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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May 02. 2016

힐링과 히어링

#힐링 #경청 #위로

우선 분명히.

소위 '힐링' 대가들의 책을 나름대로 읽어보았고, 또 저자들의 젊은이(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 깊이 공감한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과연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되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기에 때론 방황해도 괜찮다는 위안을 대체 우리 사회 어디에서 얻었을까.


값싼 힐링이 아니냐는 비판, 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반면 그 얘기를 꺼내며 눈물을 흘리는 대중적 스님의 마음은 그 어떤 어르신들의 눈물보다 진실로 다가왔다 -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는 이에게조차 마음을 닫고 조소를 보내는 청춘 내지는 성인들이 많은 사회는 그만큼 근본 치료가 없이는 서로 적대적이고 절망적인 곳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이다. 요컨대 힐러들은 그들을 향한 모진 잣대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아파함을 이해하고 꾸준히 힐링을 이어나갈 필요를 느껴야 진정성이 더 빛날 것 같다고도.


역시,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이란 말대로 

사람들은 불완전한 문장에서나마 희망을 발견하며 불완전한 절망을 조금씩 극복하고 희망을 향해 내딛는 걸까.


하지만,

완벽히 가슴에 와 닿는 힐링 서적을 읽는다 해도 다음날 저녁이면 어느새 누군가를 찾아 스스로의 고통과 타인의 아픔을 견주곤 하는, 또한 그나마 자신보다 괜찮아 보이는 이로부터 위로를 구하는 수많은 '개개인'들에게 - 특히 구만리 같은 앞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 갈등하는 청춘들에게 -


완벽한 힐링이란 있을 수 없으며, 당분간은 자신 곁에서 바짝, 언제고 얘기하고 싶을 때 '히어링' 해 줄 친절한 조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 수많은 개별적 삶의 버거움이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치열한 항암치료 끝에 마침내 건강을 회복한 사람이 밝은 얼굴로 어느 날,

'난 고통을 통해 비로소 삶을 배웠고, 마침내 건강을 되찾았지요. 암 투병 과정은 제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라는 말을 아무리 듣기 좋게 한다한들,

거기에 더해, 의료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 암환자 대다수의 생존률이 90%를 넘어가게 된들,

암을 기꺼이 그리고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냔 말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옆 동네 맥도날드의 빅맥이 맛있고 또 거기까지 가는 길이 수려하고 아름답더라도,

자기 동네 맥도날드에 슬리퍼를 끌고 가 빅맥 뿐 아니라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얼른 먹는 걸 부러 포기하고 싶을 이가 얼마나 될까 의문이란 말이다. 


서로 다른 사연의 불특정 다수가 똑같이 공감하는 크나큰 위로가 아니라,

나만의 사람이 오로지 나를 위해 들어주는 경청의 태도와 근사한 생맥주 한 잔은 그래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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