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는 번호
지하철역 출구에는 전단지를 건네는 노인이 있었다. 평소라면 무심코 받아 넣었을 나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들어 거절 의사를 밝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흘끗 보니 새로 오픈한 헬스장의 홍보 전단이었다.
‘다들 바쁜 아침에 이렇게 종이를 뿌려야 하나?’
순간적으로 짜증을 느꼈다. 문득 J가 소주 판촉을 나온 사람들에게 날카롭게 굴었던 일이 떠올랐다. 귀에서 소리를 느끼면서부터는 그를 부쩍 자주 떠올리는 듯했다. 회사 건물로 들어서기 전 카페에서 따듯한 차 한 잔을 테이크 아웃 주문했다. 예민한 신경을 달래야 했다.
“박 과장,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왜 그렇게 멍을 때려?”
“어머, 과장님 아까 식사 때도 그러시더니. 무슨 일 있으신가 봐요~”
“아, 저요? 하하, 아닙니다. 별일 없어요. 어제 잠을 좀 못 잤더니 몽롱하네요.”
회의 도중 원치 않는 관심을 받게 되어 당황한 나는 잠 핑계를 댔다. 사람들이 떠드는 가운데 귀에서 소리가 얼마나 나는지 신경을 쓰던 중이었다. 다만 그 이후로는 일에 몰두하고자 노력했다. 홀로 조용히 있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미팅을 더 잡고 사람들과 떠들었다. 그깟 소리 때문에 얼빠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퇴근이 가까울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자리에 앉아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귀에서 나는 소리’를 입력했더니 온갖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과 답변은 물론이고 각종 클리닉과 한의원의 홍보글이 많았다. 페이지를 넘겨도 넘겨도 쏟아지는 내용에 금세 피로감을 느꼈다. 자세한 진단과 치료를 하려면 병원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마저도 보장이 없다는 증언들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 창을 닫으며 기억에 남은 단어는 ‘이명’ 뿐이었다. 익숙한 단어다 싶어서 기억을 더듬던 내 머릿속에는 또다시 J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가 말했던 증상도 분명히 이명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그와의 채팅방을 찾았다.
- 그래, 잘 지내고 건강해라.
한참 전의 인사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 더 이상 교류는 없었다.
- 잘 지내? 너무 오랜만 |
- 별일 없지? 다름이 아니라 |
- 잘 살아? 오랜만에 얼굴 한 번 |
인사가 뭐 별 일이라고, 그에게 보낼 메시지를 고르느라 서너 종류의 문장을 쓰다 지웠다. 뻔한 인사와 단도직입적인 질문 사이에서 적당한 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부 한 번 묻지 않았던 일이 후회스러웠다. 몇 차례의 망설임 끝에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십시오…"
J에게 연락할 만한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