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표현
젊은 시절의 나는 다소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다정한 손길도, 다른 누군가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들이 내겐 쑥스럽고 어색했다. 늘 조용히 묵묵히, 말없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 ‘남자답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 역시, “당신은 원래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표현하고 싶다’라는 충동이 생겼다. 그게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오히려 원래 내 안에 있던 본성이 늦게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는 하루에도 여러 번 아내를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가만히 입을 맞춘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몸에 배어 있던 과묵함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늘도 고맙다’라는 마음이 차올라 손끝에 닿을 때, 나는 그 편견의 벽을 조금씩 허물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연습하듯 다가가다 보니, 이제는 내 일상이 되었다.
“자기답지 않게 왜 그래? 어색하게.. 말이야.”
아내가 처음에는 이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그런 말투 뒤에, 조금은 흐뭇해하는 눈빛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그 쑥스러움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요즘은 가끔 아내가 먼저 다가와 손을 잡아주거나, 한참 동안 나를 꼭 안아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서로의 마음은 이렇게 배워가는 거구나’ 하고.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사랑은 오래 함께한다고 저절로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매일의 작은 표현과 다정함으로 쌓여간다는 것을. 말이든, 행동이든, 눈빛이든, 그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에게 ‘당신이 소중하다’는 마음을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함께 늙어가는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언어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젊은 날의 무뚝뚝함은 후회스럽다. 그러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변화가 더 값지게 느껴진다. 늦게 배운 다정함이 오히려 더 깊고 진하다. 이제는 알겠다. 나이가 든다는 건 단지 주름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내는 여전히 손사래를 치며 “당신, 너무 변했어. 180도로, 예전 같지 않아”라고 웃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웃음이 행복하다는 증거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아내의 손을 잡고 품에 안는다. 그리고 마음을 전한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한 줄 생각 : 사랑은 늦게 배워도 괜찮다. 중요한 건, 오늘 더 다정해지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