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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Oct 31. 2019

다시 오지 않을 겨울은 너뿐이었어.

겨울이 오기 전 떠난 겨울이.




얘들아, 아무래도 안락사를 시켜줘야 할 것 같다.


  아버지의 음성은 낮고 차분했다. 설마 했던 나와 동생은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지만 수화기 너머는 조용했다. 아버지는 병원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고 수의사와도 한참을 통화한 뒤였다. 이번에는 너희가 직접 가보겠냐는 물음에 우리는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회색 케이지 안에 기절한 듯 엎드려 있던 겨울이는 우리를 보고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꼬리도 흔들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수의사 할아버지는 슬프지만 단호한 어조로 설명하셨다. 이 상태라면 큰 병원을 간다 한들 주인과 강아지 모두에게 힘든 시간일 거라고. 죄송하지만 겨울이는 속이 이미 다 망가져서 진정제를 놓아도 발작이 잦아지며 고통스러워할 거라고. 얼른 보내주는 게 최선이라고.




아프기 전의 겨울이는 주로 내 침대에 앉고 누웠다.

  겨울이가 밥을 통 못 먹고 기운 없어 한 건 보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평상시에 작은 탈이 나서 사료를 게워내거나 미용하고 온 뒤 의기소침한 경우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런 것이겠거니 여긴 게 식구들의 큰 착오였다. 일주일이 넘도록 녀석이 영 비실비실하고 입에서 냄새가 나자 우리 가족은 마침내 동물병원을 찾았다. 작은 강아지들은 이렇게 속병이 느닷없이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겨울이는 꽤 아픈 상태이니 입원해서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 무렵 변의 색과 냄새까지도 심상치 않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항상 내 품을 파고들었다.

  겨울이는 늘 내 방에 들어와 같이 잠들곤 했다. 함께 사는 부모님보다도, 근처 신혼집에 사는 여동생보다도 녀석의 변화를 일찍 눈치채고 챙겨야만 하는 건 당연히 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변명이지만 그 무렵 나는 힘든 일을 겪고 있었다. 몸보다 마음이 훨씬 아팠다. 이에 내가 어떤 한심한 생각까지 품었냐 하면- '겨울이가 내 아픔을 같이 겪느라 저렇게 기운이 없나?' 라는 말도 안 되는 추측으로 일견 기특해했다. 어쩌면 겨울이의 병은 갑자기 진행된 게 아닐지도 몰랐다. 무심해도 내가 너무 무심했다.  

  



미안하다 겨울아,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이제 그만 아프고 좋은 곳으로 가...  


  진정 주사를 한 번, 마침내 마지막 주사를 한 번 더. 축 늘어진 우리 가족의 반려견 겨울이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현실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황당한 사태였으나 눈물만큼은 생생하고 서러운 실제의 감각으로 터져 나왔다. 서른을 넘기고 두 번째로 목 놓아 흐느끼고 울었다. 자꾸 미안하다는 말이 터져 나오길래 일부러라도 좋은 곳으로 가란 소리를 입 밖에 더 크게 냈다. 옆에서 우는 여동생을 달래줄 겨를도 없었다.


  어느덧 100일도 더 지난 일이다. 우리 가족은 그날과 그다음 날 이후로 겨울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대신 홀로 남은 강아지 초코에게 더 큰 사랑과 관심을 주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백일도 지나지 않은 여동생의 아가, 부모님의 손주이자 내 조카의 생명력 앞에서 반려견의 죽음을 머물게 하기가 죄스러운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랬듯 부모님과 여동생 또한 이따금 겨울이를 떠올렸을 게 분명하다. 서로가 그러하리란 마음을 속으로만 간직하며 겨울이에 대한 미안함을 각자 조금이라도 더 나눠 가졌을 것이다.

  

떠난 겨울이와 남은 쵸코가 함께했던 한 때.


  오늘 새벽 눈을 뜨자마자 희한하게도 겨울이 생각이 많이 났다. 네 달 전처럼 이불속에서 녀석이 곤히 자고 있을 듯하여 괜히 허리께를 손으로 쓸어보기까지 했다. 반쯤 꿈이었는지 반쯤 현실이었는지 모르게 나는 몇 달이 지나서야 오로지 겨울이만을 떠올리며 짧은 글로나마 미안함을 표현하리라 마음먹었다. 형은 글 쓰는 걸 좋아하면서 왜 나에 대해선 한 줄도 쓰지 않냐고, 어떻게 그렇게 금방 잊냐고 하는 듯한 겨울이의 섭섭함이라도 느낀 걸까. 아니면 이제야 비로소 감정을 누르고 녀석의 죽음을 써내겠다고 용기를 내는 걸까. 



  있을 때 잘해주지 못했고, 보내고 나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녀석에게 진정 사과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뒤늦게 생애 처음으로 반려견을 하늘로 보낸 뒤 겪는 상실의 아픔과 죄책감 앞에 나는 너무 불순한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애도하고 미안해하기에는 남아있는 책임의 무게들을 견딘답시고 여전히 이기적으로 굴어왔다. 그래서 어느 아침 새삼스럽게도 녀석을 느끼며 다시 한번 떠나보내기로 결심했고, 반성문부터 한 장 쓰며 이별 뒤 처음으로 사진첩을 뒤졌다.


퇴근 후에도, 출근 전에도 겨울이는 늘 나를 보았다.


  겨울아, 실은 형이 너 보내고 며칠 뒤에 글을 쓰긴 했었거든? 근데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져서 어디 보낼 수도, 올릴 수도 없었어. 여전히 바보 같지? 그래도 그때 썼던 몇 마디만큼은 너에게 이제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아. 혹시나 이곳에 조금이라도 미련 갖지 말고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렴! 나중에는 우리 더 좋은 모습으로, 인연으로 만나면 좋겠다! 형이 더 노력하고 애쓸게. 정말 정말 사랑했어 겨울아!


다시 오지 않을 겨울은, 너뿐이었어.

  

이별 후 100일이 지나서야 사진으로 다시 마주한  겨울이와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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