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고미 Jan 09. 2022

26. 두 번째 새해 in Sweden

오랜만에 전하는 스웨덴의 일상. 그간의 변화와 스웨덴어 공부의 시작!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은 브런치...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땐 의욕이 넘쳤는데

블로그와 같이 하면서 조금씩 소홀해지고 스웨덴어 공부를 하게 되면서 점점 더 멀어진 거 같아서 

미안하고 아쉽고 그런 나만의 공간이기도 했다.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봐주지 않더라도 나는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았는데... 

변명아닌 변명을 하자면 2021년 말미에 그래도 마무리로 글을 남기고 싶어서 

폰으로 브런치어플을 깔아서 한참을 모바일 자판을 두들기고 사진을 편집해서 올리려는데

밤새 업로드가 안되는 거다. 몇 십번은 시도한 거 같은데 결국은 업로드 실패로 글을 남기는 걸 포기했다. 이렇게 귀차니즘이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이겨먹었다...


그리고 2022년이 되어서야 다시금 꺼내 보는 나의 소중한 공간, 브런치!

작년 봄 이후로 업로드가 안되었으니까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나의 그간의 일상들을...


항상 스웨덴이 느리다고 불평했는데

그중 가장 느렸던 행정업무처리.

빠름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에게 스웨덴은 정말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도 같은 퍼스널넘버(PN)를 3개월 정도 걸려서 받았다.


그리고 나서 내가 고민했던 건 스웨덴어 공부.

어찌되었든 스웨덴에 살면서 스웨덴어를 모르고 사는 건 너무나도 불편했기에

조바심 내지 않고 조금씩 공부해보려고 오랜 고민끝에 SFI를 신청했다.

SFI = Swedish For Immigrants

이민자들을 위한 스웨덴어를 알려주는 곳이다.

전액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따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공짜로 공부를 할 수 있다.


워낙 이민자가 많은 나라라서 그런지 스웨덴어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싶었다.

나도 그 중 하나라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5월 중순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5월 말에 내가 신청한 코뮨에서 답변을 받았다. 

5월의 마지막날, 수업 들으러 오라고.

신청방법은 온라인, 오프라인 2가지가 있지만 코로나 상황에는 온라인만 열어두는 것 같았다.


SFI에서는 반을 A B C D로 나눈다.

자국에서 고등학교 졸업까지 마친 사람이면 바로 C부터 시작하게 된다.

대부분은 C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C만 별개로 C begin, C+로 나뉜다.

내가 처음 간 곳은 C begin

우리가 영어공부할 때 abcd부터 하듯이 나도 알파벳처럼 차근차근 배우는 줄 알았는데

아니였다...

바로 문장을 던지고 받고 그냥 스웨덴어를 바로 쓰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느낀 건...

살아남던지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던지, 둘 중 하나였다.

첫날 내 담당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처음엔 당연히 안들리고 이해도 안되겠지만 계속 버텨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될 거다." 였다.

야속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그 선생님이 신뢰가 가서 C begin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거 같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2~3개월 정도 차이가 난다.)과의 수준차이와 몇몇 냉담한 태도에 상처 받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보면 그때의 내가 버텨준 것에 감사하다.

수업하고 나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지만

남편의 격려에 위안을 받으면서

다른 건 몰라도 복습은 꾸준히 하자고 마음먹었기에

복습을 위주로 공부를 해나갔다.

그럴 때 쌉싸름한 커피는 필수!


6월에 접어들면서 스웨덴은 짦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간다.

에어컨시설이 보편화되지 않은 곳이라 

가끔씩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되면

집 밖 숲으로 산책을 나가면서 바람을 쐬기도 했다.

모기도 은근히 많아서 많이 물리기도 하지만 스웨덴은 숲이 많아서 여름에 좋은 도피처가 되었다.

새로 시작한 SFI에서도 첫 주에는 코로나로 인해 

수업도 일주일에 5번->3번으로 줄이고

온라인 1일, 오프라인 2일로 운영된다고 했었다.(별 의미는 없어 보였지만...)

그러다 백신을 맞기 시작하면서 온라인 수업은 사라지고 오롯이 오프라인 주4일로 바뀌었다.

고령층부터 백신을 맞기 시작해서 나와 나의 남편의 나이대까지 내려오기까지 몇 달은 걸렸다.

그래도 한국보다 한 한달정도 빨랐던 거 같다.

남편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6월에 1차, 나는 7월에 1차 백신을 맞았다.

백신 후유증도 많다고 해서 걱정이 가득했지만 무사히 우리 둘다 2차까지 접종을 완료했다.

당시 백신을 맞았던 가장 큰 이유는 언제가 될지 모를 한국행을 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여름의 스웨덴은 덥기도 하지만(한국만큼 숨막힐 더위는 아니다.)

