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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Dec 03. 2020

20. 김치 담그기

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도전

한국에 살 땐 내가 이렇게 한식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물론 한국인이니까 기본적으로 한식을 먹긴 했지만

하루 한끼는 꼭 한식을 먹어야 해

라든지

김치가 꼭 필요해

같은 전제 조건은 없었다.

해외 여행을 다닐 때도 나는 한식없이도 잘 즐겼고

한국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해외 여행 가는 사람들이 이해가질 않았다.

외국에 나갔으면 외국 문화를 즐겨야지 굳이 한국인인걸 저렇게 티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해외 살이를 하면서 

나는 한국음식을 정말이지 열심히 해먹고 있다.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아서 매일같이 해 먹진 못해도

한국에서 먹는 것 못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잘 만들어 먹는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 가장 대견하게 여겨지는 건

김치를 스스로 만들어 먹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독일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대기업 김치를 사서 먹었다.

한국에서 자취할 때도 고향집에서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를 가져다 먹다가

결국엔 마트에서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혹은 인터넷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던 대기업 김치를 즐겨 먹었다.

9월의 배송이라 그랬는지

아님 너무 아껴 먹으려고 묵혀둬서 인지 

나는 갓 담은 김치를 좋아하는 편인데 

여기서는 갓 담은 김치를 사서 먹기가 힘들었다.

독일에서 배달 온 대기업 김치는 이미 신김치 상태로 도착했다.

신김치도 나름 매력이 있어 전도 부쳐 먹고 찌개도 끓여서 알차게 다 소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한국인이라면 냉장고에 김치 한통은 있어야 하는 건데...

결국 여기 저기 검색을 통해서 김치 만드는 법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우리집 김치는 젓갈을 넣지 않고 김치를 담궜고

어릴 땐 젓갈을 넣은 김치는 입에도 못대다가

그나마 바깥 음식에 적응하며 살면서 젓갈 김치도 조금씩 먹게 되었다.

요즘엔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인데 

그래도 젓갈의 향이 너무 짙은 김치는 잘 못 먹는다.

해외살이에서 젓갈을 구하기는 힘들기에

(그나마 피쉬소스나 엔초비는 있지만...)

어차피 난 젓갈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기에

최대한 단순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김치 레시피를 찾아봤다.

그리고 나름의 나만의 방식으로 첫번째 김치를 만들었다.

마트에 한국식 배추를 팔고 있었고

양념 재료로는 사과, 배, 양파, 생강, 마늘을 갈아서 넣었다.

굵은 소금도 팔기에 배추를 굵은 소금에 절이고 

물로 헹군 다음 간 재료와 고춧가루, 약간의 소금을 넣어서 김치를 버무렸다.

보기엔 엄청 간단해 보이지만 시간도 꽤 걸리고 

다 만들고 나서 뭔가 심심한 김치라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첫 김치가 탄생한 나에겐 역사적인 날이었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스웨덴 집에서 한국의 냄새, 한국의 맛이 난다.


첫 김치를 담궈서 칼국수를 해 먹었다.

갓 담은 김치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좀 숙성된 김치맛을 좋아하는 남편은 많이 먹진 않았지만

내가 김치를 담그는 것에 대해서 대견히 여겼다.

김치 냄새가 외국인한테 썩 유쾌하진 않은데

별로 타박하지 않고 내가 김치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묵묵히 지켜봐줬다.

남은 김치는 라면과 함께.

라면엔 김치가 정말 진리다.

스웨덴에는 '유럽용 라면'을 판다.

농심에서 파는 라면 중 신라면, 너구리 같은 브랜드를 유럽인 대상으로 만들어서 수출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먹는 라면보단 살짝 덜 매운?느낌의 라면이지만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배추로 김치를 두번 정도 담그다가 다른 재료를 응용하기도 했다.

배추 대신 양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여기선 한국식 배추를 구하는 것보다 양배추를 구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

양배추로 한번 만들어봤는데 배추보다 달큰했고

혹시 한국식 배추가 없으면 이렇게 만들어 먹어도 될 것 같다.

물론 배추로 만든 게 더 김치스럽지만 대용품으로 나쁘지 않은 양배추 김치.

부추가 없어서 차이브를 처음 사서 넣어 봤는데 꽤나 그럴싸했다.

내가 김치랑 라면의 조합으로 먹는 걸 몇 번 봤던 남편은 

자기도 같이 먹어보겠다고 해서 양배추 김치랑 라면을 남편과 같이 먹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담은 김치.

항상 양을 재고 만들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2통씩 나온다.

그런데 통의 크기가 많이 크지 않은 편이라 

2통 만들면 들인 시간과 공에 비해 엄청 빨리 소진된다. 아쉽다.

수제비를 만들어서 겉절이처럼 담가 먹기도 하고 

이번엔 좀 묵혀서 남편의 입맛에도 맞길 바라면서 남은 2통은 냉장고에 보관중이다.


다른 재료와 달리 고춧가루는 정말정말 구하기 힘들어서 

아시안마트를 가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시안마트가 있는 센트럴까지 나가긴 싫고...

이제껏 해먹던 한국에서 가져온 한국산 고춧가루가 거의 떨어져서 

뭔가 마음이 허전하다. 

자주 못 만들어 먹어도 한국 재료가 있어야 든든한데...

고춧가루 파는 곳을 물색해서 허전한 곳을 채워야 할 듯 싶다.


스웨덴에 살면서 한국음식이 그리우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이리저리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나만의 음식이 탄생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든 비슷한 음식을 찾아서 해먹기도 한다.

그런데... 식당에서 먹던, 한국에서 흔하게 먹던 그 맛을 재현하기는 여간 힘들다.

자취할 때보다 더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는 스웨덴에서의 생활.

없으면 내가 만들어 먹어야 하는 자급자족 시스템을 철저히 실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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