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인간 - 바람#4

평범한 능력을 초월한 이들의 이야기 네 번째.

by 차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J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게 된 말이다.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싱글벙글 살아가는 그를 두고 많은 이들은 '로또라도 당첨된 게 아니냐'는 농담까지 내뱉곤 했다. 굳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남들에게 좋아 보인단 말을 듣는 게 싫지는 않았으나, 그런 일이 반복되자 J는 슬몃 권태를 느끼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대체 돈이 생겨야만 좋아질 거라 생각하는 거야'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놓고 어김없이 복권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 J는 그런 그들이 지닌 상상력의 한계가 어쩐지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드는 거였다. 이처럼 그는 어느새 자신의 특별함을 타인과 비교했을 때의 우월함 내지는 초월적인 면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일상은 일상이었다. 평일에는 주말을, 주말에는 다음 주말을 기다리는 직장인의 하루하루를 J는 여전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자신의 능력을 어떤 거창한 일에 사용하기보다는 매일 겪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쓰기 일쑤였다.


"아, 먼저 계산하세요."

"고맙습니다."


아침에 붐비는 직장 앞 카페에서 줄을 서지 않고도 순서를 양보받는 건 다반사였고,


"저기... 혹시 식사 한 번 괜찮으실까요? 저도 이 근처에 다니는데..."

"아, 물론이죠! 어쩐지 낯이 익네요. 연락처 주시면 제가 조만간 전화드릴게요."


출퇴근 길에 눈여겨보았던 여성이 이런 식으로 터무니없이 말을 걸어오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곤 했다. 비슷한 바람들을 반복적으로 이루다 보니 어떤 때는 이게 과연 내가 바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인지가 헷갈릴 정도였다. 사소한 특권이나 행운이라 할지라도 그걸 수시로 누리게 된 J로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별하게 여겼던 일들을 점차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별함에 둔감해지던 그에게 다시금 특별한 일이 생기기까지는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라는 일을 이루는 일이 늘어남과 동시에 J의 기대 수준과 집념 또한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그의 일상에 또 한 번의 균열이 생긴 건 어쩌면 그가 능력을 자각하고 이용하기 시작한 순간 이미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사실 J는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능력에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능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사람의 마음이나 눈 앞의 상황을 바꾸는 힘은 결코 완벽하다거나 지속적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바람을 반복적으로 빌어서 눈 앞의 결과를 얻는 게 다일뿐(그게 어디겠냐만은),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타인을 자유롭게 조종한다거나 변화에 따르는 변수들마저 통제할 만큼의 지배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이런 까닭에 J는 다소 불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의도하지 않던 상황들을 마주해야 했고, 균열은 이로부터 시작됐다.


"아유... 1차선에서 왜 저렇게 천천히 가는 거야."


어느 날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일이다. 비교적 한산한 도로에서 J는 차의 성능을 마음껏 뽐내며 달리고 있었다. 거액의 복권 당첨까지는 이루지 못했으나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팔자에도 없던 신형 외제차를 몰기 시작한 그였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나게 드라이브 하던 그가 볼멘소리를 내뱉은 건 눈 앞에서 천천히 달리는 경차가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빠아아앙-!


클랙슨을 길게 눌렀지만 앞 차는 고집스러운 속도를 유지한 채 1차로를 달리는 거였다. 이윽고 터널에 진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추월 차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초보 운전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J는 더욱 위협적으로 앞차에 바짝 따라붙었다.

비켜라, 비켜라, 옆으로 좀 비켜라...

자신도 모르게 그는 앞을 보며 되뇌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능력을 성공한 기억이 없었기에, 그는 딱히 의도해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같은 바람을 중얼거렸던 것이다. 그때였다.


쿠르르릉-


뒤로 멀어져 가던 터널의 초입으로부터 무서운 굉음을 내는 검은 물체가 쑤욱 빠져 들어오는 거였다. 터널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눈부신 가운데 J의 눈에는 이윽고 백미러를 통해 그 물체가 날렵한 스포츠카의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이 번쩍, 하고 눈에 들어왔다.


'어? 저 차 갑자기 옆으로 빠지네? 어..어어어!?'


끼이이이익- 쾅!


앞에 있던 경차가 마침내 옆 차선으로 급히 변경한 뒤였다. 곧바로 다시 속도를 내어 앞서가던 J의 오른쪽 귓가 너머로 커다란 충돌음이 들려오고야 말았다. 2차로에서 뒤이어 달려오던 스포츠카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경차와 충돌한 것이다. 하지만 J는 차마 백미러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짧은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친 듯이 액셀을 밟는 것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뭐야!! 나 때문이야??!"


