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아픔과 입양인의 이중적 효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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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바리데기 신화 동해안 본
주변에서 입양과 관련하여 수많은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친부모의 죄책감, 입양한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여러 문제를 마주하는 양부모의 혼란,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서 입양인의 당혹감…. 우리는 이들의 아픔에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오래전부터 전승되어온 「바리데기」 신화는 친부모, 양부모, 입양인이 느끼는 고통을 생생히 드러낸다. 더욱이, 입양인인 바리공주가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효(孝)를 실천하는지를 보여준다.
「바리데기」 신화에 대한 기존 연구는 바리공주가 자신을 낳은 부모인 오구 대왕·길 대부인에게 나타내는 효에 주목해왔다. (홍태한, 1998; 정연정, 2010) 그러나 이는 ‘바리공주의 부모는 곧 오구 대왕·길대 부인’이라고 단일하게 규정해버린 것이다. 과연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에 의해 출생하였으나 비리 공덕 할 비와 비리 공덕 할미에 의해 길러진 바리가 자신의 부모를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뿐이라고 생각할까? 한쪽 부모에서 다른 쪽 부모에게로 입양된 사람들에 대한 심리 연구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입양인은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와 재회하더라도, 우선적으로 자신을 입양한 양부모를 진짜 부모라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셰리 엘드리지, 2018) 한편, 저승 여행을 끝낸 바리가 오구 대왕과 함께 불라국에 거주하는 선택을 한 게 아니라, 결국 비리공덕할미·비리공덕할비의 부근에서 저승으로 들어서는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은 왜일까? 바리의 이런 선택은 「바리데기」 신화를 바리가 오구 대왕·길대 부인에게 나타내는 효의 이야기로 보는 관점과는 적절히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바리를 그저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 사이의 딸로서, 바리의 저승 여행을 그저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에 대한 효 실천의 과정으로 보는 것을 옳지 않다. 이 방식에서 더 나아가,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와 오구 대왕·길대 부인 사이에서 바리가 느끼는 심리와 실천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바리데기」 신화는 입양인 당사자 바리, 바리를 낳은 친부모, 바리를 입양한 양부모 사이의 입양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리가 한 부모에서 다른 부모에게로 입양됨에 따라, (1) 입양인·친부모·양부모 삼자는 입양과 관련해 많은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2)바리는 친부모에 대한 효와 양부모에 대한 효 모두를 실천하는 입양인의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이른바 ‘입양’의 관점을 채택할 때, 입양된 자인 바리의 감정을 오늘날의 심리 연구 사례와 조화되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더욱이, 저승 여행을 끝낸 바리가 자신의 삶에 대해 내리는 최종 결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바리데기」 신화의 전반부는 입양으로 인해 친부모, 양부모, 입양인이 겪는 아픔에 대한 서사이다. 기본적으로 입양은, 입양인을 낳고서 포기한 친부모, 입양인을 입양해 키운 양부모, 그러한 두 부모를 둔 입양인 사이의 문제이다. 「바리데기」 신화에서는 (1)친부모로서의 오구 대왕·길대 부인이, (2) 양부모로서의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가, (3) 입양인으로서의 바리공주가 등장한다. 오구 대왕·길대 부인은 바리공주를 낳은 직후 그녀를 버리는 결정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이러한 바리의 입양 과정 및 바리의 입양 후 성장 과정에서 친부모, 양부모, 입양인의 고통스러운 심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ㄱ] 친부모의 아픔: 바리의 혈연적 친부모인 오구 대왕·길대 부인은 자신들이 버린 바리의 복지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바리를 바다에 떠내려 보내는 길대 부인의 행동이 곧 바리를 다른 부모에게 입양시키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바리를 보내버린 길대 부인의 심리는 아이를 입양시킨 어머니의 심리와 밀접히 관련된다. 어떤 도승이 길대 부인에게 바리가 살아있을 것이라 말하자, 길대 부인은 “바리, 바리가 살아 있단 말입니까?”라고 말하며 놀란다. 이후에는 “바리! 내 일곱째 딸 바리야. 너만 있다면! 너만 볼 수 있다면!”이라 말하며 애도를 표한다. 사실, 대부분의 친부모는, 특히 친어머니의 경우, 자신이 포기하였으나 혈연적 관계를 맺은 아이의 복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Silver, K.·Doner, P. M., 1990) 길대 부인 역시 바리의 친어머니로서 이러한 심리를 보인다. 오구 대왕도 물론 바리를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사실이나, 친자식인 바리와 재회하자, “바리데기를 부여잡고 서로 목을 부녀간에 목을 잡고 방성통공 설리 운다.”
