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바람이 지나간 자리
눈이 오려고 그랬나 보다
하루종일 좀처럼 사무실 밖을 나가지 못했다. 평소의 비 오는 날과는 사뭇 달랐다. 바람은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쏟아내려는 듯, 방향도 알 수 없이 이리저리 휘몰아쳤다. 닿는 것마다 가차 없이 흔들어대고, 넘어뜨리고, 꺾어버리는 모습은 마치 오래도록 억눌린 분노를 토해내는 것 같았다.
우산은 비를 막아주기는커녕 바람막이가 되어 속수무책으로 구부러지고, 끝내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그 무기력한 모습이 꼭 무언가를 막아내기에 힘에 부친 우리의 마음 같기도 했다. 무엇이 이 바람을 이렇게 화나게 했을까? 밤새 쏟아지던 비는 아침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고, 바람은 그 비를 등에 업고 더욱 거세졌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바람은 성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흔적이 남았다. 거리와 바닥을 덮은 나뭇잎들, 쓰러진 간판, 길 위를 날아다니는 종잇장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었다.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잔가지가 꺾여도 여전히 서 있는 나무들, 고개 숙인 채 바람에 몸을 맡기는 작은 꽃들. 그들은 바람의 분노에 맞서지 않았다. 다만 그저 견디고, 버티며, 지나갈 순간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이 세찬 바람도 결국 언젠가는 잦아들겠지. 바람도 언젠가는 지치고, 고요히 흩어질 테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더 단단해진 세상일 것이라고... 마치 우리 인생의 폭풍 같은 순간들처럼, 견디고 나면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깊어진 내면을 발견하게 되겠지.
화가 난 바람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순간들도,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나 지나가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흔들려도 다시 일어서는 것, 꺾여도 그 자리에 뿌리내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폭풍이 지나간 뒤 마주할 더 맑은 하늘을 믿는 것.
오늘, 나는 바람이 화난 날을 통해 배우고 느낀다. 우리가 지나가는 모든 고난은 결국 지나가며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바람 뒤의 고요한 세상은, 우리가 끝내 지켜낸 희망의 자리로 남을 것이다.
“폭풍은 결국 지나가고, 남은 자리는 더 단단하고 새로운 빛으로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