푸르른 자연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정말 아름다웠다.

길에서 새소리도 정말 많이 나고 그래서 길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랑 통화하면

친구들이 항상 '너 어디에서 통화하길래 새소리가 많이 나?'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냥 길이었다:)

버티기로 시간을 보냈던 SFI C begin에서 여름을 맞이하여

원래 선생님들은 휴가를 가고 '여름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선생님들이 오셔서 5주간 맡아 주셨다.

코뮨마다 운영방식이 다른 거 같은데 우리 코뮨에선 정기적인 방학이 없다.

그냥 다니다가 사정이 생기거나 자체 방학이 필요하다 싶으면 담당 선생님께 이메일로 설명하고

몇일부터 몇일까지 학교 못나온다고 미리 말해두면 짤리지 않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무단결석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제명된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5주 동안 나는 방학이 없다는 사실에 지쳐가던 중 2주 정도 자체 방학의 시기를 가졌다.


스톡홀름에서 백신도 맞았고 후유증으로 하루 이틀은 집에서 보내야 했고

예테보리로 짧게 나마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SFI로 복귀했는데 여름선생님 두 분 중 한 분이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나는 이제 더이상 C begin이 아니라며 C+로 진급시켜 주셨다.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과연 내가 레벨업할 정도의 실력인가 의구심이 많이 들었었다.

2달만에 C+로 올라갔다.


나는 평일 오전반을 듣는데 이 반만 그런지, 아님 우리 코뮨만의 방식인지

C+와 D 학생들이 혼재되어 있는 그런 반이었다.

누가 C+이고 누가 D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프리토킹을 하다가 넌지시 물어보면

자신의 레벨을 커밍아웃했다.(굳이 묻지 않더라도 말을 잘한다 싶으면 D이긴 했다.)

C+에서의 첫날의 충격...

SFI를 처음 시작했던 날과의 충격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기선 100% 스웨덴어로 수업하기에 그건 어느 정도 감안했지만

여기 학생들은 너무 말도 잘하고 선생님과의 주고 받는 대화 수준이 내가 기존에 있었던 반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과제 수준도...

첫날은 어버버 이름 소개하는데 그쳤고 

내가 알아듣는 건 20%도 안되었던 거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글짓기를 하던 중 수업시간이 거의 끝나가서 너무 집에 가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몇몇 학생들이 어떻게 하고 집에 가는 지 살펴보다가 글짓기 종이를 제출하지 않고 집에 가서 써오겠다는 학생이 있길래 나도 그냥 주섬주섬 내 물건과 종이를 챙겨서 집에 가려고 했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더니 처음엔 스웨덴어로 '나 오늘 니가 적은 글을 보고 싶은데 내고 가.'라고 하셨고(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당시엔 못 알아들었다.) 내가 못알아들으니까 다시 영어로 말해주셨다. 그런데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어서 'No'라고 하고 그냥 다 싸들고 집에 왔던...

지금 생각하면 참 민망한 상황이지만 당시에 나는 내 스웨덴어 실력이 너무 부끄럽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거 같다. 

두 분의 선생님이 일주일동안 들어오시는 데 다른 한분도 말이 참 빨랐어서 따라가기 힘들었다.

이렇게 여기서 4개월을 공부했구나 벌써... 한 2개월정도 지나고 나서야 대부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거 같다. 물론 계속 꾸준히 다니기만 한 건 아니였다. 중간에 1주일씩 자체 방학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너무 힘들었으니까:(

가을로 접어들면서 하늘빛이 분홍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해가 점점 빨리 지니까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즐겼던 거 같다.

스웨덴은 참 아름답다. 자연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게 된 시간들이었다.

내가 가장 부끄럽고 자신없는 시간.

대본을 짜서 앞에 나가서 간단한 연극을 해야 하는데... 

이게 난 너무 싫었다. 지금도 싫고...

혼자 공부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혼자 읽고 쓰는 실력에 비해 

말하고 듣는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중간 중간 선생님과의 대화의 기회가 생기면 선생님은 꼭 그렇게 피드백해주셨다.

쓰기 읽기에 비해서 듣기 말하기가 많이 부족하다고.


스웨덴어 공부를 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다가

드디어 11월 초 한국행을 결정하고 준비했다.

당시에는 백신을 2차 접종까지 마치고 2주 후부턴 자가격리가 면제였다.

남편과 나는 서류를 한뭉치씩 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아직 없어서

우린 핀란드를 경유해서 가야만 했다.

(항공사마다 다른데 프랑스, 독일 등등 다른 국가를 거치는 방법도 있다.)

스웨덴은 마스크를 쓰는 규제가 없어서(마스크는 항상 권고!)

