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4

- 별로 알고 싶지 않을 거야

by 차돌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얼마 안 있어 J는 또 한 병의 술을 시켰다. 더 마실 생각이 없던 난 마음속으로 놀랐다. 시계는 어느덧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아내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늦을 거라고 연락이라도 해두는 거였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왜 그랬어?"


내가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기도 했고, 술을 진탕 마시는 그에게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뭐? 아까 그 사람들한테 선물 물어본 거?”

"그래, 물어볼 수는 있는데 네가 너무 따지듯이 말하더라고."

"그랬나, 우리가 대화하는데 갑자기 끼어들었잖아. 난 그런 게 싫어. 느닷없이 방해받는 상황."

"그렇다고 해도 너무했어. 그 사람들 되게 당황하던데."


그때 다섯 병째의 소주가 테이블에 도착했다. 진작에 불을 꺼서 식어버린 오뎅탕에는 퍼진 어묵 조각과 흐물흐물한 야채 몇 점만이 남아 있었다.




“내 귀에서는 소리가 나.”


소주를 따라주며 J가 느닷없이 말했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술을 받던 내가 되물었다. 예상하지 않던 종류의 말이었다.


"지금도 내 귀에서는 소리가 나. 그런데 이렇게 시끄러운 데 있다 보면 저기 저 환풍기에서 나는 소리인지, 냉장고 소리인지, 아니면 내 귀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구분할 수가 없단 말이야. 소주 회사의 이벤트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난 아까도 소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어.”


"소리에 신경을 써? 어떤 소리?"


"네가 나한테 앞으로 어떻게 할지 물어봤을 때였을 거야. 내 귀에서는 새로운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어. 이번엔 '쉭-' 하는 쇳소리 같은 거였지. 그런데 갑자기 그 두 사람이 끼어들었지 뭐야.”




내게는 잠시 말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귀에서 나는 소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실은 둥그렇지 않고 평평하다라든지, AI 기술이 인류에 미칠 영향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그 정도로 말문이 막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감할 수 없는 내용에 맞장구치는 건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일보다 어렵다.


어릴 때부터 귀에서 소리가 나서 수술을 했다는 것, 그럼에도 소리는 없어지지 않아 쭉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 J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 정도가 전부였다. 귀에서 어떤 소리가 날지 짐작도 못하겠다는 내게, ‘별로 알고 싶지 않을 거야’라며 체념하듯 대답한 이후로 J는 말없이 술만 마셨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맞은편에 앉은 그의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취기가 오른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 근처로 왔으니 내가 내겠다며 나서는 걸 기어이 만류하며 J가 카운터에 카드를 내밀었다. 몇 번의 실랑이를 벌인 끝에 나는 결국 계산을 포기했다. 그래, 불러내서 실컷 이야기를 쏟아낸 건 너지- 당시에 내 귓가를 맴돌던 소리는 이런 속마음이 고작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명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