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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돌아오는 시간

귀한 순간

by 서담

주말 아침, 세상은 아직 깊은 잠에 잠겨 있다. 거리의 소음도, 사람들의 분주한 발소리도 멈춘 이 시간, 오직 작은 스탠드 불빛 하나만이 내 앞을 비춘다. 방 안의 공기는 고요하고, 그 고요 속에 나의 숨소리만이 잔잔하게 흐른다.


하루쯤은 푹 자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은 새벽녘에 또다시 저절로 떠졌다. 습관처럼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의 글 목록을 열었다. 이른 시간에도 누군가의 글이 새로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는 고단한 마음을 다독이는 글을 썼고, 또 누군가는 지나온 날들을 조용히 회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들 앞에 한참 동안 머물기를 여러 번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마음이 걸렸다. 그저 읽는 것뿐인데, 묘하게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글이란, 꼭 직접적인 위로나 격려가 아니더라도 읽는 사람의 내면 어딘가를 조용히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이 시간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이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로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것을.


불을 켜지 않아도 괜찮았다. 작은 스탠드의 빛은 충분히 내 공간을 밝혀주었다. 그 빛은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드럽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 아래서 나는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들여다봤다.


요즘 세상은 너무 밝다. 너무 많은 빛,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러다 보면 오히려 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새벽의 이 조용한 어둠 속, 오직 작은 스탠드 불빛만 있는 지금은 ‘보이지 않던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고요한 시간에 비로소 자신을 만난다. 세상이 멈춘 그 순간, 마음은 가장 또렷해진다.” - 헤르만 헤세


나는 내 마음의 결을 천천히 어루만지듯 들여다본다. 조급했던 일주일의 감정들, 해야만 했던 일들의 무게, 그리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그 완벽주의까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면,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진다.


이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던 나의 하루 중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귀한 순간이다.


오늘 오후에는 대학교 2학년 학생의 진로 상담이 예정되어 있다. 아마 그 학생도 나처럼 불안과 기대 사이를 오가고 있을 것이다. 삶의 방향을 정한다는 건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일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꿈을 크게 가져라’는 말보다, ‘너 자신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세상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들지만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 역시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 이 새벽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위해 조언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다시 정돈하고, 나의 중심을 세워야 하니까.


나는 늘 생각한다. “하루를 바꾸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단 한 시간의 ‘진심 어린 집중’이다.” 그 집중의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새벽의 시간이다.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내가 쓰지 않아도 이미 누군가의 문장에서 내 마음을 읽는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 그 사실 하나로 마음이 위로받는다. 글은 그래서 놀랍다. 보이지 않는 공감의 다리를 놓고, 서로의 마음을 잇는 언어의 온기를 전해준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한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러나 진심으로. 세상의 복잡한 소음이 사라지고 나면 마음속에 남는 건 단 하나, ‘나의 목소리’뿐이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아. 오늘은 천천히 가도 돼.”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작은 위로 한마디가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 새벽의 고요함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순수한 선물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배우고, 내 마음의 방향을 바로 세운다.


전등 하나 없이도, 이 작은 불빛으로 충분하다. 빛의 세기가 아니라, 그 빛이 닿는 마음의 깊이가 중요하니까. 스탠드 아래의 이 조용한 시간은 하루의 시작이자, 나를 다독이는 치유의 순간이다.


새벽의 고요함은 세상의 소리를 끄고,
마음의 목소리를 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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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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