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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Sep 26. 2022

낙관의 역설

-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대하여



  

  한때 우리 사회는 '힐링' 열풍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반드시 꿈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두 잘 될 거다'라는 등의 희망적인 메시지는 주로 청년들을 향했다. 냉혹한 현실에 치이고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전해진 따뜻한 위로였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는 꽤나 달라졌다. 전에 잘 통하던 위로가 더는 먹혀들지 않는 모양새다. '즐기는 사람 이길 수 없다' 같은 말은 다 뻥이라며, 노력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말하는 방송인 서장훈의 현실 조언이 더 각광받는다. 서점가에도 힐링 서적보다는 자기계발서들이 다시 잘 팔린단 소식이다.



  현실이 나아져서 위로가 먹히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완연한 고물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며 '삼포 세대'로 통하던 청년들의 취업, 결혼, 주거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팍팍한 현실에 치인 젊은이들의 멘탈이 악화되면 악화됐지 나아졌을 거라 보기 힘든 이유다. 그럼에도 이들이 따뜻한 위로에 더는 열광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닌, 현실에 기반한 합리적인 낙관주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8년간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귀환한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가 털어놓은 경험담에는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동료들 중에서 포로 생활을 못 견디고 생을 마감한 이들은 의외로 비관주의자들이 아닌 낙관주의자들이었다는 것.



  '크리스마스에는 사면되겠지', '부활절에는 사면되겠지'라는 희망을 품다가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현실 앞에 낙관주의자들은 크게 상심하며 생의 의지를 잃었다고 한다. 반면 스톡데일의 경우에는 풀려날 수 있을 거란 신념은 지키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를 유지했다고.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막연한 낙관에 기대기보다 믿음에 기반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




  청년들은 위로가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장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도 MZ 세대의 일원(?)으로 한때는 힐링 서적에 위로도 받았고, 이후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 라며 소리 지르던 어느 희극인의 외침에 속이 다 시원했을 정도다. 힐링 콘텐츠들로부터 받는 위로는 순간이지만 현실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경험을 반복하며 생긴 자조적인 반응이었던 것 같다.


  다만 나 자신이 너무 시니컬해지지 않도록 경계했다. 위로 앞에서까지 예민하면 초라해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노력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긍정의 메시지까지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정도 차야 있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주의자이기에 앞서 감정의 동물 아닌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심신에 도움이 되는 건 비관 아닌 낙관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막연한 낙관은 언제든 무너지기 쉽단 사실이다. 스톡데일에게는 감옥에서 언젠가 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중요했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기약 없는 포로 생활을 버텨낸 남다른 체력과 정신력의 비결은 수감 생활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막연한 낙관주의자들이 감옥 밖을 꿈꾸다 지쳐가는 동안 현실적인 낙관주의자인 그는 감옥 안의 통제된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하고 단련했을 테다.


  낙관이 이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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