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5

- 건강해라

by 차돌


집에 도착한 건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현관문 도어락을 살금살금 눌러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서자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희미했다.


“안 자고 있었네?”


잠시 망설이다가 방으로 들어서며 내가 말했다. 창가를 향해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아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술 냄새 많이 난다. 오늘은 따로 자.”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를 낼 거라 예상했던 반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행여 아내의 태도가 바뀔 새라 재빨리 방을 빠져나왔다. 한밤중에 또다시 다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수기에서 물 한 컵을 받아서 마신 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니 J와의 술자리가 나른하게 떠올랐다. 술을 많이 마신 녀석이 집에는 잘 들어갔을지, 오늘 그가 나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머리를 감다가 귓속에 물이 고였을 때는 그가 말한 ‘이명’에 대한 궁금증이 잠시 생겼던 것도 같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나온 나는 평소처럼 안방을 향하려다 말고 옷방에 들어가서 트레이닝 팬츠와 티셔츠를 골라 입었다. 갈아입을 속옷은 안방에 있었지만 또다시 들어가서 아내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은근한 해방감을 느끼며 거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발치에 있는 무릎담요를 끌어당겨 이불처럼 덮고 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 얼마 안 있자 J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다. 헤어진 뒤의 안부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잠금화면을 풀었다. 메신저앱 상단에 있는 그와의 채팅방을 열어 메시지를 입력했다.


- 잘 들어갔지? 오늘 반가웠다. 덕분에 술도 잘 마셨고. 다음엔 내가 한 잔 살게!


그러고 보니 J의 프로필에는 앱의 기본 이미지만이 덩그렇게 설정돼 있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아이콘은 오히려 그에게 어떠한 사연이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반면 내 프로필 사진은 일 년 전쯤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던 아내와 나의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J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간결했다.


- 그래, 잘 지내고 건강해라.


그때는 미처 몰랐다. J가 내게 새삼스레 건강하라는 말을 덧붙였다는 것을.




그 뒤로 내가 J에게 술을 살 일은 없었다. 한참이 지나 그의 소식을 알게 된 건 대학 동창 민수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던 단체 채팅방에서였다.


- 그나저나 J는 통 말이 없네. 이 방에 없는 거 아냐?

- 걔 원래 말 별로 없잖아ㅋㅋ

- 지난번에 보니까 말 많아졌던데?

- 그래? 너 언제 봤는데?

- 언제였더라… 거의 일 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웬일로 먼저 연락이 와서 둘이 술 한 번 먹었어.

- 나도 그랬는데. 통 소식이 없다가 우리 집 근처라길래 만나서 소주 한 잔 했거든. 비슷한 무렵일 듯?


우리들 중 몇몇이 J와 각자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기도 비슷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모처럼 그를 떠올려 봤다. 다소 예민해 보였다는 점과 귀에서 소리가 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갔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어느새 다른 화제로 옮겨져 있었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근황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친구들이란 원래 그렇다. 대화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은 녀석에 대해 이야기할 여력 같은 건 없다. 상대의 안부를 묻다가도 이내 자기 할 말을 쏟아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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