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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Jul 02. 2023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집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주택을 매입하고 두 달 뒤인 21년 4월 5일, 나는 만기가 오지도 않은 성수동 트리마제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주느라 부동산 복비로 몇 백을 더 쓰고 서판교의 아파트로 도망치듯 이사했다. 성수동에서 나는 도저히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심하거나 외로워지는 마음이 들면 집 앞 성수동이나 강 건너 압구정에만 나가도 그 마음을 가시게 할 사람들과 술이 넘쳤다. 이사 온 서판교는 모든 게 달랐다. 이 동네는 빌딩보다 나무가 많았고,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다.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 불편은 했지만 오히려 여유로움이 여기저기서 묻어났다. 디톡스를 하는 마음으로 일 년 조금 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매입했던 주택에서 지내던 세입자가 만기를 채우고 이사를 나갔다.


그렇게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집 2022년 7월 말


이때부터 인테리어 구상을 시작했다. 당시 나를 탐구하며 드러난 나의 키워드는 '무대'였다. 가수나 연기자들이 서는 그 무대를 뜻하는 일차원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조금 더 추상적인 의미의 무대였다. 내가 느낀 감동을 타인에게 전했는데 그게 통하여 함께 감동하는 경우에, 나는 특히나 존재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사업을 하며 상대를 설득해 냈을 때도 그랬고, 좋아하는 노래를 누군가에게 불러주었을 때도 그랬고,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누군가 감명하는 경우에도 그랬다.


그랬다. 그렇기에 나에겐 관객과 무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집을 수단으로 나의 무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국에서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그런 집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들을 봐줄 사람들을 이 집을 활용해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도 이질적이라 누구라도 한 번은 초대받아 가보고 싶은 그런 공간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어느덧 상상 속의 그 집에는 대형 스크린이, 자쿠지가, 사우나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 당시 레퍼런스.. 발리가 따로 없었다...


이제 이 구상을 현실화시켜줄 인테리어 팀이 필요했다. 당시에 인테리어 관련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었는데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뜬 영상의 집 인테리어가 꽤나 눈에 들었다. 일본식 호텔을 그대로 집 안에 들인 인테리어였다. 어떤 업체인가 서칭을 해보니 한남동에 프랑스 브랜드의 한국 플래이그십 스토어도 맡아 진행한 곳이었다. 프랑스의 현지 매장의 디테일들을 잘 살려낸 곳이라는 인터뷰와 기사들도 보였다. 어떤 구상이 있다면 현실화를 해내는데 최적화된 곳으로 보였다. 이미 나에게 구체적인 구상이 있으니 이걸 실현시킬 팀이 필요했던 것인데 이보다 더 적합한 팀이 있겠나 싶었다. 이미 포트폴리오들이 짱짱한 걸 보니 꽤나 비싸겠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마음이 앞서 있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2022년 8월 25일, 처음으로 소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미팅을 잡았다. 며칠 뒤인 29일 그 팀의 사무실로 찾아가 이 집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어떤 집을 가지고 싶은지를 설명드렸다. 소장님도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프로젝트에 욕심을 보이시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예산이었다. 꽤나 비싸겠구나 했던 설계비는 꽤나 수준이 아니라 꽤꽤꽤나 (내 생각의 3배였다는 말)였다. 마음속에 정해둔 버짓이 있었기에 그 설계비를 받아들이면 전체적인 공사 예산이 부족했다. 진심을 담아 메일을 적었다. 만약 설계비 네고가 되지 않는다면 이 팀을 포기할 마음으로.


인테리어 소장님께 보냈던 메일 내용 중 일부


소장님도 이 프로젝트에 욕심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보낸 메일의 진심이 느껴져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나에게 제안했던 설계비를 반으로 줄여 시작해 보자는 답을 주셨다. 그렇게 9월 22일, 비워진 집을 함께 둘러보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미 어떤 집을 만들고 싶은지가 확고했고 그동안 모아놓은 레퍼런스들도 적지 않았기에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설계 초안이 나왔다. 10월 26일이었다.


수영장이 버젓이 올라가 있었던..


이 설계를 받고 3일 뒤인 10월 29일, 나는 새말새몸짓 기본학교의 면접이 있어 전라남도 함평으로 향했다. 1차, 2차 에세이는 합격했고 입학을 위한 마지막 과정이었다. 늘 책과 강연 영상으로만 접했던 그 어른을 눈앞에 두었고, 면접이었지만 토론의 방식이었기에 교수님의 생각들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함평으로 향했던 나는 기대와 함께, 의심의 마음 역시 들고 내려갔다. 책이나 미디어로는 부풀려져 있거나 알려져 있는 이름에 비해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많이 접해봤기 때문이었다. 내가 직접 함평으로 내려가 만나서 접해보고 내가 찾던 진짜가 아니라면 면접에 합격해도 입학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짧았던 면접시간만으로도 나는 내가 느껴봤던 어떤 순간보다도 압도적인 수준의 격차를 느꼈다.


깊었다. 너무나도 깊어서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의 깊이인지를 차마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담백했다. 몸동작이 크지 않았고 목소리가 격양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강했고 단단했다.

감동적이었다. 내가 한 번도 닿아본 적 없음이 확실한 그곳에서부터 나온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적확했다. 쓰는 단어 하나도 고르고 골라서 나오는 듯 어떤 말도 모호하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격차에 균형을 잃은 채로 돌아오는 열차에 올랐다. 어떻게 이 정도 수준의 격차가 날 수 있는지를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어른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수준이란 무엇일까.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아닌 건축업계에서 수준이 높다고 존경받는 최욱 소장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그가 설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을 찾았다. 그의 설계에는 철학이 있었고 수준이 있었다. 직접 마주한 사유의 방 역시 나를 또 한 번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모든 곳에 그의 철학이 묻어있었던 공간, 사유의 방

https://www.youtube.com/watch?v=p2Lc2Q7f6FQ

어떤 이유로 이 공간을 이와 같이 설계했는지를 설명하는 최욱 소장의 인터뷰 영상


그런 최욱 소장은 어떤 공간에서 지내는지 궁금했다. 다행히도 최욱 소장의 집을 담은 컨텐츠가 있었기에 그가 어떤 공간에서 지내는 지를 엿볼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xccisLjdDg 


아무리 찾아봐도 수영장은 없었다. 담백했다. 한 업계의 최고 수준의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에 소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불현듯 최진석 교수님의 집도 떠올랐다. 교수님의 공간은 어떠할까! 유튜브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교수님의 집을 검색해보니 영상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TCFPYiaRYA

영상 제목이... '철학자 최진석의 28평짜리 작고도 큰 집'이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수준의 무대에 서 있는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은 내가 그려놓은 집과는 정반대였다. 집 자체가 무대가 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수준이 높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구나. 내 계획이 얼마나 얕았는지, 얼마나 화려하기만 했는지, 얼마나 철학이 없었는지 들통 나 버린 순간이었다.


수준이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뿐 아니라 공간이 필요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세상을 등지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공간이 필요했다.

밖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 돌아와 다음 전투를 위한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외로운 마음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떨쳐내고, 수 없이 나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랬듯,

홀로 있을 수 있고 독서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나를 만들어내는 공간이어야 했다.


곧장 소장님께 전화를 걸어 말했다.

이 집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집이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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