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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이 Oct 18. 2022

종이책이 좋아

[7/100] 도전 : 1일 1글쓰기 - 프로젝트 '좋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일주일.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나는 뭘 좋아할까?' 생각한다. 뭘 좋아할까. 나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도 안 좋아하고, 맛집도 일부러 찾지 않는다. 사진도 내가 찍어주는 거라면 괜찮지만 찍히는 건 곤혹스럽다. 어쩌다 약속이 잡히면 갖은 핑계를 대서 나가지 않거나 취소됐을 때 숨길 수 없이 기쁘다.


이런 내가 즐기는 것들이라곤 음악 듣기, TV 보기, 인센스 스틱 켜기,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기와 책 읽기 정도다. 나는 시시한 인간이라 평소 즐기는 것도 꽤 시시하다. 그러나 이런 시시함 속에서도 꼭 지키는 것이 있는데 책은 종이책으로 읽는 것. 종이책에는 작가의 마음이 오롯하다.


나는 오랜 시간 방송을 위한 글을 썼다. 매주 14장에서 많게는 20장의 원고를 썼지만, 15분짜리 영상에 담겨 전파를 통해 날아가면 끝이었다. 또 다음 주 방송을 만들기 급급했던 터라 노트북 뚜껑을 닫고 나면 내 머릿속에 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오는 건 시청률표와 함께 모니터링 요원들의 시청평 한 줄뿐. 이 마저도 모니터링 요원들의 써주질 않으면 없을 때도 허다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를 잡으려 허우적거리는 것 같이 허무했다.


그래서  책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원고를 쓰고 버리고, 쓰고 고치는 지난한 시간을 견딘 지 안다. 쉽지 않게 나온 만큼 책은 종이책으로 사야 제 값을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돈이 없을 때는 중고 책방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쉽고 간편한 e북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어쩐지 좀처럼 성에 차지 않았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은 신간 업데이트 늦는 편이라 결국엔 번거롭더라도 서점에 가서 하나씩 넘겨보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오게 된다.


빳빳하고 단정한 종이책. 띠지조차도 책을 펴기 전, 얌전히 벗겨 한쪽에 잘 올려두고 나서야 책을 편다. 끝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꾹꾹 눌러 펴지도, 귀퉁이를 접지도, 밑줄을 긋지도 않은 채 새책 컨디션 그대로 읽었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카메라를 켜서 찍거나 메모장 앱을 열어 필사했다. 그렇게 애지중지 읽은 책들은 10년이 지나 누렇게 색은 바랬을지언정, 새 책처럼 빳빳하다. 원룸 월세살이로 2년 4년마다 옮겨 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종이책이 가득한 책장을 보면 괜히 뿌듯했다. 한 권을 꺼내 차르르 훑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책에 밑줄을 그으며 귀퉁이를 접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한 번 해볼까, 연필을 슬쩍 갖다 댔는데 웬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왠지 학구열에 불타는 기분이기도 하고 책의 쓸모를 더 알아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음이 괜히 몽글몽글해졌다. 그때부터 나도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거나 인덱스를 붙이며 책을 읽는다. 잘 기억나지 않거나 한번 더 읽고 싶을 때는 접어둔 귀퉁이를 찾아 펴고, 밑줄 그은 부분부터 다시 읽는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세상에서 종이책 한 권 만드느라 잘라내는 나무를 생각하면 전자책이 더 간편하고 효율적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것이 효율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떤 것들은 비효율적일 때가 더 낭만적이지 않은가. 책 읽는 건 나에게 교양보다 낭만의 영역이라 외치고 싶다. 종이책 절대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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