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가 살아계시기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8:32)
대학 시절 교정을 오고가며 보았던 성경 구절입니다. 그 시절에는 그저 무심하게 보아넘겼던 말씀이었어요.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었고, 무슨 의미인지 생각조차 깊이 해보지 않았죠.
2020년 봄, 코로나로 전 지구가 함께 앓던 시기였어요. 여러 측면이 작용했지만 어쨌든 결정적으로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귀향을 결정하게 만들었고 저는 변한듯 변한 게 없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고향에 온 후 일 년이 지나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어요. 쓸쓸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읍내에 하나뿐인 책방으로 갔던 어느 여름날이었네요. 신앙서적을 구경하고 있는 저에게 책방 주인장께서 성경을 직접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성당자매 시절에 가톨릭 성서책을 일독한 적이 있었을 뿐 성경읽기는 늘 미루기만 했던 저는 조금 창피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질문을 받았던 당시에 교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성경책을 꼭 읽어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아마도 권위자의 해석에 기대어 책(Bible)을 이해하려는 자신의 안이한 태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독서가, 인생공부가, 누구에게 기대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얕은 공부방식이 창피스러웠던 것 같았어요.
그 날 집에 돌아와 탈서울할 때 여동생이 제게 주었던 성경책을 펴서 대학 4년 내내 교정에서 마주쳤던 요한복음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맥락을 이해하고자 앞부분부터 보기 시작했고 결국 그날 밤 요한복음 전체를 읽게 되었어요.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읽히지 않았던 성경책이 읽혔다는 사실이었어요.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이치를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틈틈히 성경책을 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프레임으로도 규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라는 견고한 틀을 부수고서야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요. 궁형을 당하고서도 사기를 집필했던 사마천은, 열전에서 여러 인물들을 다루면서 내내 천도에 대해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선징악으로 요약할 수 있는 천도를 묻는 사마천이,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의 섭리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지금의 우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떤 장소에서나 인간이 던지게 되는 마지막 질문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싶거든요.
신이 계시다면 그가 사랑으로 지으신 인간세상의 부조리와 모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해결할 수 없는 의문에 우리는 자주 고뇌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우리가 헤아릴 수 없고, 그가 우리를 어느 곳으로 이끌어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마음을 열고 그분께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 그것이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가끔 성당에서 교리공부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동정녀 잉태라든가 부활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느냐? 라는 의심을 떨치지 못해 수녀님께 질문했거든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저의 어리석은 질문에 수녀님께서 현답을 해주셨어요. 성경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려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온전히 받아들여보라고 하시더군요. 이성과 논리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 있다고. 그 의문에서 오래 멈추어 있던 저에게도 아버지께 마음을 열게 되는 시기가 온 것은 신비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말씀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습니다.
그가 살아계시기에... 오늘도 저는 두려움 없이 내일을 향해 나아갑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영원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입니다.
Because He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