 술을 먹으며 토하고, 먹고 또 토하고 먹고를 반복한 후 침대에

뻗었다. 속은 더부룩하고 체한 듯했고(음식을 먹기 전부터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시체를 땅에 묻고 흙을 덮어 마무리 한 직후부터), 머리는 귀에 달팽이 관이 빠진 것처럼 어지러웠다. 목이 따가웠고 왼쪽 가슴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발끝은 쥐가 났다. 효리는 그런 상태로 아침까지 잠한숨 못 자고 침대에서 다음날이

맞았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동민이었다. 동민은 효리가 본래 웃음이라곤 없고,

항상 힘이 없는 모습이라는걸 알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서있는 효리의 꼬라지는 시체 그 자체였다. 보이지 않는 실이 그녀를 위에서 지탱하는 꼬락서니 그 자체였다.

"힘들면 쉴래?" 동민이 걱정 스레 물었다.

" 아침부터 발정 난 새끼는 누군데요" 효리는 통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있잖아, 잘나신 회장님"

"알았어. 바로 준비할게" 효리는 대답했다. 동민은 효리에 상태를 보고 오늘은 쉬고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지만 효리는 죽을 것 같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자학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동민과의 대화 중에도 얼굴과 몸에 땀이 흥건했다. 몸도 몸이거니와 혹여나 마당에 있는 시체를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모와 그의 남편 그리고 시체가 묻어있는 바닥을 정리한다고 했지만 해 질 녘쯤 작업해서 그런지 너무 어수선하고 누가 봐도 어떤 사단이 난 것 같이 너저분했다. 다행히 동민은 눈치채지 못했고 효리는 현관문을 완전히 나간 동민의 모습을 방안에 숨어 커튼을 살짝 제치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효리는 그냥 옷만 입고 나가려다가 땀으로 젖은 몸을 보고는 다시 샤워 후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일터라고 볼 수 없는 일터로 갔다.


일주일 후


효리는 며칠 쉬겠다고 동민에게 말했다. 동민은 흔쾌히 허락해 줬다. 그는 전 세계 어느 유흥업소에서도 볼 수 없는 업주였다. 효리는 그런 동민에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자신이 죽인자들과 그의 자식과 짝짜꿍 해서 자신을 돈벌이로 여긴 존재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여서 마음을 쉽게 주지 못했다. 쉬는 날이었지만 효리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유는 집 마당에 묻혀있는 시체 두구 때문이었다. 효리는 그녀 마음에서 계속해서 노크를 하다 이제는 난동을 피우고 있는 죄책의 감정을 지우려고 별의별 노력을 기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예를 들어 종이에 이모와 숙부의 만행을 적고 소리 내 읽는 다던가 아니면 시체 위에 발을 딛고 "당신들은 내 발아래 있는 것들이야. 내가 우월해. 알아?"라고 하며 혼잣말을 떠든다던가 하는 노력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 들은 다 수포로 돌아갔다. 찰나의 회피와 알리바이를 자신에게 제공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단발성에 그쳤다. 그녀는 안 되겠는지 갑자기 집밖으로 향했다. 삼선 슬리퍼를 신고 효리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는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신하지 못한 발검음이었지만 무작정 걸었다. 하염없이 겄다가 앞에 손잡고 있는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가족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빠는 딸을, 엄마는 아들의 손을 잡고 화기애애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효리는 미칠듯한 분노와 적개심과 질투심으로 대뜸 옆에 있는 돌을 주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자신도 모른 상태로 단란한 죄없는 가족을 향해 걸어갔다.

별안간 효리는 그 집 안에 가장인 아이들의 아빠이자 남편의 머리를 후려쳤다. 돌맹이에는 피와 연골이 묻어나왔다. 옆에 있던 아내는 효리를 밀치고 아이들은 세상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했고 그렇게 그녀는 교도소로 들어갔다. 나중에 소식을 듣고 보니 남자는 다행히 생명의 지장은 없었고 무사히 수술 후 퇴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효리는 쉼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교도소에서 말도 못 할 정도로 마음이 가볍고, 여유가 넘쳤다. 이유인즉슨 땅속에 있는 시체두구에 대한 나름의 죗값을 이번에 감방에 수감된사실로 대신치렀다는 효리 그녀의 해석이었다. 전혀 상관없는 일로 수인이 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는 그녀는 그렇게 자신과의 망측하고 기묘한 타협을 했다.

이전 07화나의 것, 너의 것 그리고 우리의 일곱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