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cultivate
이럴 거면 공부는 왜 했나 몰라.
주위에서 가끔 듣는 볼멘소리다. 지옥철 출근길의 직장인, 휴직 후 아이 돌보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 등이 내뱉는 가벼운 한탄이다. 주변인들이다 보니 살아온 내력이 대개 비슷한 편이다. 학교에 성실히 다니다가 애써 취직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나 역시 저런 말을 했거나, 말하진 않았어도 비슷한 생각을 품은 적이 많았다. 살다 보면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이 전혀 쓸모없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던 것이다. 공부 따위는 하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방법이 다양해진 세상이지 않은가.
대수나 기하 공부는 학교를 졸업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지만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물리든 화학이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공부해 둬야 한다.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야말로 앞으로 자네들의 인격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공부한 다음에 깡그리 잊어버려도 된다. 중요한 건 외우는 게 아니고 cultivate 된다는 것이다. culture란 공식이나 단어를 많이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넓게 가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분명 무자비한 에고이스트가 된다. 학문 같은 건 배우자마자 잊어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전부 다 잊어버린다고 해도, 그렇게 훈련하며 공부한 밑바닥에는 한 줌의 사금이 남는 법이다. 그것이다. 그게 귀한 것이다.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학문을 억지로 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느긋하게 진정으로 cultivate된 인간이 되어라!
<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 155p.>
Cultivate!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단어다. 그렇구나, 공부한 다음에 깡그리 잊었어도 내겐 한 줌의 사금이 남아있겠구나. 적어도 난 무자비한 에고이스트는 아니겠구나. 삶의 코너에 몰릴 때마다 어렴풋이 느끼던 내 안의 너그러움이야말로 공부 덕이었을 수 있겠구나.
진정으로 cultivate된 인간이 돼라는 다자이 오사무의 일갈에 느닷없는 위안을 얻었다. 옮겨 적은 그의 문장 출처는 소설 <정의와 미소>다. 내용은 전혀 모르지만 발췌문만으로 이토록 깊은 공감을 가능케 한 걸 보면 분명 좋은 소설일 거라 생각한다.
물론 공부가 훌륭한 인품을 담보할 수는 없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파렴치한 고학력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학습 정도와 품성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비례한다고 여겨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다자이 오사무가 공부를 하라고, 진정으로 cultivate된 인간이 되라고 한 이유는 뭘까?
그의 문장은 공부한 모든 이들에게 한 줌의 사금이 있을 거란 의미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는 단지 공부의 무용함에 자책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일깨움을 주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현실에 당장 드러나진 않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발할 한 줌 사금의 가치. 다자이 오사무가 강조한 cultivate된 인간의 존엄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