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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이 Oct 18. 2022

TV가 좋아

[11/100] 도전 : 1일 1글쓰기 - 프로젝트 '좋아해'

이쯤 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TV를 좋아한다. 한동안 너무 TV만 보고 살아서 아예 없앤 적도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재택근무를 하던 시기였는데 점심 먹을 때 잠깐 틀자했던 게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고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러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고 밤이 되고... 하루를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잠에 들고는 한다. 


TV가 없는 동안은 책도 많이 읽었다. 한 권을 읽기 시작하니까 책을 덮자마자 또 다른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일주일에 2~3개를 읽다 보니 한 달에 금세 10권을 넘겼다. 그렇게 TV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며 보낸 6개월. 이젠 TV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로. 그치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은 걸. 어떻게 끊냐고...


월말이면 이상하게 머리가 복잡하다. 자꾸 나를 검열하게 되고,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해낸 게 없다고 자책하게 된다. 새로 시작된 달에 할 게 많으면 마음만 급해져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해야 할 일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서 한 데 뒤엉켜 렉 걸린 컴퓨터처럼 작동이 멈춰버린다. 이럴 때는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해도 쉽지 않다. 책 한 줄을 여러 번에 나눠 읽고도 이해가 힘들 만큼. 


그럴 땐 과감히 책을 덮고, TV로 도망을 친다. 벌써 여러 번 보고 또 봤던 <명탐정 코난>이나 <신서유기>, <대탈출> 시리즈를 틀어놓고 깔깔거리며 하루를 낭비한다. 이번 달도 예외는 아니다. <대탈출>을 또또또또또 보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OTT 플랫폼을 종류별로 넘나들다가 넷플릭스에서 <가십 걸>을 찾았다. 가벼운 게 필요했는데 때마침 좋은 소재 같아서. 쉽게 봤다가 덥석 발목이 잡혀 연속 회차 시청 중이지만.  


TV를 괜히 바보상자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복잡했던 내 머릿속의 잡동사니들조차 싹 가져가 버리니까. 지독한 회피형 인간인 나한테는 TV는 아주 좋은 친구다. 시선만 돌리면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에서 이만한 친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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