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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Feb 21. 2023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멋있어지기 #3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진짜 모범생은 아니었다.

- 은희경, <빛의 과거> 中


  학창 시절의 나는 모범생인 편이었다. 굳이 '편이었다'라고 표현한 건 정작 나 자신은 모범생임을 부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은근한 반항심 같은 게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상대적으로) 학교 질서에 순응했고, 교과 내용을 곧잘 암기했고, 교우 관계는 원만했고, 줄곧 반장을 맡았다. 일탈의 기회도 더러 있었으나 번번이 정해진 선을 지켰다. 대다수의 친구들은 나를 모범생으로 불렀다. 싫을 것까진 없었지만, 썩 좋지도 않은 갑갑함을 느꼈다.





  고삐가 풀린 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수업은 건성으로 듣고 날마다 새로운 놀거리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는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스펙 쌓기가 열풍이던 시기에 8-90년대식 캠퍼스의 로망을 즐겼으니 이후의 고생은 알 만하다. 쭈욱 모범생의 길을 걷던 친구들 중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녀석들도 더러 있었다. 


지나친 자유로 허덕인 나날들 중에는 고달픈 시기도 많았다. 못 노는 애들이 잘 노는 애들 따라 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경우를 종종 봤는데, 내 꼴이 꼭 그런 것 같았다. 차라리 계속 모범생이었으면 편했을 거라는 생각을 품은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생각 자체가 모범생의 틀에 갇힌 사고였던 것 같다. 




 

  자유 의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은희경의 소설에서 표현한 모범생의 착각,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과정 말이다. 권력이란 게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이의 눈치를 보며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곧 권력에의 순응이라는 것을 나는 어려서부터 본능적으로 느꼈다. 모범생이란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나라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권력에 순응하는 편이 아니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고 때로는 눈치 없는 듯 굴기도 했다. 눈치를 덜 봐야 내가 편하고, 내가 편해야 남도 편하게 해 주어 마침내 눈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눈치를 보는 사람과 눈치가 있는 사람의 차이란 생각보다 크다. 권위나 이름값 따위에 너무 쉽게 순응하며 눈치 보는 이들은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많다. 대표적인 예로 정치인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주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국민의 눈치는 안중에도 없이 추하게 구는 모습에서 '완강한 틀'을 지닌 이들의 눈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 아니 전부가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모범생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딱히 시사 이슈를 건드리려던 건 아니었다. 난 그저 은희경의 소설이 압축적으로 정의한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라는 명제에 깊이 공감했을 뿐이다. 권력으로부터의 순종을 자기 선택으로 착각하지 않는 깨어있음. 이것만 명심해도 눈치 보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타인을 만족시키려고 눈치를 보는 대신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삶. 그런 삶을 추구하면 할수록 나는 멋을 느낀다. 다행히 나는 진짜 모범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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