[ㄴ] 양부모의 아픔: 바리의 양부모인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는 전형적으로 아이를 입양한 부모로서의 정서를 표출한다.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는 자신들이 낳지는 않았으나, 아기 바리가 다른 누군가가 낳은 자녀임을 알았으며, 자신들이 바리의 부모 역할을 하고자 했다는 데 틀림이 없다. “바리는 할아비와 할미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런 점에서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는 바리의 양부모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이제 철이 든 바리가 자신을 낳은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자, 비리공덕할비와 비리공덕할미는 “뜻밖의 말에 놀”라고 “얼른 말을 둘러댔다.” 처음에는 바리의 친부모의 존재를 속이려고 한다. 이러한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의 반응은 입양 부모가 가지는 두려움의 심리로 설명된다. 입양 부모는 입양아에게 살아있는 친부모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 하게 되는데, 이는 입양아가 친부모의 존재를 알게 되면 자신들의 부모로서의 정당성이 손상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다. (Sorosky, A. D.·Baran, A.·Pannor, R, 1978) 이런 이유로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는 입양한 자녀인 바리가 친부모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결국 바리의 이 양부모들은 “더 이상 속이지 못하고 바리를 얻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바리가 자신들에게 전해질 때의 “옥함 안에 들어 있던 옷가지와 생년월일이 적힌 비단 고름”을 바리에게 건네준다.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가 옥함, 옷가지, 비단 고름을 바리가 클 때까지 보관해둔 것은 바리에게 있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입양 이론에 따르면, 양부모는 언젠가 자녀에게 그의 입양에 관해 잘 설명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미리 모아놓아야 한다. (배태순, 1998) 비리공덕할비와 비리공덕할미는 고통스러울 일이긴 해도 바리에게 그의 입양에 관해 설명하는 데 필요하게 될 옥함, 옷가지, 비단 고름을 이제껏 보관해놓은 것이다. 양부모가 입양 사실을 입양인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입양인은 입양 이전의 과거와의 단절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된다. (Schaffer, J.·Lindstrom, C., 1990) 따라서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는 괴롭긴 해도 바리에게 입양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바리가 안정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선택을 한 것이다.
[ㄷ] 입양인의 아픔: 바리는 전형적으로 입양 아동이 보이는 심리적 특징을 보인다. 철이 든 바리는 자신을 낳은 부모를 궁금해한다. 이는 입양인이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서, 자신의 유전적인 근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LePere, W. D., 1988) 바리가 결국 자신의 친부모의 존재를 알게 되자, “바리의 입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후 신화 이야기의 서술자는 바리에 대하여 “어찌 아니 그럴까. 망망대해에 버려진 존재라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서러운, 지워진 존재.”라고 탄식한다. 바리의 울음 및 이후 이어지는 서술자의 바리에 대한 탄식 부분은 일종의 심리적 애도 단계라 할 수 있다. 입양에 대한 학술적 견해에 따르면, 입양인은 친부모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 친부모를 이별한 상실에 대하여 심리적인 애도 과정을 거치는 게 좋으며, 입양인의 친부모 상실 애도는 양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나누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배태순, 1998) 바리는 친부모와 이별한 사실을 알게 되어 대성통곡을 했으며, 이러한 문제를 양부모와의 대화 과정에서 겪었다. 바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친부모 상실 애도 과정을 겪은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경우에 해당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입양 가족들에서 문제의 소지가 되는 것은 입양인의 입양 과정이 양부모에 의해 비밀로 부쳐지는 것에서 기인한다. (Hoopes, J. L., 1990) 반면, 바리와 바리의 양부모 가정에서는 바리의 입양 가정이 허심탄회하게 밝혀졌으며, 이에 따르는 바리의 친부모 애도 과정도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바리데기」 신화의 전반부에서는 바리의 친부모, 양부모, 바리 본인이 입양 문제를 둘러싸고 느끼게 되는 혼란과 고통의 심리 과정이 절묘하게 삽입되어 있다. 길대 부인이 바리를 버린 후에 느끼는 슬픔, 비리공덕할미와 비리공덕할비가 바리가 성장함에 따라 경험하게 되는 헷갈림, 바리가 자신의 친부모의 존재를 알게 된 후의 슬픔 표출. 이것은 모두 ‘입양’의 관점에서 「바리데기」 신화를 파악할 때 매우 정확하게 설명된다.
