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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14. 2016

어릴 적 머리맡의 장롱 손잡이

#의미 #장롱 #기억

"그는 천장을 쳐다보며 벽지에 새겨져 있는 무늬를 오랫동안 의미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키의 단편 '벌꿀파이' 를 읽던 중 잠시 멈춘 부분이다.

지극히 평범한 문장임에도, 앞뒤 맥락이라든지 작품 전체에 대한 만족도 덕에 더 두드러져 보였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문득 아주 어렸을 적 잠들 무렵에 자주 올려다 본 장롱(크기를 감안할 때는 4~5단 수납장이라 칭하는 게 더 적절한 듯도 한)에 붙어있던 손잡이가 떠올랐다. 양손을 뻗어 당길 수 있게끔 달린, 큼직한 입꼬리를 가진 놋쇠 고리였다. 잠들기 전 그걸 손으로 몇 번이고 건드려 달각 달각 소리를 냈던 기억이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리는 손고리가 뜻밖에도 그 본래의 용도 이외에 잠자리에 누운 어린 아이의 모빌 역할까지 수행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쇼파에 앉아 만화영화를 보면서 노란 고무줄을 당기며 놀았던 기억 따위가 책에서 잠시 벗어난 머릿속을 갑자기 스치고 지났다. 이를 촉발시킨 책 속 구절처럼 벽지 무늬를 오래도록 쳐다 본 기억까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만큼 순간에 떠올랐던 생각은 '연상'이 아닌 뚜렷한 '기억'이었다.


의미없다는 것, 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솔직히 벽지를 보거나 장롱 손잡이를 흔드는 일 따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단편 소설 하나로 인해 떠오른 이런 사소한 기억들은 이후로 십 수년 간 축적한 의미있음직한 무수한 기억들에 앞서 드러났기에 잠시나마 다른 모든 것들에 앞서는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예컨대 동시대에 내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부대끼며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라든지 최초로 집을 잃고 헤맸던 에피소드들이 유년기의 추억으로 뭉뚱그려져 희미한 것과는 달리 단지 수납장 손잡이를 달그락 거린 기억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는 말이다.


성장해 가면서, '의미있는' 것들의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역설적으로 '의미없는' 행위도 많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내가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반대로 그에 부합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의미없는 일들로 전락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 고민하고 갈등하며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들, 나중에는 생각조차 안 날지도. 대신에 이른 아침 눈을 뜨고 더 잘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가만히 응시한 천장의 형광등 갓이 십 수년 후에 느닷없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 따위와 구별하자. 의미 없는 것들을 의미 없다고 치부하지만 말고 그 자체가 어떤 의미를 지닐 지도 모를 현재의 순간들을 지금의 잣대로만 판단하지는 말자는 얘기랄까.


이제는 안방 구석에 자리잡은, 아직까지 버려지지 않은 옛날의 그 장롱 손잡이를 확인해 보니 달그락 거리며 부딪히던 나무 부분이 살짝 패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나 내 속이 패여있는 만큼은 아닌 듯했다. 그런대로 쓸만해 보였다 아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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