여전히 사람들은 자유롭게 마스크없이 다닌다.

나는 혼자서 열심히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꿈같은 시간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제 2의 고향, 부산.

남편도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꼽으라면 부산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데이트를 했던 곳이기도 하고

둘만의 추억이 많기도 한 이 곳.

나는 대학교 이후로 계속 부산에서 살았어서 그런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부산이 꼭 나의 고향같은 느낌이다.

유년기 고향과는 다른 미성숙한 성인시절부터 가장 호되게 사회생활을 보냈던 애증의 도시!

스웨덴으로 돌아오기 전 3일은 서울에서 보냈다.

우리 숙소가 인사동이었어서 인사동을 매일 지나다녔는데

나도 덩달아 외국인이 된 기분으로 다녔던 거 같다.

11월의 스웨덴은 어둡다.

오후 4시경 스웨덴에 도착했던 거 같은데 벌써 해질녘에 밤이 되었다.

너무나 피곤했던 우리는 공항에서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집에 왔는데

정말정말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꿈같았던 순간이었다.

어둑한 스웨덴에서 시간이 한동안 낯설었던...


그리고 12월

스톡홀름에 첫 눈이 내렸다.

북유럽하면 눈이 항상 많이 올 것 같지만 그건 북유럽에서도 북쪽 지역들에 해당하는 거 같다.

동지에 가까워지면 아예 해가 뜨지 않는 날도 있다고 하던데 

스톡홀름은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다.

아무튼 눈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겨울느낌이 났던, 그리고 얼굴을 아리는 칼바람이 불었던 12월

한국행을 핑계로 4주를 쉬었다.

오랜만에 SFI를 갔더니 스웨덴어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다시 나의 페이스를 찾아서 공부를 해나가다가

결국 미루고만 싶었던 진급시험을 보게 되었다.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고 선생님은 내가 준비되었다며 시험을 봐야 한다고 했다.

결국은 선생님의 말처럼 한달에 한번씩 주어지는 '국가시험'을 치게 되었다.

이름이 너무 거창하지만 SFI가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그런 거 같다.

마냥 공짜로 학생들을 제자리 걸음하면서 가르치기만 할 수는 없으니 때가 되었다 싶으면 학생들을 진급 또는 졸업시키는 거 같다. 

12월 국가시험을 치렀고 약 1주일 후 결과에 따라서 나는 진급이 되었다. 

2022년 기준으로 나는 D반이 되었다.

어차피 이 곳에선 반이 다른 곳으로 갈리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은 공간에서 같은 선생님과 수업을 받지만 조금의 변화가 있다면 내가 알아듣고 대답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거?

아직도 스웨덴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는 없지만 더듬더듬 대답하고 내가 원하는 걸 말하게 된 거 같다. 그리고 구글 번역기와 스웨덴어 사전을 검색하는 스킬이 늘었다.


스웨덴의 큰 연휴 중 하나는 크리스마스연휴

24일, 26일도 여기선 빨간 날이다.

우리나라 설날, 추석과 같은 개념인 것 같다.

공식적인 연휴는 24~26일 3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긴 휴가를 써서 새해까지 쉬기도 한다.

12월 31일, 1월 1일도 빨간 날이고 1월 6일도 빨간 날이다. 종교적인 이유가 있던데 

스웨덴은 공식적인 기독교 국가는 아니지만 기독교에 관련된 연휴가 종종 있다. 

2022년 새해가 밝았고

스톡홀름에는 지금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눈이 왔다가 녹았다가 반복되는 중인데 녹을만하면 또 내리고 또 내리고 한다.

눈이 녹으면서 검게 변한 길이나 휑한 나무가 조금 스산해보기이도 했는데

오히려 눈이 내려서 하얗게 뒤덮히면 더 예쁘고 더 겨울답고 그런 거 같다.

12월에 비해서 1월의 겨울은 조금 더 '낮'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기온은 더 떨어진 거 같지만 아마 2월까지는 그럴 것 같다.

스웨덴의 봄은 작년처럼 또 천천히 오겠지만

이번 겨울이 두 번째라 그런지 처음처럼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거 같다.


새해 계획을 이젠 거창하게 세우지 않는다.

매년 다짐하는 것들이 비슷하기도 하고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사항들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올해는 브런치와 블로그에 균형을 이루면서 글을 남기는 것.

그리고 SFI를 졸업하는 것. 

내 스스로 스웨덴어에 자신감을 갖고 구사하는 것.

이정도는 이루고 싶은 올해의 소망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뭔가 더 희망적일 것 같은, 더 나아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Gott Nytt År!(Happy New Year:))

작가의 이전글 25. 느리게 찾아 오는 스웨덴의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