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창 Jul 18. 2023

이를 악물어야 했던, 12월 14일

좋은게 좋은것은 이제 없다

'수영장이 있고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집'과 '아무도 없이 혼자서 고독하기 위한 집'의 거리는 끝과 끝이었다. 급하게 소장님과 미팅을 잡고 이렇게 마음이 바뀐 과정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소장님은 '그럼 어떤 집을 만들어드리면 될까요?' 하고 물으셨다. 나는 '수준이 높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집'이라고 답했다. 추상적인 답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집은 말 그대로 '수준이 높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집'이었다. 그러고 나면 공간을 만드는 전문가인 소장님이 추상적인 나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현실에 그려내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소장님이 보여준 그림들은 나를 압도하지 못했다. '수준이 높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집'을 원했으니 '수준이 높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부터 정의되어 나를 설득해 주시길 바랬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미 '수영장이 있는 파티하우스' 컨셉으로 설계할 수 있는 기간 중 한 달을 날려버렸으니 촉박한 시간도 소장님의 편은 아니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기에, 그 시점까지 내가 희미하게 찾아낸 '수준이 높은 사람'의 조건들을 소장님께 전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고독할 수 있는 공간' '책을 읽고 싶어지는 공간' '사유할 수 있는 공간' 등등.


내 변화를 함께 겪게 만들어서 소장님께 송구스러움을 전했던 날..


이렇게까지 시간에 쫓기게 된 이유는, 내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지내고 있던 근처에 살던 아파트의 만기가 그다음 해 3월 말까지였기 때문이었다. 소장님도 12월 중순까지 설계가 마무리 되어야만 공사에 들어가고 그래야만 내가 4월 초에 입주할 수 있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촉박해진 일정 안에서도 오히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멈춰 서서 생각하고 방향을 잡고 움직였어야 했지만, 우리는 혼란스러웠고 부산했다.


이 집의 철학을 정리하고,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아 공유하고, 설계도 그리기 의 연속...이었던 나날들


집에 들어갈 가구들의 레퍼런스들을 보러 학동역 가구거리를 뛰어다니고, 내가 생각한 이 집이 담아야 할 철학과 레퍼런스 이미지들을 매일같이 공유하고, 그것들을 소장님은 취합하고 정리하다 보니 설계를 마무리하기로 한 12월 중순에 다다랐다.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최종 설계 시안은 그동안 내가 요구했던 모든 것들이 반영되어 있었다. 조금은 오버했지만 처음에 약속했던 견적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소장님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내가 원한다고 했던 걸 모두 담았고, 공사 견적도 잡아뒀던 예산 안에 들어왔으니 이제 공사로 넘어가면 되는 때였다. 당연히 설레고 기대가 커져야 하는 그 시점에 나는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불편했다.


다 있었지만 다 없었던 최종 시안


9월부터 함께 해 온 소장님은 밝고 순수한 사람이라 좋았다. 늘 최선을 다했고 따뜻했고 나를 배려했다. 처음엔 '수준이 높은 사람을 만드는 집'이란 이런 집입니다 하면서 나를 압도할만한 설계를 주셨으면 했으나, 그렇지 못했더라도 함께 맞춰나가면 되겠다 싶었다. 우리는 치열하게 만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은 우리는 올바르게 치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서로를 배려하느라 치열했다. 소장님은 소장님의 소신보다는 나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주려 했고, 나는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강단 있게 요구하지 못했다. 배려라는 이름 아래. 존중이라는 이름 아래.

그렇게 내가 쥔 최종 시안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끔찍한 혼종이 되어버렸다.


소장님도 나도 만족스럽지 못할 결과물이 될 것이란 것을 내가 명확히 알아버린 날이 12월 13일이었다.

12월 14일에는 최종 시안과 견적을 컨펌하면, 15일부터 철거였다.


하지만 '어떻게 여기서 멈출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멈추는 순간, 설계를 다시 시작해야 하고 공사는 미뤄야 하고 내 주거비용은 두 배가 되고 내 이삿짐들은 어디에 두어야 하나..

3달을 어찌 됐든 여기까지 함께 달려온 소장님에게 어떻게 중단을 말하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고 돈이고 비용도 너무 커지니 타협하자.. 그냥 넘어가자..  


그때였다. 이 모든 타협들이 나의 수준을 높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난 늘 이런 상황에서 적당히 타협했었다.

껄끄러운 상황은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았고 직접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피했다.

시간과 돈에 있어서 늘 효율적이어야 했기에 그것들이 우선이었다.

이런 태도로 만들어진 집은 나를 수준이 높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리가 없었다.


내일이 14일이니 어떤 방향이든 일단 소장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가 있는 성수역 근처에 호텔을 잡았다. 새벽까지도 잠이 오질 않았다.

'과거의 나'와 '되고자 하는 내'가 수도 없이 내 안에서 싸웠다.

'적당히 좀 살자는 나'와 '이제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내'가 수도 없이 내 안에서 싸웠다. 

'자잘하면 좀 어떠냐는 나'와 '위대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내'가 수도 없이 내 안에서 싸웠다.  


12월 14일 오후 2시

소장님이 우리 사무실 내 방에 도착하여 마주 앉았다.

소장님의 얼굴을 보니 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나는 프로젝트를 스탑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종 설계가 마음에 차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이 아쉬웠는지를 가감 없이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전할 때 소장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더 또렷이 보고 정중히 말했다.

대충 이 시간이, 이 고통이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아닌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새기고 새기며 말했다.


본인의 인생에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말하는 소장님의 얼굴과 눈빛을 보니 마음이 아리고 미안했다.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사실 이미 철거를 시작했었다며 바로 현장에 전화를 걸어 철거를 멈추라 지시하셨다.

그리고는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한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씀 주셨다.


이미 철거에 들어갔던 현장


12월 14일. 그날 나는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 하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감정이 앞서서 배려나 존중이라는 이름 아래, 탁월함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동시에 이 고통을 직면하여 지나온 사람의 성장을 꼭 소장님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다졌다.


이나모리 가즈오 의  '왜 리더인가'에서도 말했다. 옳은 일이라고 확신한다면 언제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그건 그렇고.. 이 집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