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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Sep 12. 2016

막국수와 카스테라

#할머니 #제사 #막국수 #카스테라 #다짐

외할머니는 막국수를 좋아하셨다.

카스테라 역시 무척이나 맛있게 드셨던 것으로 '기억' 한다.




1년이 흘렀다.

그리 위중한 상태였다기 보다는,

늘상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오히려 안심해 버리고 있던 즈음에,

나의 외할머니는 결국 떠나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할만큼 무덤덤한 발걸음으로 빈소를 향했던 것 같다.

수년 째 이어진 건강의 악화,

잠깐 모시고 지낼 때 겪었던 치매 초기의 당황스러움 등이 뒤섞여 있기도 했거니와,

유년기 이후 계속 떨어져 지내면서 굳어버린 단절감 내지는 

'조금 지나서 더 잘 해 드려야지-'

라는 미룸의 의식이 뿌리박혀 있던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제야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이 아닐까 라는-

일종의 결벽에 가까운 솔직함과 체념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싸늘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을 때

못난 손자의 눈시울은 너무나 뜨거웠고

당신의 딸과 사위에게 더 보답하며 열심히 살겠다고

지나간 시간보다 앞으로의 당부를 드리고자 했던 기억은 분명하다.




엊그제 꿈에 나비가 내게 편지를 전해줬다.

글을 읽으며 할머니에 대한 죄송함에 가슴이 미어져

펑펑 울었던 기억이다.


오늘 찾아뵌 호국원(추모공원) 에서 

할머님 영정에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던 길에,

나비 한 마리가 내 손 위에 한참을 앉았다 날아갔다.


남모르게 소중히 의미를 두려던 이 경험들을,

결국 어머니가 굉장히 신기해 하며 친척들에게 전달해 버렸지만

어찌됐든 내겐 너무나 특별한 꿈과 나비임에 분명했다.




오늘 늦은 점심은 막국수를 먹었다.

때를 놓쳐서 배가 많이 고팠지만,

꼭 막국수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끌려

겨우 찾아낸 막국수 집이었다.


솔직히,

이제와서 할머니를 떠올리며 막국수를 먹는다는게,

꿈과 현실의 나비를 통해 할머니를 생각하는 일이,

어쩐지 더 죄송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다.


계실 때 한 번이라도 정성껏 막국수를 대접했다면,

편찮으실 때 반드시 그렇게 했더라면-


어렸을 때 나를 그렇게나 귀여워해 주셨던,

카스테라를 내게 먹여주셨던 우리 할머니께

서른줄의 손자는 대체 뭘 보답하지 못하여 이렇게 미안한 걸까.


때론 슬픈 음악이 슬픔을 위로해 주듯,

나는 지금 무엇보다 위로받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막국수의 알싸한 매콤함과,

카스테라의 달달한 부드러움 중간 어디쯤에서

진심으로 진심으로-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며 가슴이 절절하다.


다음 방문에는 꼭,

카스테라와 우유를 할머니께 갖다드리고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꼭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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