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원숭이 얼굴
자부심을 잃은 남자의 모습만큼 추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절대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에게는 악한 자에 맞서는 마음과 정이 넘치는 세계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잠자코 있다 해도 멀리 있는 어느 한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조금 나약할 뿐입니다. 나약하고 정직한 사람은 모두가 감싸주고 소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숭이 얼굴을 한 남자(사람)> 中
스스로가 강해졌다고 생각할 무렵 다시 확인하는 나약한 모습만큼 당황스러운 몰골도 없을 것이다. 최근의 내가 또 한 번 그랬다. 나는 나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상대방의 몰이해를 비난했다. 감싸주고 소중히 해주길 바란 나머지 자부심 잃은 남자의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멋있어지고자 하는 강박으로 인해 오히려 멋없는 행동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저 조금 나약할 뿐'이라는 다자이 오사무의 옛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 아니, 이미 나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렸던 걸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나약함을 확인한 뒤에 그의 문장을 발견한 게 아니라, 그의 문장을 먼저 발견해 놓고 나약하게 굴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상대를 비난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란 놈은 도무지 그게 되질 않는다. '절대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말만큼은 벌써 어겨버린 것이다. 나는 다만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 '당신에게는 악한 자에 맞서는 마음과 정이 넘치는 세계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에서 위로를 얻을 뿐이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그러나 나는 이쯤에서 스스로를 향한 위로 대신 또 하나의 문장을 떠올린다. 지난 어느 날 기록했던(https://brunch.co.kr/@hyuksnote/196)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발췌한 작중 인물의 대사다.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자신을 동정하는 일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이 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저 나약하고 정직할 뿐, 비열한 인간은 결코 아니다.
예전에도 간혹 자부심을 잃고 거울을 본 순간이 있었으므로 그 모습을 너무나 잘 안다. 사실 내 자부심을 앗아간 이는 가까이에서 나를 보고 오랑우탄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난 '오랑우탄이 아니고 원숭이야.'라며 우기진 않았으니, 자부심이 남아있던 그 모습이 원숭이었을 리는 없다. 문제는 그 뒤로도 계속된 그녀의 지적이었다. 오랑우탄이 아니라 코끼리라고 했어도 나는 결국 원숭이 얼굴을 보이고야 말았을 것이다.
나는 요즘 나의 장래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허무가 아닙니다. 체념도 아닙니다. 어설픈 예측 따위 때문에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저울질하며 진중하게 재어 보기만 한다면 오히려 비참한 실패를 할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 나는 요즘 그것 하나만 명심하고 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허영이나 타산이 아닌 공부를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일만 믿고 당장의 자리를 얼렁뚱땅 넘기는 일도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하루하루만이 무척 소중해졌습니다. 결코 허무가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는 하루하루의 노력이 전 생애의 노력입니다.
<개인적인 편지> 中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곱씹는다. 장래에 대한 계획 없음이 결코 허무나 체념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루의 노력이 곧 전 생애의 노력임을 명심하리라는 다짐이다.
허영이나 타산이 아닌 공부를 해 나갈 나에게서 더는 그 누구도 원숭이 얼굴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