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능력을 초월한 이들의 이야기 다섯 번째.
일종의 '각성'으로 보였다.
물론 좋은 쪽의 각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J는 점점 자신의 능력이 두려워졌다. 무엇 하나를 수차례 반복해서 비는 건 어쨌거나 자신의 의지에 달려 일이라고 봐도 좋았지만, 한두 번 생각한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는 건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말을... 누가 확 그냥 주먹으로 얼굴 한 대 쳐주면 좋겠네.
TV에서 어느 정치인의 '실언'에 대한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J는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화면 속 인물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속보 : ○○○당 K 의원, 오늘 오후 □□ 현장에서 괴한에게 주먹으로 가격 당해...
다음날 자막으로 뜬 속보를 보며 J는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재밌게 여길 만한 소식이었으나, 전 날 자신이 품었던 생각을 똑똑히 기억하는 그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게다가 터널 사고와 위층 이사에 이어 연달아 벌어진 일이다 보니 그는 자신의 마음에 잠깐씩 스치는 생각들이 자꾸 실현되는 이 사태를 더는 우연으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와, 나 어떡하지 이제? 이거 도대체 어떻게 돼 가는거야...'
J는 그제야 이 모든 일들을 털어놓을 사람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성'의 전에는 그저 혼자만의 비밀로 즐기던 능력이 이제는 어떤 저주와도 같이 느껴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걱정 앞에 막상 홀로 놓이고 보니 그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의 무게가 혼자 짊어 지기에는 너무나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박 이틀을 집에 머물며 J는 자신의 생각이 외부와 연결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일단은 그 방법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두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은 방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만약 밖으로 나갔다가 자신이 떠올린 생각들 중 하나라도 눈 앞에서 또 목격하면 어떠할지 J는 감히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세상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고 목격한 일들이 어떠하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J는 지금 당장 아프리카 오지의 난민들이 푸짐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 수 있다. 그런 일까지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그는 이제 단언할 수가 없다. 설마설마 하던 일이 계속 벌어져 온 지금으로서는 그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는 당장 자신이 확인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기쁨이나 죄책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실현 가능성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연관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아주 사소한 경우라 할 지라도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J는 만원 지하철에서 앉을 자리가 생겼던 자신의 행운만으로도 환호했기에, 이와는 반대로 눈 앞에서 차량이 충돌하고 정치인이 피습당한 타인의 불운에도 깊은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을 자신이 앞서 떠올리는 능력(이때 J의 능력은 일종의 예지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가정해 보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 좋은 일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벌어지고 마는 일이란 그걸 겪기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하고 두려웠던 것이다.
"아드으을-! 어디가 아프길래 이렇게 방에만 있니?"
"아, 아니예요 엄마. 푹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걱정 마요."
"아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람이라도 좀 쐬는 게 낫지 않겠니?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건강한 사람도..."
"진짜 괜찮다니까! 엄마, 부탁이니까 며칠만 좀 신경쓰지 말아줘요~"
3일째 되던 날의 아침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어머니를 말리며 J는 여전한 두려움을 느꼈다. 남이 아닌 가족에게까지 미칠지 모를 자신의 능력이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이는 이 상황이 이제는 확실한 불행으로 여겨졌다. 자신의 생각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설령 예측한다 해도 그걸 흘러간 생각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으로 시작하는 일들을 어렴풋이 마음 속에 품는 것만으로도 그 일이 진짜 벌어질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는 가까운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부재중 전화 55통, 안 읽은 메시지 672.
꺼 두었던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확인한 숫자들은 예상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분명히 회사 사람들이 포함돼 있을 것이었다. 문자메시지로 달랑 '응급실입니다. 불가피하게 병가를 신청합니다.' 라는 말만 남겨놓은 채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J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회사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직장이 뭐 그리 중요하랴 싶은 거였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많이 능력을 활용하고 혜택을 봤던 회사, 직장이 정작 그 능력이 과해지면서부터 가장 불필요한 곳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J는 주위 사람들과 3일만 연락을 끊었을 뿐인데도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했는지를 곱씹으며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고 있었다.
없어져라. 없어져라. 내가 바라면 이루어지는 능력은 제발 없어져라...
남해안의 바다가 보이는 작은 펜션. 창가에 기대어 서서 J는 이 같은 소원을 며칠 째 빌고 빌었다. 그가 택한 건 결국 자신의 능력으로 능력을 없애는 일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멀리 해외라도 나가서 시간을 두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던 그리스의 작은 해안 마을 같은 곳이라면 조용히 혼자 지내며 어떻게든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J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비행기를 도저히 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온갖 사고와 하이재킹 등을 다룬 영화들에 대한 기억이 가득한 그였기에, '비행기'라는 단어와 그 기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머릿속에 사건 사고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걸 느끼며 J는 더이상의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아니, 용기를 못냈다기 보다는 생존에 대한 위협이 컸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비행기 사고는 로또 당첨보다도 적은 확률로 벌어진다는 믿음에 기대어 사람들은 천만분의 일의 가능성만으로도 추락하면 끔찍한 죽음으로 이어질 비행기에 쉽게 몸을 싣는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잇따라 겪은 J에게 있어 비행기 탑승은 어떤 확률이나 가능성이 아닌 자신의 마음, 혹은 의지의 불확실성에 관한 문제였다.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생각이 형성되면 그것이 일어날 확률이 0 아니면 100퍼센트가 되어버리는 상황. 그말로 귀를 틀어막는 게 아니라 마음을 틀어막고 싶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J의 심정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실 남해로 향하기까지 J에게는 크고 작은 일들이 몇 가지 더 벌어졌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일들을 입 밖으로 털어놓거나 기록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극히 몇몇에게나마 자신의 과거 능력을 털어놓은 그이지만 절대로 당시의 경험만큼은 그 자신 외에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치는 생각대로,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벌어졌던 그 며칠의 순간들. 어쩌면 J 자신조차도 그날들의 일만큼은 기억에서 지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능력을 없애달라고 빌고 빌기 전, 그가 앞으로의 평온한 삶을 위해 자신의 머릿속에서 불필요한 기억들은 지워지기를 먼저 되뇌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람을 이루어 가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 갔던 J. 그의 마지막 소원이자 바람은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없애는 것으로 정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