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1

- 귀에서 소리가 나

by 차돌


J는 귀에서 환풍기 소음 같은 게 난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냉장고 소리와 더 비슷할지도 모른다며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 한쪽을 후볐다.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늘 자기 귓가를 울린다는 거였다.


"병원에 한 번 가보는 건 어때?"

"왜 안 가봤겠어, 어릴 때 갔었지. 그 덕분에 수술까지 했고."


귀에서 꺼낸 손가락을 후 불며 J가 말했다.


"수술? 귀에서 나는 소리를 없애는 수술을 한 거야?"

"아니, 그런 건 없어. 난 그저 소리가 신경 쓰였을 뿐인데, 의사는 내 귀 안에 염증이 심하다는 거야. 할 수 없이 더 큰 병원에 가서 왼쪽 귀에 칼을 댈 수밖에 없었다구."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귀 뒤를 긋는 시늉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수술하고 나니까 소리는 줄었어?"

"아니. 수술까지 하면서 귀에 신경을 더 쓰니까 소리가 전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런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던 거지."

"저런. 그런데 미안하지만 귀에서 어떤 소리가 난다는 건지 상상을 못 하겠어."

"별로 알고 싶지 않을 거야."




J가 갑자기 귀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다. 십수 년을 알고 지내는 동안 서로의 신체 비밀 따위는 얘기한 적이 없던 것이다. 내 허벅지 안쪽에는 작은 흉터 하나가 있는데, 어릴 때 공원 펜스에 긁히면서 찢어진 흔적이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인 데다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흉터를 의식하며 살 일도 없었고, 남들에게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다. 나는 J의 귀 또한 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는 몸 어딘가의 상처 말이다. 그런 걸 굳이 내게 이야기했다는 사실만이 새삼스러울 뿐이었다.


[이명]

이명이란 외부에서의 소리 자극 없이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이상 음감을 말한다. 즉, 외부로부터의 청각적인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상태이다. 완전히 방음된 조용한 방에서는 모든 사람의 약 95%가 20dB(데시벨) 이하의 이명을 느끼지만 이는 임상적으로 이명이라고 하지 않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정도의 잡음이 느껴질 때를 이명이라고 한다.
관련질병 : 감각신경성 난청, 혈관성 종양, 동정맥기형, 정맥성 잡음, 근수축이명, 지속적 이관개방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명 [tinnitus](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그의 귀는 내 흉터 따위와 비교할 게 아니었다. 내가 그런 귀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J가 귀 이야기를 꺼내던 날 보였던 어두운 표정만큼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말하던 순간에도 그의 귀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이 끊임없이 울렸으리라.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는 점에서 이명은 병이라기보다는 어떤 '현상'에 가깝다는 게 인터넷에서 찾아낸 설명이었다. 스트레스나 소음 때문에 생기기 쉬운 현대인의 흔한 질병 가운데 하나라는 소개도 친절히 덧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명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내용이다. 나는 그때 J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사실 누구의 이야기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무렵의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잠깐 재미를 본 주식 투자에 자신이 생겨서 큰돈을 무리하게 쏟아부은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정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나와 아내는 3년이 넘도록 아이를 가지려다가 실패를 거듭했다. 초조함은 서서히 쌓이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것이었다. 한 해 두 해를 넘길 때까지만 해도 서로를 격려하던 우리 부부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러던 중 몰래 한 주식 투자의 실패를 알게 된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는 부부관계처럼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막대한 금전적 손실은 나를 점점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일을 열심히 해도 빚이 늘어나는 상황에 놓이고 보니 일은 더욱 하기 싫어졌고, 마음을 달랜답시고 퇴근 후 술자리를 갖는 일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날이 설대로 서 있던 아내는 그런 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와 부딪히기 싫어 집에 가는 대신 밖을 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부싸움이 커지는 악순환의 나날들이었다.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알 만한 회사에 들어가고, 웃는 얼굴이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행복이 이어질 줄로만 알았던 내 인생에 그처럼 브레이크가 걸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이 아닌 불행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J를 만났다. 그날도 난 아침부터 아내와의 말다툼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회사 업무 중에는 몇 차례나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눌렀다.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은 척 연기하는 건 몹시 지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내 외의 사람들에게까지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의 보잘것없음을 곱씹으며 더욱 보잘것없는 인간임을 느꼈다.


퇴근할 무렵에는 기진맥진해 있었지만 집으로 가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회사 사람들과 의미 없는 웃음을 주고받는 술자리를 가질 기분도 아니었다. 친구 두어 명에게 급히 연락을 했지만 한 녀석은 대답이 없었고, 다른 녀석은 회식이라 안 되겠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를 잘 알지도, 그렇다고 전혀 모르지도 않는 적당한 관계의 술친구가 절실한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 잘 지내냐? 너희 회사 근처에 들렀다가 연락 한 번 해본다.


J로부터의 메시지였다. 평소였으면 답을 미루거나 안부 인사 정도로 끝냈겠지만 그날만큼은 반가운 연락이 아닐 수 없었다.


- 반갑다야, 지금 어딘데? 나 곧 퇴근인데 얼굴 한 번 볼까?

- 시간 돼? 난 지금 을지로야, 종각에서 멀지 않은. 너 이 근처 맞지?

- 응 가깝지. 어디 먼저 들어가 있을래? 금방 마무리하고 나갈게, 한 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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