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고미 Apr 17. 2021

25. 느리게 찾아 오는 스웨덴의 봄

느리다 느리다 계절의 변화도 늦어지는 이 곳은 스웨덴

빠름 빠름 한국에서 살다가

느림 느림 스웨덴에서 지내는 생활은 더디게만 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달력 넘어가는 속도를 보면 또 안 그런것 같고...


스웨덴은 한국에 비해서

택배도

서비스도

서류발급도

물건배달도

그리고 계절의 변화 마저도...

거의 모든 게 한국에 비해서 늦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빠른 변화 속에서

빨리 빨리 진행되는 나라에서 살다가 온 것일까?

과연 빠름과 늦음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살다가 이렇게 나를 많이,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경험들은

이 곳에서 살면서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의 봄을 서서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언제 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냐고 

애꿎은 남편을 닦달했다.

스웨덴 사람이 보는 스웨덴과 한국 사람이 보는 스웨덴은 다를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거의 4계절을 나 본 남편도 한국의 빠름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스웨덴의 느림에 대해 괜히 나한테 사과를 한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어디다가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걸까... 

느림의 미학이 아니라

이제는 기다림의 짜증으로 바뀌는 시점인 것 같다.

뭐만 하면 다 느리고, 

용기 내서 연락을 취하면 자꾸만 기다리라는 답변에

이제는 좀 지쳤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뾰족히 없어서 그냥 또 마냥 기다린다. 

이렇게 되풀이 되는 이 곳에서 삶...


한국에선 3월이면 날씨가 풀리고

벚꽃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옷가짐도 가볍게 바뀌기 시작한다.

올해는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코로나때문에 바깥 놀이가 조금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봄의 기운은

여기 스웨덴보다 훨씬 빠른 것 같다.

그립다... 한국의 벚꽃이, 푸르름이!


스웨덴에선

4월 중순이 지난 지금에야 봄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그런 시기가 된 것 같다.

아직도 봄이라고 부르기 살짝 부끄러운 듯한 날씨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나긴 겨울을 지나 이젠 뭔가 달라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날씨 좋은 날의 스웨덴의 하늘은 

그간의 매서운 찬바람이 용서될 만큼 예쁘고 

주변에 자연 경관이 뭔가 탁 트이는 느낌을 준다.

내가 살고 있는 스톡홀름은 스웨덴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도인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우선 인구 밀도가 다르고 인구 수가 달라서 이기도 하겠지만

여긴 자연을 그대로 두는 느낌이다... 개발보단 그냥 자연 그대로~

요즘 스톡홀름도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인 곳이 예전보단 눈에 띄게 많아졌지만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그런 공사가 진행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도시들에 비하면 여긴 주변에 숲도 많고 호수도 있고 

뭔가 한국의 시골스런 풍경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아직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잔디는 푸릇푸릇 솟아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앙증맞은 조그만 풀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무들도 멀리서 보면 앙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뭇가지 끝에서 뭔가 초록이들이 빼꼼히 나오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벚꽃이 다 지어가는 한국에 비해 

확연히 더딘 속도이지만 

이렇게 잎사귀들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이제서야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4월 초 주말은 부활절 연휴기간이었다.

한국에 설날, 추석이 큰 명절이듯이

스웨덴은 크리스마스, 그리고 부활절이 큰 명절 같은 느낌이다.

부활절인 4월 첫째주 일요일을 기준으로

금, 토, 일, 월 나흘간 연달아 빨간 날인 이 곳.

올해는 코로나로 모이지 말라는 정부의 권고가 있었지만

(스웨덴 정부는 하지 말라는 강력한 대응이 없이 항상 권고만 하는 중이다...)

그래서 평소보단 나름 조용했던(?) 부활절 연휴.

남편과 나는 단 둘이서 하루종일 음식도 해먹고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보냈다.

그중 인상 깊었던 호숫가 산책.


지도 상으로 꽤 멀어서 걸어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부활절 연휴기간 날씨가 꽤나 좋아서 걸어가기에 안성 맞춤이었다.

물론 강풍이 불어 마스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콧물을 훌쩍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가로운 호숫가의 풍경은 이마저도 뭔가 평화롭고 심신의 안정을 찾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꾸만 산으로 들로 나가서 힐링하고 싶어하는 가보다.


스웨덴 오기 전에 내가 살던 도시는 부산이었다.

바다가 인접해 있어서 지하철만 타도 바다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부산에서 근 10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바다가 너무 익숙해서 나중엔 자주 가지 않게 되더라고...

오히려 부산 토박이들이 부산의 관광지를 안가봤다거나

바다를 잘 보러 가지 않는 그런 것과 비슷하게...

그런데 지금 스톡홀름에 와있으니

부산의 그 바다 풍경이 그립다.


사람이 드물었던 겨울 바다도 그립고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여름 바다도 그립고

적당한 바람과 파도가 치는 봄, 가을의 바다도 뭔가 아련하다.


