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유통기한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인 걸까?
와~ 이거 유통기한 좀 보소, 2017년이네!
냉장고를 뒤지던 나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냉동제품을 발견한다.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널찍~한 양문형 냉장고의 냉동칸과 냉장칸에 가득 들어차 있는 식재료들 중에는 이것 말고도 제때 조리되지 못한 제품들이 꽤나 많다.
그냥 버리라는 나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건 엄마에 의해 냉장고에 재배치되곤 한다. 냉동돼 있던 건 냉장실로, 냉장실 안쪽에 있던 건 잘 보이는 바깥쪽으로.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결국 요리해 먹느냐 하면은 그건 또 그렇지 않다. 엄마가 보기에도 더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태가 되고 나서야 오래된 식재료는 비로소 먹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이다.
또 사? 북 콜렉터네 진짜~
중고서점에 들러 충동적으로 책을 구입한 나를 두고 여자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책을 구입하는 수에 비해 독서량이 따르질 못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를 '북 콜렉터'라고 놀리는 그녀다. 달리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에 웃어 넘기며 이번에야말로 새 책을 미루지 않고 읽으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이미 읽고 있는 책만 해도 두 권(요새는 때에 따라 서로 다른 책을 번갈아 읽으므로)인 데다, 사놓고는 책장에 꽂아 놓기만 한 많은 책들이 떠오르며 과연 이걸 또 언제 읽지라는 생각에 어쩐지 씁쓸하기도 하다.
책장의 책부터 먼저 읽어야겠다고 수차례 다짐했건만 이렇듯 나는 좀처럼 새 책을 구입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실행'보다 '욕심'이 앞선다고 할 만하다. 구입해서 소유하면 그 책은 '내 것'이라는 생각에 얼마간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읽어야 비로소 책이지 갖고만 있어봐야 책장용 표지가 될 뿐이거늘, 다독(多讀)하자고 아무리 스스로를 다독여도 좀처럼 쉽지가 않은 일이다.
우리 엄마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어릴 땐 엄마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머리가 좀 굵어지면서부터는 그게 좀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다. 정리정돈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기본적으로 잡동사니가 많은 집은 좀처럼 깔끔해 보이기 힘들기 때문에, 나는 틈나는 대로 이거 버리자 저거 버리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릴 때 내가 들었던 잔소리에 대한 통쾌한 반격이랄까, 일종의 그런 묘한 쾌감도 있다 보니 이따금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발견하면 여봐란듯이 엄마의 재고 관리에 대해 지적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 큰 아들놈이 집안일에 굳이 간섭하는 게 엄마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다. 원래 주부들 냉장고가 그런 거라며, 괜한 잔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서 네 방이나 치우라는 엄마의 반격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방으로 돌아온다. 과연 엄마 말마따나 내 방도 적잖이 지저분한 건 마찬가지다. 나 역시 뭘 잘 버리지 못하는 건 엄마를 빼닮았기에 나름대로 정리를 했음에도 책상이며 바닥 곳곳에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쌓여 있다.
그러던 나의 눈길은 책꽂이에 머무른다. 썩 넓다고 할 수 없는 보통의 방 한쪽 벽을 차지한 책꽂이는 눈에 안 띄는 게 이상할 정도로 큰 사이즈를 자랑한다. 비어있는 책장 칸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 책들로 들어차 있고, 심지어 어떤 칸은 책이 넘쳐서 꽂아놓은 줄 앞으로 또 여러 권의 책들이 튀어나온 채 쌓여 있다. 이사하면서 오래된 책들을 제법 버렸는데도 이 모양이다. 하긴, 한정된 책꽂이가 진작부터 가득 차있음을 알면서도 꾸준하게 서점에서 한 권 두 권씩 책을 사다가 날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문득, 엄마의 냉장고와 나의 책꽂이가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한다. 차고 넘치다 보니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진 오래된 것들을 그저 보관만 하고 있는 '저장고'인 점 말이다. 먼저 냉장고의 예를 들면, 내가 먹기 좋아한다며 팩에 든 베이컨을 잔뜩 사놓은 엄마는 그러나 그걸 다 해 먹기도 전에 다른 재료들을 쌓아놓느라 유통기한을 넘겨 버렸다. 다음은 책꽂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몹시 좋아해서 그의 책을 내키는 대로 산 나는 이후로도 각종 다른 책들을 사느라 정작 책장에는 읽지 않은 하루키의 책들이 꽤 꽂혀 있다.
냉장고와 책꽂이, 둘 중 어느 것이 낫냐고 한다면 결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음식이 지식에 우선하는 필수품인 건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기호'로서만 보자면 대충 그렇단 얘기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식재료와 책을 비교해 본다면 분명히 후자가 보관하기에 나은 점이 있으니, 바로 책에는 유통기한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내 책꽂이가 엄마의 냉장고에 비하면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아무리 엄마가 마음먹고 부지런히 냉장고의 식재료들을 소진하려고 한들 유통기한을 이미 넘겨버린 제품 중 상해버린 건 당연히 버려야 하고, 그나마 냉동돼 있는 가공 제품이라 해도 신선도를 장담하기 힘들기에 버리는 게 나은 경우가 많다. 반면에 책은 웬만해서는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일이 없다. 성추행 사실이 밝혀진 노망난 시인의 시집이라든지 헤어진 여자 친구의 편지가 쓰인 책 같은 게 어쩌다 발견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책이란 음식처럼 쉽게 상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의 책꽂이가 엄마의 냉장고를 지적할 만하냐 생각해 보면 그리 합당한 일은 아닌 듯하다. 안 좋은 습관이 엄마를 닮았다며, 그나마 나는 어찌어찌 이를 고쳤으니 엄마도 나처럼 달라져 보라는 식은 아무리 좋게 봐도 좀 못난 아들 아닌가. 그날도 그랬다.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꺼내며 이게 대체 언제부터 있던 거냐며 큰소리친 그런 경우 말이다.
그런데 그날은 또한 달랐다. 냉장고를 지적하고 금세 방으로 돌아온 나는 내 책꽂이에 쌓인 안 읽은 책들을 보며 새삼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내 방 책꽂이는 오로지 나만 채워넣는데도 그렇게 넘치는데, 냉장고는 엄마 뿐만 아니라 내가 요새 이것저것 먹고싶은 걸 사다가 쟁여놓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식구 다 같이 잘 먹자고 식재료들을 관리하는 엄마의 욕심이 비록 그걸 다 조리해 낼 여력을 뛰어넘는다 한들 이를 그리 탓해서야 되겠는가.
그래, 냉장고의 질서는 엄마에게 맡기고 차라리 내 습관이나 돌아볼 일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아닌 그 잘난 책 욕심을 내느라 책꽂이를 채워넣는 일의 반복 말이다. 아, 그런데 큰일이다. 어제 마침 친구에게 소개받은 젊은 작가 한 명이 있는데 그가 쓴 대표 소설의 소개를 보니 당장 책을 사서 읽어보고 싶다. 아직 다 못 읽어서 가름끈이 절반쯤에 끼워져 있는 책이 침대 맡에 세 권이나 있는데도 나는 또 새 책이 몹시 사고 싶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책에 딱히 유통 기한이 없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