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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Jan 15. 2023

31. 김치 담그기

냉장고에 김치가 있어야 마음 편한 한국인의 해외살이

한국에선 워낙 김치를 흔하게 먹었어서 그랬는지

내가 꼭 김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인 줄 모르고 살았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한국음식을 싸서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외살이 3년차.

김치는 필수다.

한식도 꼭 필요하다.


이상하게 여행하는 마음으로 해외에 다닐 땐 한국음식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아예 살러 온다는 마음으로 여길 온 순간부터

나는 한식재료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고

한식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겨 버렸다.

한동안은 스웨덴에 사니까 스웨덴 음식을 자주 접하고 먹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안되겠다...

뼛속까지 난 한국인이었나보다...


스톡홀름에서 한국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갔다.

싸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되도록 현지에서 구했다.

독일엔 한국마트가 꽤 많고 유럽까지는 배송이 가능했다.(단 배송비는 좀 나간다...)

정말 스웨덴에서 구할 수 없는 게 독일에 있는 한국마트에 있으면 일년에 두어번씩 주문을 하기도 했다.


스톡홀름 내에선 한국음식만 취급하는 작은 구멍가게같은 식료품점이 딱 1곳 있다.

누군가의 리뷰에서 이 곳을 '스톡홀름에 사는 한국인들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하셨는데

정말 딱이다. 고마운 곳이다.

그리고 한국음식들을 같이 파는 여러 아시안 슈퍼들이 있다.

대부분 중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거 같고 종종 태국이나 베트남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도 발견했다.


최근 스톡홀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시안슈퍼를 갔는데

취급하는 김치 종류가 예전에 비해 많아져서 놀랐다.

처음에 내가 왔을 땐 여기서 종가집 브랜드만 팔았었는데

지금은 비비고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깍두기, 배추김치정도 였었는데

지금은 열무김치, 파김치까지 발견했다.

가격은 한국에 비해서 거의 2배 정도로 비싸게 팔지만

이렇게 팔아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든든하고 좋다.

자주 사먹기엔 가격이 좀 후덜덜이지만

정말 급하게 먹고 싶을 때, 만들기 귀찮을 땐 사먹기도 한다.

사실 내가 만든 것보다 사먹는 게 더 맛있는데

이게 아무래도 수입으로 들어오다보니

갓 담은 김치보단 좀 숙성되거나 대부분 신김치일 경우가 많다.

사먹는 김치는 그냥 먹기보단 요리해서 먹을 때 더 선호하게 되는 거 같다.


새해가 밝고 

여기저기 김장김치만드는 걸 유튜브로 봐서 그런지

갓 담은 김치가 먹고 싶어져서 급 만들어 먹었다.

동네에서 배추를 구하기가 좀 힘들어서 

파는 곳까지 찾아서 겨우 사왔다.

보통은 중국산이거나 폴란드산, 간혹 스웨덴산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번엔 폴란드산 배추를 1포기 사왔다.

KG으로 가격을 매기는데 한포기에 대략 2.8kg


나름 잘 만들어보겠다고

양파, 사과 갈고 찹쌀가루로 풀도 쒀서 만들었다.

잘 익혀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실온으로 2일을 방치했는데

그 사이에 신김치가 되어버렸다... 아...

스웨덴의 겨울엔 그렇게 실내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김치가 시기엔 충분했나보다. 안타깝다.

안에 습기가 차고 

뚜껑을 열었을 땐 시큼한 냄새가 났다.

김치는 절대 상하는 일이 없으니 그냥 이 상태로 먹었다.

김치를 담그면 꼭 라면이 땡긴다.

전날 만들어 먹고 남은 김밥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다.

한국에선 요즘 끓여먹는 라면이 1봉지에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스웨덴 물가로는 보통 20kr정도 한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비싼 곳은 27kr 조금 저렴하면 18kr정도.

약 2500원정도.

비싸지만 이게 여기서 먹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한국의 맛이다.

한국에선 라면을 거의 손에 꼽히게 먹었는데

스웨덴에 살면서는 라면을 필수로 쟁여놓게 되고

종종 귀찮거나, 그냥 막 한국음식이 땡긴다 싶으면 라면을 찾는다.


라면, 김치, 김밥...

당연해서 몰랐던 나의 한국음식들이

여기선 많은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만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나의 한국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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