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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17. 2016

미용실에의 기대

#미용실 #거울 #기대

"뒷머리가 좀 긴 것 같아서요." 


말하자면 가장 진실되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때만큼 솔직한 확인의 시간이 있을까.

욕실 불빛에 비친 샤워 후 모습에 도취되거나, 백화점 의류 매장 점원의 어색한 칭찬을 들으며 전신을 몇 차례나 확인하거나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그런 '진짜' 거울이 있는 곳이 바로 미용실이라는 생각이다. 


평일 낮의 동네 미용실은 예상대로 한산한 편이었고,

할머니 고객 한 분과 동행 두 분, 다른 남자 미용사 한 명의 약간은 부조화스러운 손놀림이 단지 그곳이 이발소도 대형 미용실도 아닌 그냥 동네 미용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늘 내 머리를 잘라주시는 원장님은

얼굴형에 비해 몸매가 통통한 체형의, 그러나 그리 둔해 보이지는 않기에 전체적으로 기분좋은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다. 

다닌지는 어느덧 반 년 가까이 된 것 같고, 갈 때마다 참 적당히 마음에 들게 머리 손질을 해 주신다.


오늘은 아드님이 군대에 간 이야기며, 사촌 조카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다.

그에 맞게 내 얘기도 슬몃슬몃 꺼내 놓았음은 물론이다.

중간중간, 할머니 손님에게 따뜻한 녹차며 다른 손님이 가져왔다는 고구마까지 살뜰히 대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요는, 근래에 만난 이들 가운데 오늘의 미용실 아주머님이 유난히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원장님께 커트 비용만큼의 효용과 그간의 스타일에 준하는 기대치만을 안고 방문했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며, 심지어 나를 격려해 주는 말까지 덤으로 듣고 또 오늘따라 시원하게 머리를 감겨주시는 서비스가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내가 값을 지불하자, 원장님은 이내 다른 손님을 신경써야 했고, 난 솔직히 한 두 마디 더 나누고 싶은 심정이었음에도 이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빵집에서 빵을 산 후 미용실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딱 가격 만큼의 기대를 했고, 미용실이란 공간은 딱 그만큼과 적당한 보너스까지 제공해 준 후 내게서 사라져 줬다는 의미다. 처음 방문했을 때 회원등록을 위해 전화번호와 이름을 요구했던 딱 한 번을 빼면, 미용실은 내게 아무런 요구도 한 적이 없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내가 다니는 미용실은 현금 계산이 카드보다 2,000원이 더 싸다.

나는 늘 현금을 내기 때문에 2,000원의 배수만큼 이득을 보고 있는 건지,

카드 수수료며 세금 따위의 내가 알 수 없는 미용실 사정으로 인해 늘 원장님이 만족스러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미용실에는 미용실 나름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내 머리는 적어도 앞으로 또 한 달 내내 단정할테니

이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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