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혼자서 책을 읽다보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지금 읽은 책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죠. 그 순간이 바로 독서인들이 책친구와 책모임을 찾게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2012년부터 독서모임에 참석했네요. 제가 책에 대한 후기를 들려주면 주변인들의 반응이 괜찮았거든요. 그분들의 지지와 독려로 결국 동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작은 모임에 나가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평일 오전 시간대에, 3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성으로 구성되었던 첫 모임을 시작으로 영어독서모임, 고전공부모임 등등 다양한 모임을 경험했어요. 올해(2025년) 6월달까지 이런저런 형태의 모임에 꾸준히 발을 담그고 있었으니 독서토론이라는 하나의 취미를 꽤 오래 지속했던 셈이었죠.
한 권의 책을 각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읽어내듯 책을 토론하는 방식도 각양각색이 될 수 밖에 없겠죠. 동일한 모임에서도 회원들의 구성이 달라지면 모임의 기류가 바뀌는 경험도 하게 되구요. 독서토론모임은 형태를 고정시킬 수 없고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처음 모임에 참석했을 때가 얼핏 스쳐지나갑니다. 그때 그 얼굴들은 어디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부질없이 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독서모임을 십 년이 넘게 했으면 주변에 지인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 나름이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그렇지는 않은 편이예요. 하나의 꽃이 피고 지듯 책과 관련된 인연들도 오기도 하고 또 가기도 했어요. 한 권의 책에 하나씩의 추억만 남은 셈이 된거죠. 물론 그중 몇 사람과는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과 함께 인연따라 흘러가더군요.
묵묵히 인생의 길을 가다보면 어느 시기에 옆에서 걷고 있는 도반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지만,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결국 혼자가 되는 것 같아요. 한 시절 동행이 되어주던 벗은 어느 갈림길 앞에서 또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결국에는 인생의 숲속으로 혼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렇게 가는 여정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존재가 책이었고 그 책을 매개로 시절인연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저의 책읽기는 행복했습니다. 책은, 저 자신을 더욱 고독하게 해준 동시에 또 혼자가 아니게 해주었거든요.
오래 지속하던 책모임을 정리하고나자 마치 함께 놀던 친구들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골목에 혼자 남겨진 듯 느껴졌어요.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무하기도 했구요. 결국 무엇이 남은건가? 하는 생각이 찾아들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되짚어보면 그때 그 사람들은, 함께 읽었던 그 책들은, 인연따라 저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떠나간거라고 봐야겠네요. 비록 손에 잡을 수 있는 어떤 형태가 남진 않았지만 제게 깨우침을 주고 갔으니 모든 책이, 사람들이, 감사할 뿐입니다.
영원을 꿈꾸었던 관계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꽃다발처럼 시들어가고 그때의 소중했던 인연도 한 계절 찬란하게 피었다가 마치 거짓말처럼 스러져가는 법이죠. 그렇다고 해서 허무감에 빠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한 번 뿐이어서 소중했고 돌이킬 수 없어 귀한 순간들이었네요.
책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던 그 때의 인연들은 이제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테지요. 서로 엇갈려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사이지만 그 시절 한 조각의 마음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서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였네요. 그렇게 우리는 책을 통해 자신의 견고함을 깨고 각자의 세계를 더 확장시키고 스스로 깊어져 갔으니, 인생의 모든 계절이 아름다웠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겠어요.
(이세 히데코의 그림책,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에 등장하는 두 개의 장면을 하나의 종이 위에 연필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연필은 무엇보다 지우고 다시 쓰거나 그릴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