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에서 들려오는 신호음
그 무렵 나의 일상은 엉망이었다. 주식 투자의 손실을 만회하려고 또 한 번 무리한 욕심을 부린 게 탈이었다. 주위에서 너도나도 가상화폐로 재미를 본다는 소리에 나는 그만 평정심을 잃었다. 오를 듯 오를 듯하여 차츰 금액을 늘리다 보니 어느새 투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코인판에서 나는 희망이 아닌 욕망만을 확인했다. 몇 달치 월급을 몇 분 만에 날리는 상황에서 회사 업무에 집중하기 힘든 건 당연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가 이어졌고, 그 때문인지 승진에서 누락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헛웃음조차 나지 않는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부부생활도 순탄치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상시 아내와의 대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생활패턴이 전혀 다른 룸메이트와도 같은 동거 관계였다. 주말이면 아내는 친정에 간다며 집을 나서기 일쑤였고 나는 나대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을 만나느라 밖을 나돌았다. 싸움도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우리는 다투지도,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종일 머리가 지끈거려서 퇴근길에 두통약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아내는 밖에서 저녁을 먹었다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습관처럼 배달 음식을 시키고 도착할 동안 샤워를 했다. 처음 주문해 본 메뉴가 입맛에 맞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음식물을 잔뜩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통은 없어지지 않았다. 약봉지를 뜯어 알약 서너 알을 입 안에 털어 넣고 물을 잔뜩 마셨다. 바로 약효가 들기를 바라며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시계는 어느덧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을 청하기도, 쉬거나 놀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두통이 여전했기 때문에 TV를 끄고 진열장에 있는 위스키 한 병을 꺼냈다. 온더락 글라스에 술을 따르자 얼음을 타고 졸졸 흐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인기척이 없는 조용한 집 안이라 그런 듯했다. 아내는 벌써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잔을 흔들어 위스키를 마시려던 순간, 달그락대는 얼음 소리를 관통하며 삐- 하는 신호음이 들렸다. 처음에는 가전제품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일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한 번 들리기 시작한 소리는 점점 크게 느껴졌다. 쉽게 무시할 만한 수준의 소음이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신호음은 외부로부터 아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청력 검사에 쓰이는 소리굽쇠를 귀 안에 넣고 쳐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소리의 진원지가 내 머릿속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통의 원인이 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보면 하루종일 머리가 지끈거린 이유도 밝혀지는 셈이었다. 신호음은 어쩌면 아침부터 시작됐는지도 몰랐다. 일어나자마자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고, 여러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다시 또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던 하루.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만으로도 귓가가 붐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에 비해 아무도 없는 - 아내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 실내라면 내 안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