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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Feb 05. 2020

자본주의와, 허영과, 인스타.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아래 것들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찬양해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파스칼, <팡세>


  한 모임에서 인스타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열변을 토했다.  



친구1(女) : 우리 회사 동기 중에는, 그렇게 자랑질을 하는 애가 있거든. 맨날 빽이며 신발 같은 사진을 올리고 '고마워, 사랑해 울 남편 하트하트' 이렇게 써 놓는 거야.

친구2(女) : 야야 걔만 그러냐. 인스타 보면 명품이 널렸지. 근데 걔 좀 살긴 사나 보다? 어쨌든 뭐가 자꾸 생기니까 그렇게 올리는 걸 거 아냐. 


친구1 : 응 걘 원래 좀 살았고, 결혼할 때 얘기 들어보니까 남편 쪽도 괜찮더라.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 나 원래 인스타 잘 안 하다가 얼마 전부터 재미 붙였잖아. 걔가 금방 나 팔로우하더라고. 나 왜 지난번에 오빠랑 여행 갔을 때 면세점에서 샀던 가방, 그걸 찍어서 올려봤거든?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 자기도 가방 선물 받았다고 올리더라고.


친구2 : 너 괜히 오바하는 거 아냐? 그 동기는 맨날 그런 사진 올린다며. 설마 너 의식해서 그랬겠냐ㅋㅋ


친구1 : 아니 이게 한 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진짜 여러 번 그래. 괜히 똑같은 사람 될 것 같아서 요새 난 아예 음식 사진 같은 거밖에 안 올리잖아 그래서.


친구3(男) : 하하, 진짜 쟤 인스타 보면 맨날 맛집만 다니는 것 같애.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이런 말은 근데 왜 써놓는 거냐?


일동 : ㅋㅋㅋㅋㅋㅋㅋ


친구2 : 야 원래 다이어트는 여자들의 일상이야. 넌 근데 인스타 원래 했어? 나 너 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친구3 : 계정은 원래 있었는데 잘 안 하고 눈팅만 해. 내가 원래 그런 거 잘 안 하잖아.


친구4(男) : 하긴, 얘는 싸이랑 페북도 잘 안 했지. 너, 스마트폰도 필요 없는 거 아니냐? 완전 아재처럼 효도폰으로 통화랑 문자만 쓰면 되겠는데?


일동 : ㅋㅋㅋㅋㅋㅋㅋ


친구3 : 야 씨, 내가 SNS를 안 하는 거지 스마트폰이 왜 필요 없냐. 요새는 컴퓨터보다 많이 하는데.




이야길 듣던 난 이쯤에서 한 마디를 보태어 화제를 바꾸어 보고자 한다.



나 : 맞아 진짜, 쇼핑도 그렇고 은행 일도 다 스마트폰으로 보니까. 회사 컴퓨터가 없으니 난 데스크탑은 쓸 일도 없다니까 이제.


친구4 : 그러고 보니 우리 중에 제일 잘 지내는 건 ○○(내이름)이 같애. 맨날 여행 사진에 감성 사진에, 얼마 전에는 빠(bar)에서 찍은 사진도 있던데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친구1 : 맞아, 오빠 막 위스키 많은 데서 사진 찍고 올렸던데 그거 셀카였어? 가게는 어딘데?


나 : (일동에게 근황을 '최대한 담백하고 거짓이 없으면서도 너무 겸손하지는 않게, 있어 보이는 데 그게 있는 척하는 게 아닌 동시에 없는 걸 숨기는 것 같진 않도록 자연스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말을 하면서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아, 나도 실은 이들에게 인스타를 이야기하고 싶었구나, 하고.

  



  <상처받지 않을 권리> 는 대중에게 철학을 쉽게 풀어내는 걸로 유명한 강신주의 저서 가운데 하나로,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에 대한 다양한 철학자와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책 제목을 얼핏 보면 감정적 위로나 힐링을 다룬 에세이집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어렵고 딱딱한 인문 교양 서적인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상처'란, 자본주의 사회가 키워내는 욕망으로 인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마음의 고통을 뜻하므로 어떤 면에서는 힐링 서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정독을 한다면 오히려 흔한 힐링 에세이들에 비해 훨씬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기대로 오랜만에 강신주의 책을 집어 들었다.


  적지 않은 분량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구절이 바로 서두에 소개한 파스칼의 지적이다. 그의 명상록 <팡세>가 그처럼 인간의 허영에 대한 통찰까지 담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저자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허영심을 얘기하던 중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는데, 앞 뒤 맥락이나 친절한 부연 설명 없이도 발췌문 자체가 강렬하고 좋았기에 나 또한 발췌하고 기록한다.


  나 역시도 파스칼의 말처럼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나 보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쓰는 것 또한 그런 바람에 기인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실제로 지인들과 주고받은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마침 저 대화 속에서 파스칼이 지적한 허영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스타에서 허영을 뽐내는 이(친구1의 회사 동료), 허영을 비웃으며 자신의 허영을 드러내는 이(친구1), 허영과는 무관한 듯 굴지만 실은 허영을 티내는 걸 싫어하는 형태의 허영을 지닌 이(친구3), 허영의 실체를 캐묻는 이(친구4), 이들의 대화와 자기 자신을 짐짓 분리하려 하지만 실은 기회만 주어지면 스스로의 허영을 포장하는 이(나).


  이러한 저의 단상을 끝까지 읽고 공감하신 분들이라면, 혹시나 주저하지 마시고 좋아요, 댓글, 공유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제 허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바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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