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고 제주에서 지내기의 끝
먹고 자고 쓰고, 먹고 자고 쓰다 보니 일주일은 짧기도 했다. 대단찮은 원고를 붙잡고 있어 봐야 마음만 싱숭생숭하여 닷새 무렵부터는 좀 더 여유를 내기로 했다. 첫날 30분으로 끝내던 아침 산책이 1시간, 2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남은 기간은 하루 이틀뿐인데 도무지 글은 안 쓰이고 잡념들로 신경만 쓰여서 아침부터 마냥 걸었다. 슬슬 배가 고파서 터덜터덜 숙소로 향하며 남은 밥과 반찬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한산한 도로 건너편으로 한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득 찬 포대자루들을 등에 지고 걷는 그분의 발걸음은 경쾌하지도, 무겁지도 않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잠시 멈칫했다. 길 건너로라도 노인을 앞질러 가는 게 어쩐지 꺼려졌기 때문이다. 자루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산책 중이었고 노인은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와서는 후딱 씻고 밥을 먹고 자리에 앉았다. 그날따라 날이 맑아서 그랬는지 창 밖의 풍경이 새삼 눈에 들어오는 거였다. 돌담이 둘러싸인 밭에서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 몇 분이서 나란히 일을 하고 계셨다. 무슨 작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수확 중인 듯했다. 그녀들이 쪼그려 앉아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파릇파릇한 녹색잎 대신에 까만 흙만 남겨지고 있었다.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멈칫거려야 했다. 뙤약볕 아래서 농작물을 수확 중인 분들의 노동 앞에서 나의 노동 아닌 노동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김훈 작가님 쯤의 내공은 돼야 <밥벌이의 지겨움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953445>이라든지 하다못해 '노동의 신성함'을 글줄로나마 표현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그 당시에 나는 진짜로 그러한 느낌을 받았더랬다.
이후로 나는 점심을 한 끼 더 챙겨 먹었고, 식곤증을 핑계 삼아 30분가량을 졸았으며, 나머지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글을 끄적였다. 그런데 이렇게 평상시와 다름없던 내 상태와는 달리 창 밖에서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밭에서는 그녀들의 수확 작업이 쉼 없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처음과 나중 사진이 찍힌 시각으로 확인해 봐도 노동은 틀림없이 대여섯 시간 내내 이어졌다. 틈틈이 살펴본 바로는 그분들이 자리를 비운 일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먹는 끼니에 대해서 쓸 자신이 없었다.
해가 저물 무렵까지도 그분들이 밭에 계셨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와서 나는 노인들의 하루 노동을 확인했던 그날의 느낌만을 기억할 뿐이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상이었을 그분들의 노동 앞에, 여행하지 않고 지내는 게 무슨 결심이라도 되는 양 밥 해 먹고 키보드 두드린 걸 노동으로 여긴 나의 일주일은 초라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부터의 끼니는 굳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
이게 벌써 지난 늦봄의 일이다. 그간 어떠한 사정이 있었든, 나는 여전히 게으른 것이다. 제주에서든 서울에서든 나의 끼니는 어떻게든 이어졌으나, 노동은 수시로 멈칫거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제주의 풍경도 아니고 밥 하는 기술도 아니다. 온종일 밭을 갈던 노인들의 꾸준한 노동을 떠올리며,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옮겨 적은 한 구절로 나는 또 한 번 사유로 노동을 대신한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