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겡끼데스까
습관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손끝으로 카카오톡 아이콘을 톡 두드린다. 노오란 스플래시 화면이 보이고서야 비로소 내가 이걸 왜 켰는지 떠올린다. 그렇지, 혹시나 안 읽은 메시지가 없나 확인해 본다. 아래쪽 '채팅'아이콘에 새로 뜬 숫자가 없다. 그래도 굳이 한 번 채팅 목록을 열어본다. 진작에 팝업 알람으로 확인해서 익숙한 최근의 대화들이 나열돼 있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습관처럼 들여다보는 카톡의 채팅 목록이란 이토록 심심한 것이다.
보통은 그러고 말겠지만, 지나치게 한가할 때이거나 잠자기 직전의 침대 위에서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심심할 겨를 없이 채팅 옆에 있는 친구 목록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빠지는 것이다. 화면에는 초성 'ㄱ'부터 시작하는 익숙한 이름들이 동글동글한 프로필 사진과 함께 펼쳐진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이름도 군데군데 섞여있다. 언젠가 연락처 목록을 싹 정리한다고 했는데도 이래저래 남아있는 사람들일 테다. 혹은, 이제 더는 기억나지 않는 예전의 지인들인지도.
잠시 스크롤을 멈추고 프로필을 탭해 본다. 꽤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대학 친구 녀석이다. 한때는 제법 친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와의 기억들이 부분 부분 떠오르다가 이내 어떤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그 덩어리는 대학 시절의 내 모습인 동시에, 당시를 추억하고 있는 현재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놀랄 만큼 변해있기도 하며, 또 어떤 면에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그대로인 구석도 있는 나는 다시 한번 그 친구를 떠올려 본다. 얼마나 그대로일지, 또 얼마나 변해있을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다시 목록으로 돌아와 화면을 내리다가 내 손끝은 그만 어떤 여자의 프로필에서 멈춘다. 4~5년 전쯤 소개팅에서 만났던 사람이다. 첫 만남의 느낌이 긴가민가하여 한 번을 더 만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도 당최 알랑말랑한 기분이 들어 세 번을 만나고 난 후에야 연락은 잦아들었다. 처음 만난 놈의 애프터에 두 번 더 선선히 응해줬으니 그녀도 내가 싫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어쨌거나 내쪽에서든 그쪽에서든 더 이상의 아쉬움은 없었기에 네 번째 만남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으리라. 다만 연락처가 남은 것은, 그 정도의 관계에서 '우리 그만 만나요'라는 말이 불필요했듯 연락처의 삭제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개팅에 대한 추억도 잠시, 잠시 후 내려본 친구 목록에서 나는 일순간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사이가 정말 좋지 않던 예전 직장 동료(상사)의 프로필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들은 한참을 떠올려야 옅은 미소가 나올까 말까 한 것과는 달리, 그 사람과 있었던 일은 하나만 떠올려도 짜증이 확 밀려온다. 부정적인 감정의 파급력은 이처럼 큰 것이다. 왜 나는 당시에 그에게 분명한 나의 기분을 표현하지 못했나- 사진 속에서 짐짓 쾌활한 듯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새삼 얄밉다.
이번에도 머릿속에는 '덩어리'가 몽글몽글 형성된다. 역시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뒤엉켜 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야말로 회사라는 공간에서 드러낸(난) 지극히 부분적이거나 변형된 모습의 나였음에 분명했다. 요컨대 나와 맞지 않던 그 사람은 나라는 존재를 전면으로 마주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전혀 다른 나를 겪었다고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 말인즉슨, 내가 싫어했던 그 역시 당시에는 어떤 형태로든 변형되었거나 왜곡된 모습이었을 거란 얘기가 아닐까? 이만큼 지나고 보니 조금이나마 '관용'이라는 게 생겼나 싶기도 하다. 괜한 감정의 찌꺼기에 불쾌함을 느끼느니 이럴 때야말로 지나간 사람은 지나간 대로 잊는 게 좋을 일이다.
이밖에도 몇 번을 더 멈추어 그 사람과의 기억을 떠올리고 나서야 나의 카톡 순례는 끝이 났다. 비슷한 경험이 누적되다 보니 이제는 몇 번이나 떠올려 본 사람도 있고, 프로필 사진이 확 바뀌어 눈에 띄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과연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건지, 그들도 가끔씩은 나를 추억하고 있을지.
카카오톡이 나오기 전에는 전화번호부 목록을 보며 해당 연락처의 사람을 떠올렸던 때가 있었다. 물론 현재의 관계들만으로도 벅차고 바쁘다면 지난 사람들을 떠올릴 여유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인연을 돌아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분명하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이며 그들이 남긴 글귀까지 보여주는 카카오톡이지 않은가? 애쓰지 않아도 알던 사람의 대략적인 현재 상태까지 업데이트되는 이 SNS야말로 'TV는 사랑을 싣고'와 같은 프로그램이 더는 필요치 않은 세상을 앞당겼다고도 볼 수 있는 게 아닐는지.
그나저나 내 성씨의 초성이 'ㅅ'이라서 아무래도 'ㄱ'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질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가끔씩이라도 안부를 전하던 옛사람들로부터의 연락이 뜸해진 것 같다. 나부터가 남들을 몰래 엿보기만 하고 연락하는 건 부담으로 느끼듯이, 그들도 나와 비슷한 걸까? 상태 메시지에 '와따시와 겡끼데쓰' 라도 남겨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