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옛 흔적으로부터 환상의 도시를 탐험하기
: 김은성
아침이면 바다를 항해할 배들이 저마다 뱃고동 소리로 화음을 맞추고, 깜짝 놀란 새들이 지저귄다. 성스러운 종소리가 푸르른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어촌 마을의 평화를 기도했던 이곳 수정마을은 우리나라 유일한 트라피스트 봉쇄 수녀원이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을 굽이 내려다보며 어떤 믿음의 기도와 함께 시절을 지나온 작은 마을이 바로 수정마을이다.
일일생활권 대한민국에 살면서 가보지 않은 지역이 얼마나 많던가. 경상남도 창원 첫 경험은 ‘솔방울커먼즈’의 최희진 연구자를 통해서였다. 최희진 연구자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과 창원 수정마을을 오가며 현장의 이야기를 경험하고, 기록하고, 움직였다. 이번 리서치트립을 기획에 의미는 정성스럽고도 끈기 있는 그녀의 모습에 응원하고 싶었던 마음 절반, 수정만 매립지를 둘러싼 이야기에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모색하는 일이었다.
이탈리아 작은 어촌 같은 수정마을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턱 밑까지 잔잔한 바다가 밀려왔던 흔적과 그 풍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누군가의 기억, 그리고 마치 포토샵으로 지워놓은 것처럼 콘크리트 바닥 그리드가 새겨진 6만 평 매립지가 있다. 그 매립지를 둘러싼 갈등이 장장 15년이라고 한다. *이에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수정만 편 기록을 참고하라 찰랑이는 마을 앞바다를 메우니 그 땅에 심어진 것은 갈등의 씨앗이었다. 어떤 문장으로도,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모습의 텅 빈 매립지와 고요함 속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마을의 풍경은 두 발 딛고 그 자리에 섰을 때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사전 답사 후에 빽빽이 들어찬 편치 않은 감정들을 품고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그곳에 가서 예술로 전하는 언어,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이윽고 답답한 문제를 열어 줄 열쇠가 등장했다. <2020년 동네의 원더키디> 공놀이로 공공예술을 하는 예술人 체육 동호회.(이하 원더키디) 원더키디는 헤집어진 상처를 알고도 모르는 척이 아닌 모르는 채로 두고 무해하고 무의(의도 없음)한 공놀이 예술작업을 구상했다. 프로젝트명 혹은 작전명 ‘골대 없는 그녀들’! 수정만 매립지 위 골대 없이 승, 패도 없이 무한 패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스타디움 설립을 기원하며 5월 20일 서울역 기차 출발 소리와 함께 공은 던져졌다.
원더키디의 <Ditto> https://www.youtube.com/watch?v=5EW5jZd43Yc
서울역에서 올려 찬 축구공은 수정마을 어느 집 담벼락 안으로 팅글탱글 굴러 들어갔고 조금은 뻔뻔한 얼굴로 “아이고, 공이 넘어갔네. 공 좀 차 주세요.” 이것이 뻔뻔한 예술가들의 작업 전략이었다.
전략 1. 축구공을 돌려받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받아 채웠다. 메시지 공은 이 골목 저 골목, 이 도랑 저 이랑을 오락가락하며 주민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어느 집이 같은 팀이고 어떤 집이 다른 팀인지 모두 알 리가 있나. 공에 메시지가 가득해질 즈음엔 두 손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전략 2. “아이고, 각 집에서 나눠주는 재료 모아 같이 먹을 전 한번 부쳐 볼랍니다.” 뻔뻔한 예술가들의 작업 전략이다. 메시지와 더불어 자리에서 다듬던 파, 키우던 부추, 당근 등 전을 부칠 재료도 받아 왔다. 우리는 스스럼없이 내어 주는 앞마당과 전 부칠 재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갈등 앞에 예술가 전략이 작동하는 것을 기뻐했다. 화합의 전이 프라이팬에 올라갔다. 비록 노인회관 건물은 나뉘어 있었지만 여러 집에서 내준 재료가 들어간 화합•평화의 전을 나눠 먹으며 모르는 사이 화합했으리라 믿어 의심치않았다.
