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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ug 22. 2023

흉흉한 에세이

내 살다 살다



  요새 밤길을 걷다 뒤에서 인기척이라도 나면 전에 없이 놀라곤 한다. 누구나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겁이 많든 적든, 사회에 관심이 많든 적든 흉악 범죄가 기승인 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미디어의 발달로 유포되는 영상이나 사진이 전에 없이 생생하다 보니 대중들이 느끼는 위협감은 날로 커지는 게 사실이다.


  지인이 사는 다세대 주택에는 이웃을 칼로 위협하는, 분노조절 장애로 추정되는 남자가 산다. 소음이 이유라는데, 한낮에 청소기만 돌려도 윗집, 옆집, 옆옆집 가리지 않고 문을 발로 차고 칼을 드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고 하니 주민들이 미칠 노릇이라고. 누군가 경찰에 신고도 해 보았지만 특별한 사건이 발생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떻게 처벌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되었다고 한다.


  각자 삼아남아야만 하는 세상이다. 경찰에게는 경찰의 입장도 있겠지만, 시스템을 핑계로 하는 모든 것들의 이면에는 결국 사람의 방관과 무책임이 있단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인의 딱한 사정을 흉악 범죄에 끌어다 소개하는 게 어쩐지 안타깝고 미안하다만, 요즘 현실을 압축해 놓은 실질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다만 그와 가족들의 안전을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진실로 타인의 사정에 공감하는 건 자신도 똑같은 일을 겪고 난 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세상 팍팍해진 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사회가 너무 거대해졌고, 그 안에서 복잡다단하게 연결된 현상들 앞에 우리는 누구나 무력하다. 연대나 관용, 공감 같은 말랑한 가치들을 앞세워 경각심을 호소하기에는 서로가 서로를 살필 겨를 없이 거대한 벽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은커녕 신상 공개가 지연되고 감형까지 이뤄지는 나날들.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려 보면 세상이 결코 합리적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여기기 힘든 상황들. 날로 흉흉해지는 세상을 살며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로서의 자부심은커녕 무력감마저 드는 오늘, 유난히 들숨이 버거워 크게 한 번 내뱉은 날숨에 실은 글이 스스로도 애처로워 도로 삼키지 않고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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