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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May 27. 2022

29. 선물이라는 게

한국과 스웨덴 그 언저리에서 문화적 차이로 고민이 많다.

5월, 한국에선 이것저것 챙길 기념일(?) 같은 게 많은 그런 시기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1인 가구로 살았어서 

가족이든 친구들 그렇게 크게 막 잘 챙기면서 살진 않았지만(내가 본 '나'는...)

그래도 나는 내가 뭔가 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을 때는 아깝다는 생각 없이 주려고 했다.

한국에 살 때는 한국만 이런건가 싶을 정도로 

한국은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 사회라고 생각했다.

챙겨주고 챙김받고 

그게 그렇게 나쁜 문화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그 균형이 깨지거나, 

혹은 서로가 생각하는 선물의 '가치'가 다를 때는 

많은 갈등과 균열을 일으킨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지금

스웨덴의 문화 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공부하는 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사회를 배우고 있다.

완벽하게 현지인들과 같은 사고방식대로 살지는 못하겠지만

최근 내 머릿 속에서 자꾸만 맴맴 도는 '선물'에 대한 사고방식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맞물려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한국에선 결혼식, 돌잔치, 심지어 장례식까지도 돈을 주고 받는다.

돈으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한다.

초대를 받으면 돈을 낼 생각을 먼저 떠올린다.

진정한 축하의 의미는 사라진 거 같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와서 축하만해주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아마 결혼식같은 건 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결혼식같은 식문화에 있어서 들이는 돈과 받을 돈은 중요한 사회적 문화로 자리잡은 듯하다.

나는 그런 문화에 반감이 많았고 

지금도 내가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은,

올리지 않은 것에 이견이 없다.

식뿐만 아니라 생일, 명절, 어린이날, 어버이날, 크리스마스 등등

많은 기념일(?)들이 연중행사로 남아있다.

이럴 때 우린 또 돈을 주고 받는다.

주고 싶어서 주는 경우도 있지만 돈을 주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된 거 같은 지금이

너무 씁쓸하고 불편하다.

'돈이 다냐, 돈이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서 돈을 받으면 좋아한다.

돈이 아니라도 무언가 선물이 오가야 마음이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선물의 개념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선물은

내가 요구해서 받는 거보다 주고자 하는 사람이 아깝지 않게 자발적으로 주는 게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선물'을 하려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내 돈을 아깝지 않게 썼다.

(나로부터 무언가 받는 게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들을 생각하고 아낀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고작 이거 뿐?' 혹은 '이게 다야?'라는 반응이 피드백처럼 따라오면

뭔가 내가 크게 잘못했거나 돈을 허투루 써버린 것만 같은 자괴감이 따라오기도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에서

나는 스웨덴 가족들과 새로운 국적의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 받는 방식을 

종종 바라 볼 때가 있다.

여기선 절대 '돈'을 주고 받으면서 선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일종의 금융거래겠지.

선물은 그냥 간단한 '카드'나 주고 싶은 '물건' 혹은 '음식'이 되는 거 같다.

가격도 생각보다 소소한 것들이 선물이 되기도 한다.

딱 서로 부담주지 않을 선인 거 같다.

난 스웨덴에 살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삶, 그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거 같다.

몇몇 친구들은 네가 스웨덴에 살면서 까지 한국을 어떻게 다 신경쓰냐고 하는데

아예 신경을 안쓰고 살기엔 마음이 불편하고

일일이 다 챙기기엔 버겁다. 솔직히...

아무도 내가 스웨덴에서 경험하고 있는 이 상황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는 그들을 이해해야 하고 챙겨야 하고 그게 한번씩 울컥하더라... 나도 인간인지라

스웨덴에서 살면서 한국으로부터 보낸 택배를 몇 번 받았다.

대부분 내가 원하는 물건들이 있어서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하나뿐인 오빠는 부탁하기 미안할 정도로 본인 식구들 챙기랴 일하랴 바쁘고

부모님은 택배보내는 방법 설명하는 거부터 시작해서 설명할 것들이 많아서 부탁하기 힘들고

그나마 친구들은 따로 설명이 많이 필요없고 그냥 시간만 되면 흔쾌히 잘 들어줬다.

한번도 '안된다' 한 적 없이, 고맙게도.

내가 부탁한 물건 외에도 

친구들은 자기들이 쓴 손편지나

나에게 주고 싶은 것들을 같이 넣어서 보내주었다.

잊지 못할 고마운 선물들...

나는 지금 한국이 아니라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잘 챙겨주진 못하지만

내가 정말 주고 싶은 순간이 생기면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챙겨주기도 했고

가족들에게도 최대한 내 기준에서 챙기려고 했는데

그게 기준에 못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나보다.

'무슨 날인데 왜 선물은 안주지?' 이렇게 생각했나보다.

연락받고 티는 안내려고 했지만 사실 마음이 안좋았고 놀랐다.

아, 나는 선물을 당연히 줘야 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선물을 당연하게 받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나는 당연히 줘야 하는 이 관계가 뭐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달라니까 주고 싶지 않는 마음도 생기더라. 참... 난 청개구리 심보가 있거든.

해외에서 살다보니 한국에 갈 때 선물을 뭘 사가야 하나 고민도 있다.

아니 해외에 살기 전에도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귀국하면

몇몇 사람들은 '선물 안 사왔어?' 대놓고 물었다.

아무리 농담이 섞였더라도 이건 정말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었다.

나 여행가는데, 나 여기 스웨덴 오는데 보태준 거 없잖아. 

쏘아 붙이고 싶다가도

그냥 분란이 생기는 게 싫어서 웃으며 넘기거나 못 들은 척 넘겼다.

기브 앤 테이크

주고 받는 문화가 균형을 이루면 참 좋겠지만

살다보니 생각보다 받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이 있고

주는 것에 행복을 느껴서 그냥 주는 게 좋은 사람이 있더라.

그런데 내가 느낀 건

상대방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선에서 주거나 받는 게 가장 좋은 거 같다.

그런데 또 그게 제일 어렵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도

내 기준에선

내가 누군가에서 '선물'을 한다는 건

내가 돌려 받지 않아도 아깝지 않을 선에서 선물을 한다.

사회생활하면서 낸 축의금, 부의금 등 한번도 내가 돌려 받을 거란 생각을 하고 준 적은 없다.

그냥 나에겐 돌아오지 않을, 줘야 해서 주는 그런 돈이었다.

선물도 내가 주고 싶을 때,

남의 집에 가면서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니라는 가르침 덕분에

뭐라도 하나 사서 가려는 그 생각으로 산 거지 

그걸 돌려 받을 생각으로 사서 간 적은 없다.

어디까지나 이건 내 생각이고...

한국에 몇 안 남은 나와 연결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지 몰라 답답하다.

참... 

사람마다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그리고 난 한번씩 생각이 참 많다. 쓸데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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