예술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즐겁게 신나게 잔치에 빠질 수 없는 가무(歌舞)로 마을 사람들을 한 마당으로 모두 불러 모았다. 같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메시지가 가득 적힌 공을 서로 패스하는 것만으로도 예술로 뒤섞이는 평화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랬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빽빽했던 무거운 마음이 밀려 나가고 원더키디와 함께 시도한 예술로 말 걸기, 평화롭게 즐겁기 전략이 성공이라는 것에 마냥 행복했다. 손에 손잡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바라본 얼굴들은 즐거움과 행복에 들떠 있어 보였으니 말이다.
창문 너머로 손짓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불만과 갈등을 표출했다. 서운함과 분노. 저마다 감정들의 이유는 있었으나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 멀리 15년 전 심었던 분란의 씨앗이 어마어마하게 마음에 자리잡아 저 깊은 곳까지 굵은 분노의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었다. 공을 차고, 전을 나눠 먹고, 춤추며 노래할 때 안 보였던 어쩌면 보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던 표정이 드러났다. 뿌리로 쩍 갈라진 깊은 갈등의 골짜기 앞에서 난 외면하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최희진 연구자와 수정마을 청년이자 활동가 마을 내 공유공간 '수정과'를 운영하시는 이슬님은 당황하며 절망한 나에게 "늘 그러니 괜찮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늘 그랬다.’ 늘 그랬던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세심히 살펴보지 않았을까. 여러 자책과 함께 늘 그렇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목격한 깊은 갈등의 골짜기의 모습이 삶터 앞에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떤 것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어쩌면 수정마을에 잠시 왔다가 떠나갈, 사람들의 억지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사실 앞에 때로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터덜터덜 매립지로 향했다. 거대한 분란의 씨앗이 심어진 욕망의 땅. 여전히 땅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를 두고 불같은 분노가 여기저기서 폭발하고 있는 곳이다. 매립지에 앉아 고요히 일렁이는 바다 너머 마을을 보니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때마침 산 중턱 트라피스트 수녀원 종소리가 깊은 갈등의 골짜기 사이에 파동을 일으키며 바다와 마을 위로 내려앉았다.
5월 20-21일 오픈리서치트립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기억을 적으며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오늘에서 내일로 나아가려 분주한 삶터 그 현실 앞에 예술은 어디에 어떻게 있어야 할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에게도 작업을 잘 해내려는 욕망이 들끓었던 것 같다. 매끈하게 마무리하려는 행사, 프로그램과 많은 이들이 찾아주고 마냥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앉은자리에서 상상한 모습이 사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믿는 태도들.
공공예술프로젝트 내에서 진행한 오픈리서치트립 <길이 없는 땅: 수정만> 결과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아주 비싼 마음을 치르고(미안함과 어떤 죄책감)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고 대답하겠다. 실패냐고 묻는다면 성공이라고 할 것이고 성공이냐 묻는다면 실패라고 대답하겠다. 그 어느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예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원더키디는 예술로 꼭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반문한다. 그리고는 대답한다. 수정마을에서 다 같이 전을 나눠 먹고, 한자리에서 기뻐하며 공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하던 순간들이 평화의 시작이자 지난 상처를 ‘매립’ 할 예술 같은 순간이라고. 나 역시 ‘길이 없는 땅: 수정만’를 기록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예술이 만든 예술 같은 순간이 모여 삶터에서 평화롭게 작동하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찾으려 애써보자는 다짐으로.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폴로는 황제 칸에게 그동안 다녔던 도시들에 대해 말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면서 보았던 세월을 견딘 도시들은 바람에 굴러다닐 죽은 이의 뼈도 없는 빈터, 바다의 옛 흔적이었지만 이젠 섬이 된 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성 바깥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황제 칸은 마르코 폴로가 다녔던 도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집하여 환상의 도시를 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환상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황제의 손짓에 따라 흠없이 세워진 도시의 경관은 낡고 허름하다고 여겨진 삶의 흔적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성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황제 칸이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만으로 듣고 세운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모아진 환상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그것이 곧 환상적인 아름다움일 수 있을까요.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에서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풍요의 땅이라고 불리는 금란도(충청남도 서천군)와 미래산업을 대표하는 수상 레저의 도시이자 캐릭터 해로의 주 무대 거북섬(경기도 시흥시),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땅 수정만(경상남도 창원시)으로 향합니다.
