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차가운 겨울 공기가 옷깃 사이로 스며들며 나의 걸음을 재촉했다. 이맘때면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문득 스쳐 가는 바람에 겨울의 깊이를 새삼 깨닫게 된다. 따뜻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게 되는 계절이다. 몸을 움츠리며 무심히 길을 걷던 나의 시선이 어느 순간 멈춰 섰다. 화단 한쪽에 고요히 피어난 작은 꽃들 때문이었다.
삭막해질 뻔한 겨울 풍경 속, 그 꽃들은 마치 속삭이듯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화려하지도, 눈에 띄게 크지도 않았지만, 그 차분한 빛깔이 차가운 풍경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꽃들. 마치 이 계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었다. 그 조용한 강인함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꽃들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그 작은 생명체가 내게 무언가를 말해 주는 듯했다. "나는 내 계절에 피어났다. 나의 시간은 겨울이었다."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게 했다.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리고, 복잡했던 마음도 차츰 가벼워졌다. 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큰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꽃도 저마다 피어나는 시간이 있다. 봄의 벚꽃은 따뜻한 바람을 타고 피어나고, 여름의 해바라기는 태양의 정점에서 빛난다. 가을의 국화는 선선한 바람 속에서 고개를 들고, 겨울의 꽃은 추위를 품고 그 안에서 고요히 꽃잎을 펼친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어나듯, 우리 역시 저마다의 속도와 시기가 있다. 누군가는 일찍 만개하고, 또 누군가는 더디게 피어난다.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빠르거나 더 화려하지 않아도, 결국 자신의 계절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사실이다.
나는 때로 내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누군가는 이미 저 멀리 앞서 나아가고, 누군가는 더 높은 곳에서 빛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겨울꽃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내게도 반드시 피어날 계절이 있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속도나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따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갑게만 느껴졌던 겨울바람이 이제는 다르게 다가왔다. 겨울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꽃들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도 너의 계절에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피어날 거야." 그 다정한 위로가 내 걸음을 가볍게 했다.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나는 한결 따뜻해졌다.
“꽃은 자신이 피어날 계절을 의심하지 않는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계절은 반드시 찾아오고, 그 계절 속에서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