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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Mar 18. 2021

24. 나이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천천히, 그리고 한 템포 쉬어가는 지금...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보기 시작한 채널, '오느른'

MBC피디님이 우연히 들린 김제 어느 시골의 폐가를 사서 고쳐서 살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뻔한 내용이라 단정짓고 알고리즘으로 떠도 한동안 보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이것저것 다 보기 시작한 요즘...

결국은 그 채널까지 구독하며 정주행을 했다.

32살에 어쩌다 보니 귀농, 아니 그냥 귀촌을 하게 된 피디님...

그냥 보기엔 마냥 쾌활하시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이 녹록지 않아 

쉬어가고 싶은 마음에 질러버린, 뭔가 대책없는 무모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그냥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무게가 느껴졌다.

서울살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은 아예 김제로 거처를 옮겨서 사시지만 여전히 MBC피디라는 직함을 달고 일하고 계신다.


아무 생각없이 시골풍경에 넋 놓고 보다가 몇몇 자막에서 뭉클, 뭔가 동질감을 얹기도 한다.

비슷한 나이대라서 그렇기도 하고 

나도 어찌보면 쉼표를 제대로 찍고 싶어서

스웨덴으로 거처를 옮겨 왔기도 하고...


비행기타고 날아온 지 만으로 6개월이 지났다.

사실 거처를 옮길 작정으로 왔지만 한국에 수시로 드나들 계획이었어서

마음의 준비를 그렇게 단단히 하진 못했던 것 같다.

살다가 필요한 거, 혹은 볼일 볼 땐 한국이 익숙하니까 수시로 한국 갈 요량으로 

제대로 뭔가 준비없이 그냥 짐만 싸서 대충 온 느낌...

그런데 지금의 코로나 시국에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약없는 한국행... 지금은 그냥 버티기로 살아가는 중이다.


일을 시작하면서 한번도 이렇게 장기적으로 쉬어 본 적이 없어서 

지금의 그냥 '쉼'이 너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남편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도 된다고 하지만

재택근무 중인 남편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보면서

나는 마냥 놀려고 하니까 그냥...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하는 것도 아니라

스웨덴어는 완전완전 제자리걸음... 

유튜브, 넷플릭스... 요즘엔 닌텐도에 빠져서 그냥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가기만 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먹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남편이 원하는 음식과 내가 먹고 싶은 한식과 밸런스를 맞춰가며 해먹는 중이다.

배달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피자, 햄버거 정도라

거의 집밥으로 해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먹고 나서 설거지까지ㅠㅠ)

그래도 여기저기서 어렵사리 공수한 한국재료들로 한식을 해먹을 수 있는 것에 

다행이다 느낀다.

(매일같이 해 먹는 사소한 일상은 블로그에 포스팅 중이라 일일이 열거가 힘들다ㅠㅠ)


20대의 나는 나의 30대는 어떤 모습일까 많이 궁금했는데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요즘 물음표가 자꾸만 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여기까지 와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직도 물음표...

무엇을 꼭 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20대의 내가 가슴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포부를 가졌다면

지금의 나는 그냥 저냥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선 유난히 혹독한 나이에 대한 강박.

그나마 스웨덴에선 나이에 대한 경계가 한국에서 보단 모호해서

30대의 내가 조금 더 이것저것 해볼만한 기회가 열려 있다는 거.

아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나이의 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지금의 이 아무것도 안함을 즐기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올 1월에 신청한 나의 PN은 아직 발급되지 않았다.

PN이라는 게 있어야 여기서 은행 계좌를 열고

외국인 전용 스웨덴어 강좌를 신청할 수 있고

(이걸 빌미로 스웨덴어 공부를 미루는 중이다...참 좋은 핑계) 

병원을 이용할 때 불편함이 없는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지금은 그냥 여행객과 별 다를바없는 

그냥 비자만 더 길어진 상태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스웨덴의 느림느림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이런 느림의 미학을 바탕으로

나이의 강박도 적은 게 아닐까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본다.


그리고 뜬금없지만 

스웨덴에는 생각만큼 카페가 많지 않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카페보단 집에서 즐기는 지 

동네별로 카페가 있지 않고

띄엄띄엄있다.

물론 센트럴로 나갈 수록 많긴 하지만

우리 동네엔 없다... 윗동네, 옆동네로 가야만 볼 수 있는 조그만 동네 카페...

그래서 결국 일리 캡슐커피머신을 사고, 와플기계를 샀다.

집에서 직접 해먹으려고.

진짜 홈카페를 차리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장만해 나가고 있다...

느림을 받아들이고 

나이를 잊으며 

그냥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기 스웨덴에서...

캡슐머신을 처음 써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메리카노 캡슐을 넣고 에스프레소를 뽑은... 그래서 물을 탔더니 정말 묽어졌다ㅠㅠ

이런 시행착오 속에서 캡슐머신을 적응중이다.

참... 세상엔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평생 공부한다고 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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