* 본 글과 영상은 히스테리안 - 예술로 가로지르기 공동기획자 김은성 기획자와 서울의 개발과 사라지는 지역을 둘러싼 역사적 이해관계를 담고 있는 이경민 작가의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특정 지역의 삶터의 이야기를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 치부하기보다 삶터를 연결해 온 개인과 맞닿은 역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오늘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 이경민
도시를 걸으며 다양한 것을 수집하다 보면 각각의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줄 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요소'는 도시 안에서 경험하고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주거•생활•여가•문화시설과 같은 물리적 공간, 이동에 필요한 도로•교통 시스템, 인공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만든 도시조직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서로 연결된 유기적 관계 등 도시라서 가능한 요인들을 포함한다. 삶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인간이 행위하는 과정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각각의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장소를 형성하고 도시를 이룬다. 다양한 요소를 만들고, 도시를 채워가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계를 살피는 일은 흔치 않다. ‘도시는 누가 만드는 것인가?’로 시작해 도시를 계획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계속 묻고 역추적해나가면 결국 그 끝에는 ‘시민’이라 불리는 우리. 즉, 각기 다른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시민이 도시를 운영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합의된 행위, 즉 ‘투표’를 통해 대표하는 인물(시장, 구청장)을 뽑고, 그 인물이 고용한 사람(각 부서 장관 및 도시 전문가)들이 함께 도시를 만들어 간다. 시민들의 의견을 100% 받아들이고 실행하지는 않지만, 의견이 씨앗이 되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위와 현상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를 살피는 일은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보고, 어떤 방식과 방법으로 표출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태도를 비롯하여 그 과정을 살필 수 있다.
결과로써 명확한 답을 얻기보다는 항해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상황과 생각들이 모여 답에 가까워지는 현상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관계성이 서로 맞물리면서 상황이 생겨나고 이해관계, 소문, 이야기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도시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작은 단위로 촘촘히 쪼개 볼 수도 있다. 때론 과정 안에서 우리 사회를 긴밀하게 작동하게 하는 도시 시스템이나 미처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작은 틈을 발견하기도 한다. 각각의 조각들을 꿰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는 도시가 탄생한다. 인간의 삶을 담는 동시에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적절한 피사체이자 장소가 된다.
예술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 수정마을에 간 2020년 동네의 원더키디
히스테리안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천근성 작가가 속해 있는 ‘2020년 동네의 원더키디’는 코로나 때 일거리가 줄어든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체육동호회이다. 건강증진과 유머와 기발함이 장착되어 있는 ‘원더키디’가 <골대 없는 그녀들> 오픈리서치 프로그램 [길이없는땅]을 진행했다.
