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앞에 홀로 섭니다

10 아버지 앞에 홀로 섭니다

by 크리스티나

저는 왜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을까요?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 작년 가을 왜 장로교회를 찾아간걸까요?


저에게는 가톨릭이든 장로교든.. 침례교든.. 이단이 아니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특정 교파의 교리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진리에 목말라 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음성은 모든 교파나 교리를 넘어서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코로나 시기에 귀향을 하고 일 년을 놀며쉬며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고향집 텃밭에 푸성귀도 심고 풀도 뽑으며 세월을 잊은 채로 지내보았네요. 마치 자신이 세월을 낚는 어부라도 된 냥 흐르는 시간과 함께 그저 저도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저는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을 들여다볼 수 있었네요. 감리교회의 유명 목사님이 유튜브에 강의를 열어주시길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대교리문답을 공부했습니다.


어느 분야가 되었든, 공부는 정확히 한 번을 하고 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만들어놓은 방식이나 내용에 크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견해입니다. 마치 그림을 공부하는 이들이 많은 기법을 터득한 후에 스승에게서 배운 것들을 다 버리고나서야 자신만의 화풍이 나오듯이 공부도 같은 이치라 생각합니다. 어떤 색채를 띠든 자신만의 독자적인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은 사제를 통해 신을 만나던 관습에서 탈피하여 오롯이 개인으로서 아버지 앞에 서는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죠. '만인사제'라는 종교개혁의 아름다운 정신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죠. 그런데 여전히 특정 종교인을 통해, 특정 교리를 통해, 신을 만나야 한다고 여긴다면... 개혁은 왜 했을까요?


제가 장로교회를 찾아간 것은 굳이 집안어른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이제 어른이라고 해야 돌아가신 아버지의 막내동생인 삼촌이 계실 뿐이지만, 연로하신 삼촌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서였어요. 삼촌과 신앙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일 년 남짓한 교인으로서의 생활을 끝내는 것을 그리 오래 망설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제가 종교생활에서 느낀 실망감을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이해 못 하실 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교회를 그만 다니겠다는 말을 떼는 것이, 저는 무척 어려웠어요.


긴 시간 고민한 끝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 자신으로서 진솔하게 서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분이 저의 영의 아버지라면 가식을 다 걷어내고 뵐 수 있어야죠. 그것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아니겠는지요. 아버지께서는 저를 저보다 잘 아시는 분이시니 자녀된 자로서 무엇을 더 치장하고 숨기겠어요. 있는 그대로 아버지 앞에 서고 싶었습니다.


백로가 지나자 아침 저녁으로 창을 넘어오는 풀벌레 소리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케 합니다. 가혹하기까지 했던 여름더위도 계절이 바뀜에 따라 가을에 자리를 내어주고 어느새 벼이삭은 익어 나날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단순해 보입니다. 꽃이 피고 지듯이 계절도 가고 또 오고 우리 인연도 그렇게 피어나고 스러져가고. 복잡한 건 우리 머릿속일 뿐이겠죠.


정결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제 삶이 온전히 아버지 앞에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께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홀로 나아갑니다.

※10화를 마지막으로 <아버지께로> 연재를 마칩니다. 어린아이의 옹알이같은 신앙고백을 읽어주시며 함께 해주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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