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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 미생 OST Part 2

by 차돌


모두가 돌아간 자리

행복한 걸음으로 갈까

정말 바라던 꿈들을 이룬 걸까


밀렸던 숙제를 하듯

빼곡히 적힌 많은 다짐들

벌써 일어난 눈부신 해가 보여


또 하루가 가고

내일은 또 오고

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울고


셀수록 가슴이 아픈

엄마의 늘어만 가는 주름

조금 늦어도 괜찮단 입맞춤에


또 하루가 가고

내일은 또 오고

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또 한참을 울고

다짐을 해보고

어제 걷던 나의 흔적들은

푸르른 하늘 위로 나의 꿈을 찾아 떠나고

난 고집스런 내일 앞에 약속을 하고

매일




드라마 <미생>을 접했을 무렵의 나는 때마침 신입 사원이었다. 주인공 장그래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였던 것이다. 웹툰 원작까지 찾아 읽으며 나는 사회 초년생의 애환에 공감하고, 적당한 판타지(?)에도 흠뻑 빠져들었다.


장미여관, 볼빨간 사춘기 등이 참여한 OST의 수록곡들 중에서도 한희정의 <내일>을 가장 많이 들었다. 잔잔한 선율과 나직한 목소리, 여린 듯 강한 듯 마음을 다잡는 가사 내용이야말로 주인공 장그래를 가장 잘 떠올리게 했다. 애처롭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단단한 장그래의 극 중 모습과 내 처지를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 했던 것 같다.




한산한 퇴근길, 지하철은 한강 다리를 지나고 해질녘 노을빛이 창을 통해 은은하게 번져 들어온다.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는(대다수는)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또 누군가는 책을 보고,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러한 풍경은 사실 드물 것이다. 거의 모든 이들의 퇴근길은 버스든 지하철이든 숨 막히듯 붐빌 테고, 야근이나 회식이라도 한 날이면 햇살은커녕 환한 실내조명 아래 술냄새 풍기는 이들과 부대끼게 마련. 그러다 보면 퇴근길에 벌써 다음날의 출근을 걱정하는 게 현실판 미생들의 모습이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건 그만큼 일상이 단조롭고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이 덜해서라고 한다.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거라 예상되고, 실제로 내일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나날들. 직장인, 자영업자, 취준생 할 것 없이 과연 내 꿈이 무엇이었나 의문을 품으며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나 빨리 달아나 버린다.


<미생>이 방영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조직, 사회 분위기만 해도 지금과는 천지 차이다. 물론 그때라고 해서 사원들을 무자비하게 갈구는 선배들이 당연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업무 중에 이어폰(에어팟도 없던 시절)을 낀다는 건 상상도 못 하던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회생활로 지칠 무렵이면 그 시절 <미생>의 아련한 감성은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10년 전 인기 드라마가 고전처럼 우리네 일상을 달래주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들이 '앞만 보며 걸어가라'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당신께서도 한때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아래도 한 번 내려다보며 한탄하셨겠지만 이미 바뀐 세상 앞에 무용함을 느끼셨을 테지. 그럴 바엔 정신 바짝 차리고 다가올 내일을 놓치지 말라고 해주는 게 그들로서는 우리를 향한 최선의 조언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 퇴근길에 즐겨 듣던 <내일>. '고집스러운 내일' 앞에 나 역시 많은 것들을 약속했지만 번번이 지키지 못했다. 그 내용은 어렴풋하더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던 기억만큼은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어제의 내 흔적들은 꿈을 향해 이미 떠났으니, 오늘의 난 내일을 또 기약하며 완생에 다가가기를 바랄 뿐이다.


https://youtu.be/9rPhdh4W6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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