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맹목적인 전화가 좋다.
어쩐 일이야?
그냥 해 봤어
나이가 들었나.. 가끔 별 거 아닌 일에 괜스레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다. 웬일로 걸려온 친구 녀석의 안부 전화에 괜히 들뜬 기분을 느끼며 요새 내가 좀 팍팍했나 싶기도 했다.
한낮에 전화벨이 울린다. 화면을 보니 오랜 친구의 이름이 떠 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일까 싶다. 결혼은 진작에 한 녀석이니 청첩장 얘기일 리는 없다. 얼마 전에 만났으니 새삼스러운 안부 인사일 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거나 pc방, 당구장, 영화관 따위에 가자는 전화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한낮에 그런 전화를 받아본 건 꽤나 한참 전의 일이다. 별 거 아니지만 30대 남자들 사이에서는 더이상 흔하지 않은 경우다.
그냥 해 봤어~ 뭐하냐?
뭐여 갑자기... 그러는 넌 뭐하냐?
뜻밖의 안부 인사를 받고 보니 잠시 할 말을 잃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바람도 쐴 겸 밖에 나가 쓸데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통화한다. 딱히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지만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자꾸 할 말이 생기긴 한다. 생각해 보니 각자 여자 친구 혹은 아내와는 시도 때도 없이 통화하면서 친구끼리는 뭐가 그리도 어려운지, 어쩌다 거는 전화라고 해봐야 술 한 잔 하자거나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는 정도에 그쳐왔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걸려온 친구의 전화는 역시 아무런 목적도 없는 나의 응대로 시답잖은 대화가 얼마 동안 오간 뒤에 끝났다. 길어야 10분이다. 아무리 농을 지껄이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는다 해도 남자들의 통화란 그 이상이 되면 서로에게 징그러워지는 것이다.
맹목적이었던 생활 투성이에서 점차 목적성 있는 시간들을 채워가는 일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과정 같았다.
어렸을 때는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었고, 서로의 집에서든 밖에서든 만나면 미리 정해놓은 놀거리 없이도 함께 할 게 정말 많았다. 그렇게 여렷이서 어울려 이거 하자, 저거 하자며 실컷 놀다가는 해질 무렵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날의 반복이야말로 유년 시절의 맹목적인 일상이었다. 그러다 점차 방과 후 학원이 늘어나며 친구들과의 오후 시간은 줄어들었고, 드디어 학원에서 해방이다 싶었던 때부터는 과제다 알바다 하면서 각자 삶의 목적에 충실한 어른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그렇게 학교와, 군대와, 직장에서 맹목적인 일상은 자취를 감추었다. 올바른 사회 구성원이 돼야 한다는 다소 추상적인 명제조차도 일단은 커다란 삶의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시험 성적을 위해, 국방의 의무를 위해, 생산성 증대를 위해 '나',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여야만 했다.
이처럼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말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목적성을 획득한 지침으로 자리잡았다. 해당 제목의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인 세상에서, 종교적으로든 비종교적으로든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목적들을 실현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받은 맹목적인 전화 한 통이 새삼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나 또한 어느 틈엔가 맹목적인 안부 전화는 삼가며 남들은 그저 잘 지내겠거니 여기면서 나만의 목적들을 신경쓰느라 바빴는데, 녀석은 무슨 바람이 불어 내게 전화를 걸었을까. '그냥' 했다고 하는데 더는 따질 이유도 없었다.
지하철을 타며, 걸어 다니며 가끔씩 친한 사람들에게 맹목적인 안부 전화나마 했던 시절을 떠올려 봤다. 아무 목적이 없었기에 별다른 기대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상대가 전화를 받든 안 받든, 설령 받았는데 몹시 바빴다한들 크게 상관없었던 기억이다. 자유로웠던 그 마음가짐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다.
이제 다시 가끔이라도 전화 버튼을 맹목적으로 눌러야겠다. 부모님에게도 좋고, 친구에게도 좋을 거다. 어느새 오직 애인에게만 향해있던 지극히 맹목적인 관심을 두루두루 늘려 볼 일이다. 상대가 어쩐(무슨) 일이냐고 묻거든, 그냥 이 한 마디면 되니까.
그냥 해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