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인의 일상

진실의 순간

by 크리스티나

진실의 순간(MOT)은 Moments of Truth의 약자입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직간접적인 모든 접점으로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결정되는 15초 내외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스웨덴 경제학자인 리처드 노먼이 1984년 처음 제안한 개념이고, 스칸디나비아 항공(SAS)의 얀 칼슨 사장이 경영 혁신에 도입해 성공함으로써 널리 알려진 이론이 되었죠. 이와 관련된 도서를 읽어보신 독자들도 꽤 있을거예요.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서점은 작가와의 대화나 독서모임을 여는 책방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책을 입고해서 진열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하는 전통적인 서점입니다. 주변 책방들이 많이 문을 닫았고 도서 유통 환경이 변화해 과거에 비해 그 역향력이 미미해지긴 했지만 도매의 역할도 담당하는 고서점이예요. 이 도시의 작은 서점들 몇몇 곳에서 저희 서점에 들러 잡지나 단행본을 구매해 갑니다.


저희 책방에 방문하시는 손님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책냄새!' 라는 단어를 감탄하듯 뱉어내십니다. 오래된 서점인만큼 공간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책향기는 고객들이 시간이 켜켜히 쌓인 장소에 들어섰음을 알게 해주는 첫인상에 해당하겠죠. 그렇게 코끝에 닿는 냄새로 책이 먼저 말을 걸고나면, 고객들은 매대 사이를 천천히 거닐면서 책과 눈인사를 나누게 되죠. 아마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책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만 존재하는 찰나가 아닐까 싶거든요. 어떤 대상에 빠져든다는 경험은 그런 것일테니까요.


구매하실 도서 목록을 미리 결정하고 오시는 손님들은 직원에게 원하는 책이 서점에 재고가 있는지부터 묻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경우가 아니면 어떤 신간이 입고되어 매대 위에 예쁘게 놓여있는지 살피게 됩니다. 유심히, 그리고 천천히, 책과 대면하는 그 진실의 순간들을 즐기면서 말예요.


다른 상품과 다르게 책은 일단 제목과 외형에서 끌림을 느끼면 책을 펼치고 단 몇 문장이라도 읽어보게 되죠. 대개는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 독자들의 심리이구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책은 단순히 상품이 아닐 뿐더러 그저 내용이나 정보를 담은 종이묶음에 불과한 것도 아니라고 보거든요.


어느 손님이 책을 결제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인데,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책값이 지나치게 비싸다 라고 하셨어요. 외국은 책의 외형에 신경쓰기보다는 저렴하게 제작해 공급하는데 우리나라는 겉모양에 지나친 비용을 들인다고 첨언하시면서요. 틀린 말씀은 아니지요. 그 의견도 일리는 있어요.


그런데 저는 책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바라보거든요. 내용 뿐 아니라 아름다운 외형, 잘 만들어진 제본 상태, 거기에 어울리는 디자인까지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 도서 구매를 결정해요. 심지어 외면하기 힘들 만큼 예뻐서 샀던 책들도 제 서재에는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꺼내서 바라보고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스스로 흡족해합니다.


우리가 각자 무엇이 책이라고 여기는지, 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어집니다. 여러분들에게 책은 어떤 대상인지요? 책방은 또한 어떤 공간인지요? 무엇이 책을 사게 만들고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또 서점으로 이끄는지요? 여러분들에게 책에 대한 진실의 순간을 결정하는 것들은 무엇인지요?... .


책이 있는 풍경은 늘 우리를 설레게 만들고, 삶에 다소 지친 마음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합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꽃다발같은 사랑을 하게 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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