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드 <After Life> 리뷰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배우, 각본가, 감독인 리키 저베이스는 수차례의 골든글로브 시상식 진행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특유의 독하고 뼈 때리는 언변으로 다양한 셀럽들을 당황시켰기 때문.
그가 제작하고 주연까지 맡은 영국 드라마 <After Life>.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이라고도 불리는 이 드라마는 리키 저베이스의 장점과 연륜이 잘 드러난 웰메이드 감성 코미디, 시트콤이다. 시니컬하면서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일상의 유머에 이끌려 자기 전에 짤막한 한 편(약 2~30분 분량)씩 챙겨보다 보면 어느덧 시즌3-6화까지 다다를 것이다.
이 작품에는 분량에 딱 알맞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정인을 깊이 조명하지도, 다수의 인물을 어지러이 나열하지도 않기 때문에 극이 진행되는 내내 편안하고 친숙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토니(리키 저베이스)를 중심으로 그가 사는 작은 마을 탬버리의 주민들, 취재 기자로 근무하는 지역 신문사 '탬버리 가제트' 동료들의 이야기가 시즌 내내 잔잔하게 펼쳐진다.
각각의 인물들이 평범하면서도 특색있다는 점에서 영국 지역 사회, 나아가 우리의 삶을 적나라하게 투영했다고 볼 수 있겠다. 괴짜같은 집배원, 샌님 같은 신문사 사장, 뚱뚱보 사진 기자, 매춘부, 요양원 간호사, 골칫덩어리 배우 지망생 등은 저마다의 결함을 안고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다. 다양한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 너무 진지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돌아볼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이 드라마는 훌륭하다.
토니가 신문에 실을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러 다니는 덕에 시청자는 더 많은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을 접할 수 있다. 짧은 분량의 드라마 속에 또 다른 픽션을 집어넣어 극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 우수한 연출 방식이라 여겨진다.
이 드라마를 코미디와 휴머니즘을 적절히 버무린 수작 정도로 간단하게 정의내리고 마무리하기에는 아쉽다. 이야기 전체의 설정으로 돌아가, 병으로 먼저 떠난 아내 리사의 생전 영상들을 보며 매회마다 토니가 눈물짓는 장면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인간사의 불행들 중에서도 배우자의 상실이 주는 슬픔과 절망의 깊이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사랑을 사랑이 아닌 슬픔과 허무의 형태로 가늠할 수 있게 했으며, 유쾌함을 긍정이 아닌 부정과 냉소의 언어로 깨달을 수 있게 그렸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은 극에서 드러나는 토니의 상실감을 통해 리사를 향한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툭툭 내뱉는 시니컬한 비아냥을 통해 그가 얼마나 유쾌한 인물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눈앞에서 배고파 낑낑대는 반려견의 통조림 한 통을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토니. 주변 사람들의 관심조차 짜증스러울 때, 저마다의 이유로 고통을 안고 사는 그들을 오히려 보듬으며 결국 그 자신이 위로받고야 마는 토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반드시 그 의미를 거창하게 되찾아야만 생이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 드라마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배우자를 잃은 경험에 미리 공감할 필요는 없다. 단지 어떠한 형태로든, 어떠한 크기로든 '상실'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삶의 의미에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 <After Life>를 통해 원래 스스로가 얼마나 유쾌했는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분명히 새겨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