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비관주의자가 "다 끝났어. 뭔가를 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투표 같은 건 생각하지 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과 낙관주의자가 '안심해. 모든 게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4조 원 규모의 회사 지분 모두를 환경 단체와 비영리 재단에 기부한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 전 세계 16개국 언어로 출판, 50만 부 이상 판매된 비즈니스 회고록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는 그의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다.
자본주의적 실험이라고 불릴 정도로 차별성을 지닌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 친환경, 고품질을 추구하는 기업의 뚝심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더불어 상업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해 오고 있다. 환경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이본 쉬나드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법 두꺼운 서적 안에서도 내게 특히 와닿은 구절을 서두에 소개했다. 기업가이기 이전에 탐험가이자 암벽등반가, 서퍼, 환경운동가인 이본 쉬나드의 행동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지구 환경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단 사실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해 왔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면한다. 이를 두고 이본 쉬나드는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아니 실은 비관적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곧 비관주의는 아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지구, 환경과 같은 이슈가 다소 거창하다면 사소한 일상과 비교해도 좋다. 낙관이 비관보다 확실히 긍정적이고 희망을 품게 하는 건 맞지만 때로는 낙관의 역설에 빠질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와 관련해서는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대해 끄적인 나의 지난 글(https://brunch.co.kr/@hyuksnote/281)을 참조하셔도 좋다.
비관과 낙관이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지적한 이본 쉬나드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떤 일을 두고 비관하든 낙관하든 실제적이고 꾸준한 행동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비관주의자들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경계하지만, 내가 보기에 대책 없는 낙관주의 또한 그에 못지않게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현실적인 걱정이 희망 고문보다 낫고, 구체적인 희망이 막연한 걱정보다 낫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의 중간 정도 입장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느 집단을 가든 지나치게 냉소적인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비관이 지나친 사람을 보면 맥이 빠지고, 낙관이 지나친 사람을 보면 사기꾼처럼 느껴진다.
비관과 낙관에 대한 아주 전형적인 비유 하나. 컵에 물이 반 채워진 상황에서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와 '물이 반이나 남았네.'의 인식 차이가 삶의 태도라는 이야기다. 쉽게 수긍할 만한 상황과 그에 대한 해석이지만 우리 삶이 어디 눈대중만으로 반을 가늠하기 쉬운 물컵처럼 단순하겠는가.
비관주의보다 낙관주의에 가깝게 생을 긍정하고 싶은 건 맞다. 그게 더 기분 좋은 태도인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생각과 의지의 영역이라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겠다. 삶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건 오만가지 생각이 아닌 단 하나의 행동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