이래서 사람은 있을 땐 잘 모르고

없어 봐야 소중한 걸, 아쉬운 걸 느끼나보다. 어리석게도...



이름 모를 풀꽃들이 여기 저기 피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자꾸만 주저 앉게 된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풀꽃이 아니라

자꾸만 빤히 가까이서 바라봐 주고 싶은 그런 꽃들...

단, 만지지는 않는다. 그냥 나의 철칙?

살짝 거리를 두고 빤히 보다가 그냥 내 갈 길을 가는...

가면서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되는 그런 꽃과 나의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넌 너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예쁘게 너만의 색을 내렴!'

약간 이런 오글거리는 멘트를 입 밖으로 내진 않더라도

마음 속으로 되뇌이게 된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쉽고 그래서

그나마 커피를 사먹을 수 있는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널다란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멀리 보이는 드라이브스루 맥도날드와 우리가 산 커피컵을 인증샷으로 남기며.

오래 걷다보면 허기가 져서 분명 집에 가서 또 먹어 댈 것을 우리는 알기에

중간 컵 사이즈로 하나 시켜서 남편과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한국에선 카페도 여기저기 많고 그래서 맥도날드에서 굳이 커피를 잘 사시진 않았는데

스웨덴에선 센트럴에 나가지 않고는

카페나 빵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커피를 이렇게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된다.

근데 생각보다 맥도날도 커피도 나름 괜찮다!


이렇게 봄이 오나 싶었다가

4월 둘째주... 하루 날 잡고 눈보라가 쳤다.

잠깐 오고 말겠지 했는데 

몇시간이고 계속 내리치던 눈보라... 하루 날씨가 미쳤었나보다 싶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은 이런 눈이나 서리가 내리곤 했다.

4월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또 한 번 실감했다.

아... 나 북유럽에 살고 있구나...

남편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스웨덴의 두 번째 겨울이라고 말한다.

대체 겨울이 몇 번이나 오는 건지...


기나긴 어둠 속에서 겨울을 나면서 

정말 몸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나의 첫 북유럽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힘들었다. 잘 버텼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둠이 주는 그 우울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내가 이렇게 해가 나는 것에 연연하고 살았던가.

햇빛에 이렇게 진심일 수가 없다.


왜 유럽사람들이 해만 나면 훌렁훌렁 벗고 드러 눕는지

이제서야 완연히 이해가 되고 

해가 없으면 인간이 왜 우울해지는지

왜 무기력해지는지 몸소 깨달았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

이젠 낮의 길이가 꽤 길어져 저녁 8시 정도가 되면 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그런 밤낮의 밸런스를 찾게 되었다.

곧 여름이 되면 밤이 오히려 그리워지려나... 아직은 모르겠지만

겨울의 추위와 어둠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이름 모를 풀꽃들에게 봄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한국에서도 많이 보던 익숙한 봄꽃에서 느끼는 친숙함이 훨씬 반갑다.

바로 개나리!

한국인이라 스웨덴의 문화나, 서비스나 자연까지도 

자꾸만 한국과 비교를 한다.

나는 대부분의 비교는 좀 부정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비교를 하다 보면 자꾸만 좋고 나쁘고를 따지게 되는 것 같다.

열등감을 갖거나 우월의식을 갖게 되는 것도 그렇고...)

모든 걸 겉으로 뿜어 내지 않더라도

내 마음 속으로나마 한국과 비슷한 점을 스웨덴에서 찾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안녕? 너 여기에서도 살고 있었구나?

오래 알고 지내다가 정말 오랜 만에 만나서 반가운 친구처럼

개나리를 보고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최근에 걷다가 발견한 것은 바로 쑥!

아직도 확신을 완전히 갖진 못했는데

쑥과 같은 이 식물을 발견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손으로 만지지 않겠다는 나의 철칙을 깨고

한 줄기 따서 사람이 드문 곳으로 가서 마스크를 살포시 내리고 냄새를 킁킁 맡아보기도 했다.

쑥 그 특유의 향이 너무나 그리웠다.

한국이었으면 분명 쑥과 관련된 디저트나 떡을 사먹었을 나인데...

한국의 봄나물이 너무 그리우던 차에 만난 이것

그런데 냄새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맞았을까?

막상 맞았다고 해도 차가 다니는 길에서 자라는 것들이라 

섣불리 먹을 생각을 하진 못하겠지만

개나리와 마찬가지로 그냥 한국에서 나는 것들과 같은 종들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혼자가 아닌 느낌이 들어 위안이 된다.


스웨덴의 봄은 느리게 느리게 다가 오는 중이고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계절이라

더 찬란하고 더 아름답고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입 밖으로 소리내기만 해도 설레는 그 단어, 봄!

(한국말이 참으로 예쁘다. 이렇게 좋은 우리말을 여기선 실컷 쓰기 힘들어 아쉽다...

그래서 글로나마 풀려고 블로그나 브런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24. 나이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