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수록 비춰주는 등대 '비전'

새로운 기회, 새로운 마음의 도전

by 서담

직업 군인들의 전역 시 연령은 40~50대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80세가 넘기 때문에 나머지 30~40년 이상은 새로운 사회생활의 삶을 보내야 한다. 군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군인으로서의 삶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었는데 앞으로 전혀 다른 인생의 과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태어나서 군 생활까지를 인생 1막이라고 한다면 군 전역과 동시에 인생 2막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미래의 새로운 인생살이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전역 후 새롭게 사회에 나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장밋빛 사회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생과 사의 냉엄한 전장을 가정하여 교육과 훈련으로 단련된 단순하고 경직된 사고방식과 습성은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제동이 걸린다. 자신은 새로 취업하는 입장이지만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도 퇴직할 나이에 재취업을 원하고 있기에 취업 시장은 엄청난 경쟁이 벌어진다.


설령 취업을 한다 해도 군 생활 동안 몸에 밴 계급의식과 낮은 곳에서는 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나이 어린 상급자에 대한 복종 의식 부족, 연금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감 등으로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고, 습관화된 조기 출근, 야근, 언어 습관, 권위주의적 생활 태도 등은 같은 직장 동료와의 마찰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는 결국 사회생활에 부적응하여 소외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열심히 자기 계발을 통하여 맞춤형 일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은 책임감을 갖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는 군 생활의 경험만 갖고 자기 계발을 하지 못한 채 전역을 했으므로 내게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회생활에도 제대로 적응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자신의 재능이 어느 부분에 있는지 알고 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방황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엉뚱한 곳에 지원했다가 귀한 시간만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군 생활에 종종 들었던 ‘안 되면 되게 하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라는 말을 적용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냉혹하다. 안 되는 일 투성이이고 고난은 첩첩산중이다. 비전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언제나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 사라질 때에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후,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썼다. 프랭클은 아무런 잘못 없이 죽음의 수용소에 갇힌 사람, 즉 가장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일지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며 그 상황을 수용하는 사람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근본적인 삶의 위기 속에서도 건설적인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고통과 죄와 죽음과 같은 비극에서도 의미를 찾아내어 그것을 삶의 밑거름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 묘사된 몇 구절을 보자.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뎠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놀라운 사례를 몇 가지 더 들어 보자.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 번째 단계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 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대다수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 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이 책에서 빅터 프랭클은 고난만이 인생을 깨닫게 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난이 생긴다면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일부러 고난을 찾아가는 사람은 변태일 뿐이다. 죽음의 수용소 같은 생활, 오랜 직장이었던 군대에서 나오게 된 일, 청춘을 다 바쳤던 직장에서 쫓겨난 일, 치명적인 질환에 걸리게 된 일 등 거의 모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재해석을 통해 절망적 상황을 바꾸어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고난을 재해석함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결국, 비전은 고난에서 길을 만들어 주는 북극성이며, 살아있는 내가 미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나침반과 같다.

지금의 상황과 시간이 나에게 위기라고 할지라도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 의미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배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준비되어 있느냐, 열심히 수련하고 있느냐이다.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기회는 지나갈 것이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업을 할 때 부딪히게 되는 가장 큰 난점은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시장에 새로 발을 들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동네 어디를 가 봐도 치킨집과 커피 전문점, 편의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사업자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다. 나도 그 사업을 해야 하는가? 성공 가능성은? 퀘스천 마크일 수밖에 없다.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 틈새시장 공략에 눈을 돌려야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


펩시는 정면 승부로 코카콜라를 절대 이기지 못했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코카콜라와 맛을 비교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펼쳐 보기도 했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코카콜라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펩시에서는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로 계획하였다. 현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타깃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선택은 무려 20년 후에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펩시를 즐겨 마셨던 어린 청소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자 펩시를 찾게 된 것이다. 코카콜라에서는 ‘이것이 진짜(the real thing)’라는 광고 카피로 대항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펩시 맛에 길들여진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2008년 12월 홈쇼핑에서는 애견 보험을 출시하였다. 개가 아파서 병원에 갈 경우 입원비까지 지불하는 상품이었는데 당시는 미국 발 금융 위기로 경기가 그리 좋지 않을 때였다. 어려운 경기 탓에 많은 사람들이 기존에 들었던 보험을 해지하는 판에 개를 위해 보험을 드는 게 말이나 되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상품 출시 후 소비자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하여, 첫 방송에서만 기존 보험 매출의 네 배 이상의 실적을 냈다고 한다. 포화 시장에서 대상을 바꾸어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사례이다.




성공의 발판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호기심과 도전 의식으로 접했던 미래가 절망으로 다가왔을 때 필요한 것은, 절망을 절망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기회로 삼고자 하는 마음이다. 넘어졌다고 해서 넘어진 땅을 원망만 하고 있어야 하겠는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땅을 다시 딛어야 한다. 비전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 보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무궁무진한 일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