「바리데기」 신화의 후반부는 바리가 친부모와 양부모 양쪽을 위해 입양인으로서 이중적으로 효를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서사이다. 전통적으로 중요히 여겨지는 가치로서의 ‘효’는 자녀가 자신을 낳고 기른 부모 즉 단일한 부모를 위해 나타내는 특성이다. 그러나 「바리데기」 신화에서 바리가 부모에게 나타내야 할 효는 그와는 양상이 다르다. 입양인 바리에게는 친부모인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이 있으며, 양부모인 비리공덕할비와 비리공덕할미가 있다. 바리는 양쪽의 부모에게 모두 효를 실천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ㄱ] 친부모를 위한 효 실천: 바리는 자신을 버린 친부모에 대한 효를 포기하지 않는다. 길대 부인의 시종이 바리를 찾기 위해 나타났을 때, 바리는 “자신을 길러준 비리공덕할아비와 비리공덕할미를 이별하고 저 태어난 궁궐[친부모가 있는 곳]로” 향한다. 바리는 친부모를 위한 효의 첫 단계로서, 친부모와 재회하고자 행동한 것이다. 양부모 가정에서 크는 입양인은 자신의 혈연적 부모와 뿌리에 대해 찾으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Sachdev, P., 1989) 바리는 자신의 혈연적 부모와 뿌리인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들을 만났을 때, 바리는 곧바로 길대 부인을 “엄마”로 칭하며, 서술자는 ‘바리가 아버지[오구 대왕]를 살리려고 결심한다.’고 언급한다. 즉 바리는 길대 부인과 오구 대왕을 각각 자신의 또 다른 엄마와 아빠로 인정해준 것이다. 바리는 자신을 입양 보낸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해원 하며 애도를 표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후, 바리는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멀고 험할지라도 기필코 저승 땅을 찾아가서 아버지[오구 대왕] 살릴 약수를 구해오겠다고” 다짐한다. 따라서 바리의 약수를 찾아 나아가는 저승 여행기는, 자신을 입양 보낸 친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여행 중에 바리는 동수자를 만나서 자녀를 낳는데, 이러한 출생과 육아 경험은 바리가 자신과 친부모인 오구 대왕·길대 부인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입양인은 자신을 닮은 자녀를 출산하면서, 혈연의 신비에 대해 느끼게 되며, 이 출산 과정은 자신과 친부모의 관계를 깊이 숙고하는 계기가 된다. (Anderson, R. S., 1988) 바리는 저승 여행 과정에서, 자신의 자녀를 출산, 양육하면서 자신과 친부모 사이의 혈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성장한다. 따라서 바리의 저승 여행 과정은 자신과 친부모 사이의 혈연에 대한 인식을 넓혀 나가는 성장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ㄴ] 양부모를 위한 효 실천: 그러나 이와 동시에 「바리데기」 신화에는 바리가 양부모인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를 위한 효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형상화되어 있다. 바리는 자신의 친부모인 오구 대왕을 위한 약수를 구한 이후, “오구신이 되어 저승에 가서, 저승으로 들어서는 영혼들을 인도하게 되었다.” 바리는 불라국에서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의 곁에 머무르는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오구 대왕을 부활시킨 국가적 업적을 세워서 오구 대왕의 후계자가 될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구 대왕을 이어 불라국의 후사를 잇지도 않았다. 오히려 바리는 자신을 낳은 친부모인 오구 대왕·길대 부인 곁을 떠났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바리는 자신을 입양하여 키운 양부모의 근처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바리가 “오구신이 되어 저승에 가서, 저승으로 들어서는 영혼들을 인도하게” 된 동시에, “바리를 주워 키운 비리공덕할아비와 비리공덕할미는 영혼의 길 안내를 맡는 신이 되어 길 삯을 받으며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1) 바리 및 바리를 입양한 양부모인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는 저승으로 들어서는 곳으로 가서 지리적으로 근처에 함께 머문다. 게다가 (2)바리는 원래 “가난하게 살던 비리공덕할아비와 비리공덕할미”를 위해, 그들이 길 삯을 받으며 살 수 있게끔 해주어 연로한 부모인 그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한다. 더 나아가 바리와 바리의 양부모인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가 모두 신이 된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에 유의해볼 수 있다. 이때 (3)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바리는, 인간 정체성을 지닌 오구 대왕·갈대 부인보다 신 정체성을 지닌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와 정체성 측면에서 더 가깝게 서술되는 것이다. 이런 3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바리는 최종적으로는 입양 부모와의 관계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입양인으로서의 바리의 이중적인 효 실천 양상은 「심청전」과 같은 여타 전래 설화의 효 양상과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심청은 단일적으로 심봉사에 대한 효를 실천하며, 이를 성취하는 과정이 「심청전」 설화의 전체 양상이다. 그러나 「바리데기」 신화에서는 바리가 주요하게 오구 대왕을 위한 효를 실천하는 여정을 담고 있긴 하나, 결국 바리는 비리공덕할비·비리공덕할미에 대한 효를 이중적으로 실천한다. 따라서 「바리데기」 신화를 그저 「심청전」 설화의 효 양상과 동일한 종류의 ‘효’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을 적절치 못하다.
결론적으로, 「바리데기」는 친부모에게서 양부모에게로 입양된 바리의 서사 즉 이른바 ‘입양된 바리’의 이야기이다. 바리가 입양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구 대왕, 길대 부인, 비리공덕할비, 비리공덕할미가 경험하는 아픔은 입양을 둘러싼 입양 삼자(三子)의 심리학적인 정서 이론으로 정확히 설명된다. 그리고 바리는 자신을 버린 부모와 자신을 입양해 키운 부모 모두에게 효를 실천하는 방식을 통해, 입양인으로서 이중적인 효의 조화를 이룩한다. 이처럼 입양인인 바리가 친부모와 양부모 양쪽에 대한 효를 공존시키는 모습은, 이 신화의 주제 사상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러한 ‘입양된 바리’의 관점에서 「바리데기」 신화 전체를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다.