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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사는 사람들

'숨'이고 '호흡'이다

by 서담

나는 살아간다. 그러나 때로는, 글로 살아간다. 말보다 문장이 나를 더 잘 설명할 때가 있고, 현실보다 글 속의 세계가 더 명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현실을 사는 게 아니라 글을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글에 사는 사람들, 아마 우리는 그런 부류일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은 문장으로 보인다. 길 위를 걷다가도, 누군가의 표정을 보다가도, 문득 한 줄이 떠오른다.

“이건 글이 되겠는데.”

그 한 줄이 마음속에 내려앉으면, 세상은 그 즉시 기록의 대상으로 바뀐다. 하늘의 색, 사람의 말투, 바람의 방향마저도 문장의 재료가 된다. 삶은 흘러가지만, 그들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단어로 붙잡는다.


글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경험하기보다 해석한다. 어떤 감정이든 글로 쓰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사랑도, 상처도, 두려움도 문장으로 정리되어야 비로소 ‘이해된 감정’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들을 느리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느림은 곧 ‘깊이’다. 그들은 세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장면을 곱씹고, 한 단어를 음미하며, 그 속의 의미를 오래도록 더듬는다.


글에 사는 사람들은 글을 멈추면 불안하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 한쪽이 텅 빈다. 머릿속엔 문장이 쌓이고, 그 문장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숨이 막힌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행위’가 아니라 ‘호흡’이다. 숨을 들이마시듯 쓰고, 내쉬듯 고친다. 그래서 글은 그들에게 ‘생존의 방식’이다.


이들은 독서를 단순한 정보 습득으로 보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마다 문장의 결, 리듬, 호흡을 느낀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굳이 밑줄을 긋지 않아도 된다. 그 문장은 이미 마음속에 리듬으로 남는다. ‘내가 쓴다면 이렇게 쓸 텐데.’ 그렇게 독서는 곧 창작의 예행연습이 된다. 읽고, 생각하고, 흡수하며, 다시 쓴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문장을 넘어 자신을 빚는다.


글에 사는 사람들에게 현실과 글의 경계는 희미하다. 현실의 사건보다 글 속의 해석이 더 오래 남고, 글로 쓴 기억이 더 선명하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글로 옮겨져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그들은 늘 ‘관찰자’로 산다. 말하는 나, 느끼는 나,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또 다른 나. 그 세 존재가 늘 함께 걷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보고 있는 또 다른 나와 함께 산다.”


그들에게 글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글을 멈추면 ‘나’라는 존재의 윤곽이 희미해진다. 세상의 리듬이 아닌 문장의 리듬으로 살고, 하루의 기분은 사건이 아니라 문장의 완성도로 결정된다. 문장이 잘 써지면 세상이 괜찮고, 문장이 막히면 모든 게 막막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문장에 갇힌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그 문장 속에서 자신을 해방한다. 글을 쓰는 동안, 그들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 혼란스러운 현실도 문장 안에서는 질서가 생기고, 불안한 마음도 문장 안에서는 의미를 찾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듯, 글쓰기는 몰입이자 정화의 과정이다. 글에 사는 사람들은 그 몰입 속에서 평화를 찾는다. 시간이 사라지고, 세상과의 경계가 흐려질 때, 그들은 가장 자기 자신에 가까워진다. 글을 쓰며 자신을 정화하고, 자신을 확인한다. ‘나는 쓸 수 있다.’ 그 단순한 사실이 그들에게는 존재의 증명이다.


그래서 글에 사는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로 살아 있는 사람이다.”


글은 그들에게 직업이 아니다. 글은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자신을 지키는 도구이며,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어떤 이는 그것을 중독이라 부르고, 또 다른 이는 사명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글은 중독이 아니라 ‘숨’이다. 멈추면 사라지는, 그러나 쓰면 다시 살아나는 그들의 호흡이다.


나는 안다. 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늘 복잡하고, 그 복잡함 속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그들은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깊이 본다. 세상의 밝음과 어둠을 모두 기록하려 애쓴다. 그들의 문장에는 생이, 그리고 생의 고요한 고백이 담겨 있다.


글에 사는 사람들은 오늘도 쓴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이 곧 삶이고, 문장이 곧 심박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이 위에서, 혹은 화면 속에서 오늘도 살아 있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한 줄 생각 :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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