창원 마산 합포구 수정마을은 1990년, 택지 용지로 공유수면 매립 면허가 승인되면서 매립된 바다가(수정만) 있는 곳이다. 2006년에는 택지 용지에서 산업 용도로 바뀌면서 조선 기자재 생산 공장 유치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산시와 X사는 주민들의 의견 수용과 대책 마련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 유치를 진행했다. 조선 기자재 공장이 지역 사회에 가져다줄 경제적 효과만을 거듭 강조하며 개발 보상금과 마을 기금으로 주민들을 회유하였다. 자신들의 생존과 무관하지 않은 사업의 방향성에 수정마을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의견 대립을 보이며 지속적인 갈등 상황에 놓였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반대 운동을 지속했다. 최종적으로는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결과를 끌어냈지만, 주민들 간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남았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잘못된 행정 방식과 욕망이 담긴 상황에서 찬성과 반대 입장에 선 주민이 서로 등을 지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갈등의 인과관계를 살피던 중 의문점을 하나 발견했다. 수정만이 매립된 것은 조선 기자재 생산 공장 유치가 진행되기 전이다. 용도만 달랐을 뿐 ‘매립’이라는 행위는 같다. 당시 주민들 간 갈등이 있었다는 말은 전해 듣지 못했다. 외부에 보도된 언론 기사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갈등이 없었던 것인지, 있었으나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보면 주민들 간 갈등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출발했지만, 주민 각자가 기대하는 지점들이 달랐던 내부적인 요인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다. 다만, 조율과 협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을 끌어내는 방법이 공동체를 와해시킬 만큼 심각하게 잘못된 방식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둘러싼 지역에서 ‘원더키디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내내 맴돌았다.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하는 활동하는 것을 지켜볼 때마다 늘 품고 있던 의문이 하나 있었는데, 이 팀은 어떻게 풀어 나갈지도 궁금했다.
예술이 현실에 직면한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예술가마다 무게를 두는 지점과 정도가 다르겠지만, 지역과 연계된 작업을 할 때는 예술가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한 고민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들에게는 예술작업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작업과 별개로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복잡한 상황이 존재하는 장소(마을)에서 진행되는 예술작업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다가갈 수는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편한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점을 해결하고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 과정에 놓여 있어야 했다. 그렇게, 원더키디가 수정마을에 전하는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골대 없는 공을 차고, 다 함께 전 부처 핸섭!
처음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원더키디는 공을 차면서 마을을 휘젓고 다녔고,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주민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와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메시지를 요청했다. 공에 메시지를 적고 어딘가를 향해 뻥-차면 된다고 했다. 평화와 공을 차는 것이 어떤 연결성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반복하는 과정 안에서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메시지를 적고 공을 차는 순간만큼은 아이가 된 것처럼 모두 한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원더키디가 말하는 평화인 것 같았다.
다음 날 행사에서 만들어 먹을 음식 재료를 주민들로부터 미리 공수해 두었다. 주민들은 밭에서 키우고 있던 쪽파, 상추 등 채소를 바로 수확하여 내어 주었다. 잘 가공된 재료를 상점에서 구매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그렇게 모은 재료로 뚝딱뚝딱 전을 부치고, 너 나 할 것 없이 함께 먹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원더키디의 축하공연이 이어지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행사 같지만 '주민들 간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골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괴롭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잠시 잊고 하나가 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평화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이웃 등지고 산 17년, 마산 수정마을의 상황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수정만 6만 평 매립지의 소유를 둘러싼 분쟁의 대화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결과 마을회관은 두 곳으로 나뉘기까지 했다.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 홍합과 조개를 캐오던 주민들에게 매립지란 균열의 존재였다. 찬반으로 갈려 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는 그들에게 예술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공공예술 오픈 리서치 트립 <길이 없는 땅: 수정만> 예술人체육 동호회 «2020년 동네의 원더키디»는 공을 건네고 그들의 상처 속에 안녕을 물으며 무해(無害) 한 예술의 언어로 말 걸기를 시도한다. 수정만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공놀이는 골대도 없으며 내 편도 네 편도 없이 점수도 없다. 예술로 꼭 무엇을 해야 하나? 의 틀에서 벗어나 한 사회인으로서 공동체로서 우리가 더욱 잘할 수 있고,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했다.