터널에서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그는 비명을 내질렀다. 차를 멈추어 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이미 브레이크 타이밍은 놓쳤다고 봐야 했다. 멈출 거였으면 충돌음을 듣자마자 바로 그래야 했다. 비상등을 켜고 터널 내 대피 공간을 찾아 들어가서라도 119에 신고해야만 했다. 사고 현장을 확인해야 했다는 이 같은 판단은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시속 30킬로미터 제한의 스쿨존이었다면 가졌을지도 모를 여유가 150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그에게는 없었다.




뉴스를 아무리 뒤져도 J는 자신이 지났던 터널의 사고 소식을 찾지 못했다. 3중 추돌쯤이라도 되면 모를까, 차량 두 대가 부딪쳐서 난 사고쯤은 기사 거리가 되기 어려운 듯했다. 인터넷은 온통 걸그룹 A양의 열애 소식으로 도배돼 있을 뿐이었다. 안도를 해야 할지 더 궁금해하는 게 옳을지 J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래, 뒤이어서 차들이 여러 대 충돌했으면 뉴스에 나왔겠지. 두 대 뿐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냐... 소리가 꽤 컸고 얼핏 파편도 보였던 것 같은데, 뒤차는 몰라도 앞차에 탄 사람은 많이 다쳤을 게 분명해. 그 정도면 큰 사고일 텐데 왜 소식이 없지?'

'가만, 그게 나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잖아? 1차선에서 느리게 가던 차가 터널에서 차선을 변경했고, 뒤따라 오던 차량과 부딪쳤다... 그래서 그게 뭐? 기껏해야 난 목격자잖아?'

'아냐... 꼼짝도 안 하던 차가 갑자기 차선을 바꿨어. 내가 그렇게 만들었던 게 아닐까?'


스미골과 골룸처럼 J의 안에서는 불신의 생각들이 뒤엉켰다. 혹시 사고 차량에서 블랙박스 영상이라도 발견되면 과속 중이던 자신에게도 책임 추궁이 이어질 것인지 그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행여 경찰에서 연락이라도 올까 걱정이 앞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J의 마음을 괴롭힌 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의혹이었다. 만약 당시에 그가 가졌던 바람이 앞차에 영향을 미쳐서 차선을 변경하게 만든 것이라면, J는 법적인 책임을 떠나서 사고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셈이었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 한동안 J는 차를 운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해야만 했다.




고도의 몰입을 반복하며 집중력을 키워 온 J였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능력을 갈고닦은 셈이었다. 사고 이후 벌어진 몇 가지 일들은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집요하게 바라지 않고도 마음에 품은 생각들이 하나둘씩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J가 살고 있는 집의 위층에는 소란스러운 꼬마 아이가 살았다. 한밤중에 들려오던 시끄러운 발소리를 참다못해 그는 윗집에 올라가 조용히 해 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애가 뛰는데 어떡하겠냐', '우리도 충분히 주의한다'라며 J의 방문을 오히려 불쾌하게 여기는 부부였다.


쿵,쿵,쿵, 쿵쿵쿵쿵


'어후... 진짜 애가 무슨 죄겠냐. 자기들도 당해봐야 알겠지. 콱 그냥 애가 셋 있는 집이 저 사람들 위로 이사 오면 좋겠다.'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후로도 몇 번이나 이런 생각을 품었으나, 설마 그런 바람이 실현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던 J였다. 그러나 터널 사고가 있던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아침, 시끄러운 이사 차량의 소리에 밖을 내다본 J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삿짐을 올리고 있는 사다리차가 이어진 곳이 다름 아닌 J의 두 층 위였기 때문이다.


"엄마~ 혹시 우리 윗 윗집 언제 이사 간 거예요? 그 사람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글쎄다? 그 집 아줌마 요새 안 보인다 싶더니 어느새 이사 갔더라구? 집 비자마자 오늘 누가 또 이사를 오네?"


'우연이겠지. 설마 이사 온 집에 애가 셋이나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얼마 후 J는 한 번 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밤 중에 복도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가 보니 위층과 그 위층의 부부가 서로 다투고 있던 거였다.


"이봐요. 애가 셋이나 되면 1층으로 가든가. 아래는 시끄러워서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아니, 애가 많으면 무조건 1층에 삽니까? 우리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몇 번이나 이럽니까? 그리고, 그 집은 뭐 애 안 키웁니까?"


애가 하나인 위층이 애가 셋인 그 위층을 탓하며 설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는 각각 한 명의 아이와, 세 명의 아이가 부모들의 다리춤을 붙잡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비로소 휴전은 이루어졌고, J와 마찬가지로 밖으로 나온 이웃들이 나서서 두 부부를 말린 뒤에야 상황은 종료되었다. J는 고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결국 또 내 바람대로 됐구나...'


애써 잊으려 했던 터널에서의 사고가 떠올라 J는 그날 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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