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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김치 담그기

냉장고에 김치가 있어야 마음 편한 한국인의 해외살이

by 라고미

한국에선 워낙 김치를 흔하게 먹었어서 그랬는지

내가 꼭 김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인 줄 모르고 살았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한국음식을 싸서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외살이 3년차.

김치는 필수다.

한식도 꼭 필요하다.


이상하게 여행하는 마음으로 해외에 다닐 땐 한국음식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아예 살러 온다는 마음으로 여길 온 순간부터

나는 한식재료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고

한식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겨 버렸다.

한동안은 스웨덴에 사니까 스웨덴 음식을 자주 접하고 먹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안되겠다...

뼛속까지 난 한국인이었나보다...


스톡홀름에서 한국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갔다.

싸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되도록 현지에서 구했다.

독일엔 한국마트가 꽤 많고 유럽까지는 배송이 가능했다.(단 배송비는 좀 나간다...)

정말 스웨덴에서 구할 수 없는 게 독일에 있는 한국마트에 있으면 일년에 두어번씩 주문을 하기도 했다.


스톡홀름 내에선 한국음식만 취급하는 작은 구멍가게같은 식료품점이 딱 1곳 있다.

누군가의 리뷰에서 이 곳을 '스톡홀름에 사는 한국인들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하셨는데

정말 딱이다. 고마운 곳이다.

그리고 한국음식들을 같이 파는 여러 아시안 슈퍼들이 있다.

대부분 중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거 같고 종종 태국이나 베트남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도 발견했다.


최근 스톡홀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시안슈퍼를 갔는데

취급하는 김치 종류가 예전에 비해 많아져서 놀랐다.

처음에 내가 왔을 땐 여기서 종가집 브랜드만 팔았었는데

지금은 비비고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깍두기, 배추김치정도 였었는데

지금은 열무김치, 파김치까지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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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한국에 비해서 거의 2배 정도로 비싸게 팔지만

이렇게 팔아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든든하고 좋다.

자주 사먹기엔 가격이 좀 후덜덜이지만

정말 급하게 먹고 싶을 때, 만들기 귀찮을 땐 사먹기도 한다.

사실 내가 만든 것보다 사먹는 게 더 맛있는데

이게 아무래도 수입으로 들어오다보니

갓 담은 김치보단 좀 숙성되거나 대부분 신김치일 경우가 많다.

사먹는 김치는 그냥 먹기보단 요리해서 먹을 때 더 선호하게 되는 거 같다.


새해가 밝고

여기저기 김장김치만드는 걸 유튜브로 봐서 그런지

갓 담은 김치가 먹고 싶어져서 급 만들어 먹었다.

동네에서 배추를 구하기가 좀 힘들어서

파는 곳까지 찾아서 겨우 사왔다.

보통은 중국산이거나 폴란드산, 간혹 스웨덴산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번엔 폴란드산 배추를 1포기 사왔다.

KG으로 가격을 매기는데 한포기에 대략 2.8kg


나름 잘 만들어보겠다고

양파, 사과 갈고 찹쌀가루로 풀도 쒀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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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혀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실온으로 2일을 방치했는데

그 사이에 신김치가 되어버렸다... 아...

스웨덴의 겨울엔 그렇게 실내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김치가 시기엔 충분했나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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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습기가 차고

뚜껑을 열었을 땐 시큼한 냄새가 났다.

김치는 절대 상하는 일이 없으니 그냥 이 상태로 먹었다.

김치를 담그면 꼭 라면이 땡긴다.

전날 만들어 먹고 남은 김밥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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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요즘 끓여먹는 라면이 1봉지에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스웨덴 물가로는 보통 20kr정도 한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비싼 곳은 27kr 조금 저렴하면 18kr정도.

약 2500원정도.

비싸지만 이게 여기서 먹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한국의 맛이다.

한국에선 라면을 거의 손에 꼽히게 먹었는데

스웨덴에 살면서는 라면을 필수로 쟁여놓게 되고

종종 귀찮거나, 그냥 막 한국음식이 땡긴다 싶으면 라면을 찾는다.


라면, 김치, 김밥...

당연해서 몰랐던 나의 한국음식들이

여기선 많은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만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나의 한국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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