그것은 다양한 재료를 뒤섞어 부치는 전처럼, 수정만과의 털 없는 ‘뒤섞임’이었다. 경계 없이 그들과 동화하여 손도 잡고 박수로 치고 웃기라도 하는 것이 지금 이 척박한 세상의 평화를 되찾아오는 하나의 작은 행동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나고도 끝나지 않은 마음을 담아 이 짧은 글을 적어본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것들이 쌓여 예전 상처 깊은 이야기들을 ‘매립’시켰으면 좋겠다.
2023년 5월 21일 : 공공예술 오픈 리서치 트립 <길이 없는 땅: 수정만> 완료"
[내용출처] 2020년 동네의 원더키디 인스타그램 @2020_wonder_kiddy
함께 노력해야 돌아올 평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욕망의 결과들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한 순간에 돌아온 말들과 감정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때론 우리의 바람과는 별개로 상황이 흘러갈 때도 있다. 주민들 간 갈등 관계는 나아지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소한 것에 섭섭함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했다. 17년 동안 서로 등을 돌리고 살아온 시간이 있으니 그 해묵은 감정들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마을에 있는 팀 수정과를 비롯하여 외부 전문가, 문화기획자, 다른 지역의 청년들이 함께 의기투합하여 갈등의 거리를 좁히고 공동체 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상황이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애써준 사람들의 수고를 봐서라도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이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고민하고 전하고자 했던 마음에 오히려 생채기를 냈다. 어떤 의미인지 냉정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 없듯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해묵은 숙제들이 조금씩 풀리는 법이다. 외부인이 100%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화해의 씨앗은 그들이 심더라도 갈등을 풀어낼 열쇠는 주민들에게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힘들어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수정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 보면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외부인으로 주민들의 삶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말이 설득되지 않아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근시안적인 사고일 수 있음에도 불편한 감정에 관해서 설명해 본다. 주민들 간 오래 묵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내부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이 되어 외부인에게 표출되는 느낌을 받았다. 행사 중 번호 추첨을 통해 선물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있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받으면 가장 이상적이었겠지만, ‘먹고, 즐기고, 모이는’ 시간을 마련하여 함께 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도 선물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진행 과정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토로했던 주민들이 있었다. ‘공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해당 행사에서 느낀 감정이라기보다는 기존 갈등 상황에서 쌓여 있던 감정의 연장선상으로 느껴졌다. 분명 별개의 프로그램이고, 의도도 달랐으나 받아들이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문득 이런 상황에서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하는 ‘팀 수정과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했을까? 쉽지 않지만 ‘찬성과 반대’라는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쏟아 내려고 시도를 해 보았을까? 아마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주민들이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조차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쉽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중간 매개자가 있는 상황에서만 기능하는 관계 회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존재하고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서 불쑥불쑥 표출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대방이 상처받는 상황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주민들을 대면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인지는 숙제로 남겨졌다.
마산시와 X기업의 탐욕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지역 사회와 공동체가 파괴되고, 개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력은 과거로써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는 수정마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에 책임지지 않고 온갖 욕망과 탐욕으로 가득한 곳에서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안에서 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필자소개
도시를 관찰•탐구하는 수집가. 현재 SNS계정 서울수집을 운영하고 있다. 지도에 없는 길을 헤매고 바라는 이상보다는 가까운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애매한 정체성을 가진 채 도시를 헤집고 다니면서 도시와 나라는 사람을 연결하며 관계성을 발견하고 위안을 삼는다.
답사 일시: 2023.5.20~21
호스트: 최희진(도시연구자) / 원더키디(천근성, 문우림, 유형주, 김강현, 이연우)
협업 : 노드 트리 (이화영, 정강현), 이산, 오세일
기획: 예술로 가로지르기
주관: 히스테리안 출판사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본 프로젝트는 아르코 공공예술 주제심화형 프로젝트 <예술로 가로지르기 -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 출몰지>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소식 - https://www.instagram.com/around_across_above/
https://around-across-ab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