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11

- 우리 사이의 40분은 좁혀질까

by 차돌


약속 시간보다 이십 여분 일찍 도착한 일식집은 붐비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지하철 역 부근이라고 하지만 번화가라고는 할 수 없는 위치인 데다 유명한 맛집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석 자리를 골라 잡고 앉아서 메뉴판을 살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인 듯했다. 아내가 도착하면 의사를 확인하고 주문할 만한 메뉴를 두어 개 골랐다. 먼저 시켜 놓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아내와 밖에서 함께 하는 저녁 식사는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자리였다.


주위 손님들의 모습이며 횟감의 상태를 흘끗흘끗 살피는 것도 잠시, 홀로 기다리는 시간은 금세 어색해지고 말았다. 카페가 아닌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법이다. 7시가 다 되어 나는 결국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당신 어디쯤이야?”

“나 지금 가고 있어. 생각보다 차가 막히네? 이십 분은 더 걸리겠다. 집에 차 대놓고 바로 갈게.”

“아… 늦는구나. 말을 해주지, 난 좀 일찍 와서 기다리는 중이야.”

“…”

“아무튼 운전 조심히 와.”

“먼저 시켜서 먹고 있어. 금방 갈게.”


전화는 뚝 끊겼다. 괜히 걸었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미리 나와서 기다렸다는 생색도 내고 늦은 데 대한 원망까지 드러낸 셈이었기 때문이다. 누구 한 명이라도 먼저 연락을 했더라면 우리는 비슷하게 도착했을 것이다. 그래봤자 집에서 뒹굴거렸을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니었다. 아내를 탓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다만 나에게 상응하는 아내의 무심한 태도에 번번이 상처받는 느낌을 숨길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이십 분을 먼저 나오고, 아내는 아내대로 이십 분을 늦는다. 각자의 이십 분을 더하면 우리 약속에는 도합 사십여 분의 간격이 생겨 버렸다. 나와 그녀의 사이는 늘 그렇게 두 곱절의 거리가 벌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내 귀에서는 계속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식사가 한창인 사람들 사이에서 물만 마시며 보내는 시간은 더디게도 흘렀다. 이윽고 아내가 도착했을 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을 정도다. 뒤이어 나는 자연스럽고도 부드럽게, 그녀가 벗은 외투를 받아서 옆 의자에 걸어 두고 메뉴판을 건넸다.


“먼저 먹고 있으라니까 왜 그냥 기다렸어?”

“아무리 그래도 혼자 먹고 있기는 그렇잖아. 괜찮아, 같이 먹자.”

“당신도 참 제 멋대로야. 갑자기 여기 오라고 하질 않나, 일찌감치 나와서는 기다리질 않나.”

“…”

“당신 먹고 싶은 거 시켜, 난 점심을 늦게 먹었더니 배가 별로 안 고프네.”


메뉴판을 보지도 않으며 말하는 아내의 태도가 정겹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일단 말을 많이 한다는 건 기분이 그럭저럭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테이블을 몸에 가깝게 끌어당기고, 머리 매무새를 정돈하는 그녀에게서는 오히려 생기마저 느껴졌다. 나는 점원을 불러 미리 봐 두었던 사시미 코스를 주문했다.


“회도 먹는데, 술 한 잔 할래?”


메뉴판을 점원에게 돌려주던 내가 아내를 돌아보며 물었다.


“술? 아냐 괜찮아. 당신 모르는구나, 나 술 안 마신 지가 한참 됐는데.”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머쓱해진 나는 점원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과연 우리를 어떤 사이로 볼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 청하 한 병도 주세요.”

“잔은 몇 개 드릴까요?”

“그냥 두 개 주세요.”


두 명뿐인데 잔의 개수를 확인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점원은 우리의 대화를 들은 게 분명했다. 그다지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들킨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모처럼 갖는 둘만의 시간이 순탄하기만 할 리 없겠다는 생각에 나는 아내와 평소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쓰레기 버리고 올게’ 식의 일상적인 소통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 테이블에 앉아서 마주 보는 자체가 굉장히 오랜만의 이벤트인 건 분명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명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