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인생의 터닝포인트
오십에 귀향을 했거든요. 적지 않은 나이잖아요. 하던 일을 버리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현실적으로 버거운 나이이기도 했어요. 사실 두려움이 컸거든요. 내려와서 무얼 하며 살 것인지? 남아 있는 시간이 아직도 많은데 어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하며 탈서울을 감행했어요.
서울에서 하던 사교육을 버리고 세간살이는 이사들어올 사람에게 모두 넘겨주고 간소하게 짐을 꾸려 내려오던 날에 차창을 통해 불어오던 바람이 뺨에 닿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3월의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경칩이 지났기 때문에 고향 마을에 가면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무심히 했었네요. 왜 하필 개구리 소리였을까요?
어렸을 때 고향집에서 여름밤에 불을 향해 달려드는 벌레들을 쫓으며 밤늦은 시각까지 책을 읽노라면, 집 근처 무논에서 와글와글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가 들렸었거든요. 그건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여름의 소리였어요.
대학시절 같이 다니던 같은 과 여자아이에게 고향 마을에서 들었던 개구리 울음에 대해 얘기한 기억이 있어요. 그 아이는 서울 태생인지라 저의 말을 재밌어 하면서도 상상이 안되는 눈치였어요. 누구나 자기 경험의 바깥을 그려보는 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아이는 그저 시골출신의 동기에게 듣는 고향 이야기 정도로 이해했겠죠. 제가 서울 토박이의 감성을 아득한 것으로 느끼듯이 그 아이도 저를 그만큼의 거리에서 생각했겠죠. 아마도.
탈서울은 결과적으로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직업의 전환이 이루어져 이렇게 서점인의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무 쓸데없는 글을 쓰게 되었으니 말예요. 계획을 세우며 살아야 하는 건 옳지만 인생이 우리의 의도대로 흘러가지는 않더군요. 젊은 시절에는 그런 현실이 심한 열패감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마흔을 넘기면서부터는 인생의 예측불가능성이 재밌게 받아들여지더군요.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겠죠. 함수 상자처럼 투입된 값에 따라 정해진 답만 나오는 인생은 생각만 해도 심심하거든요. 모퉁이를 돌면 무엇을 만날지 알 수 없으니 설레기도 하고 기대를 품게 되기도 하거든요. 호기심이 살아있는거죠.
고향집에 온 후 일 년 정도는 어머니와 텃밭 가꾸고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지냈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휴식의 시간이었고, 어머니와 보낸 밀도 높은 시간들이 당신을 여읜 후에 적지 않게 위로가 되기도 했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편의 이야기책이고 그 이야기는 어느 시기이든 새롭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 삶을 사는 것이 이전의 인생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거든요. 지나간 시간들도 충분히 의미 있었고 감사했지만, 지금부터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자신을 던져보는 것, 그것은 모험심이라고 봅니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흘러오던 대로 계속 나아가는 인생이 그다지 흥미가 느껴지지 않을 때 모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서사를 써보니 좋은 점은 막연한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것이예요. 또 모험의 길을 떠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옛 이야기 속의 소년처럼 용기있게 집을 나서서 낯선 길 위에 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든, 몇 번이라도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